살인사건

논현동 고시원 방화 살인사건


서울 강남구 논현동 지하철 7호선 논현역 근처 영동시장에는 먹자골목이 있다.

이곳 증앙에는 5층짜리 건물 3~4층에 D고시원이 있었고, 크기가 5㎡(1.5평)가 조금 넘는 쪽방 85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복도가 좁아 한 명 밖에 지나가지 못할 정도였다. 밖으로 나가는 출입문도 하나 밖에 없었다.

자기 방에 불 지르고 복도에서 무차별 흉기 휘둘러

2008년 10월20일 월요일 오전 8시15분쯤 이 고시원 3층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매캐한 연기가 건물을 감싸자 “불이야! 불이야!”를 외치며 사람들이 복도로 뛰어나왔다.

이때 출입문으로 나가는 복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뒤덮은 옷차림의 한 남성이 서 있었다. 머리에 랜턴을 달고 마스크에 물안경까지 쓰고 있어서 누군지 알아 볼 수 없었다. 사람들이 뛰쳐나오자 이 남성은 양손에 들고 있던 흉기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매캐한 연기 때문에 앞이 제대로 분간되지 않았던 사람들은 흉기를 피해가지 못하고 하나 둘씩 쓰러져 갔다. 주인잃은 신발이 나뒹굴고 바닥이 피로 흥건하고 벽과 계단에는 핏자국이 묻어나는 등 그야말로 고시원은 아비규환 상태가 됐다.

SBS 방송화면 캡쳐.

중국동포 이월자씨(여‧51)와 중국에서 유학 중인 서진씨(여‧21) 등 5명이 범인의 칼에 찔려 사망하고, 민대자씨(여‧51)는 범인을 피해 3층 창문으로 뛰어내리다 추락사했다. 공교롭게도 사망자는 모두 여성이었다. 김보금씨(여‧45) 등 7명은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고시원에 거주하던 70여명 중 13명이 죽거나 다쳤다.


피해자들 대부분은 좁은 복도에서 범인이 휘두르는 칼날을 피하지 못하고 옆구리와 복부 등에 깊은 자상을 입었다.

칼에 찔린 한 취업준비생의 신고로 소방차와 경찰이 출동해 화재를 진압하고 고시원 사람들을 구조했다. 화재로인해 고시원 3층이 전소됐다. 이번 불은 단순 화재가 아니라 누군가 일부러 지른 방화였다.

경찰은 4층에 있다가 소방 대원들에 의해 구조돼 1층으로 내려온 한 남성을 주목한다. 그는 온몸에 피가 묻어있었지만 정작 몸에 자상이 없었다. 경찰은 현장에서 이 남성을 긴급체포하고 경찰서로 압송했다.

그는 고시원에 살던 정상진(30)이었고, 경찰 조사에서 “내가 불을 지르고 사람들을 죽였다”고 진술했다.

인형뽑기에 병적으로 집착하면서 돈 탕진

경찰에 따르면 경남 합천이 고향인 정씨는 어릴적부터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는 몸집이 작고 성격도 소심해서 친구들에게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했다. 중학교 때는 구타를 당해 기절하는 일도 있었고, 농약을 마시는 등 두 번이나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일반판금기능사 2급 자격증을 따 냉장고 부품 생산라인에서 조립과 용접 일을 했다. 그러다 IMF 외환위기가 터지며 회사를 그만두고, 단란주점 종업원이나 다단계회사 직원 등을 전전했다.


2002년 육군병장으로 제대한 후 그 길로 상경해 2003년부터 해당 고시원에서 지냈다. 그는 영동시장에 있는 식당에서 배달원 등으로 근근히 생계를 이어갔다. 고시원에서는 말이 많아 ‘종달새’로 불렸다.

정상진은 인형뽑기에 병적으로 집착했다. 돈이 생기면 인형뽑기 기계로 달려갔다.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60만원까지 인형뽑기를 하고, 비가오는데도 3시간 동안 인형뽑기를 했다. 당시 정씨는 인근 주차장에서 일하면서 한 달에 150~180만원 정도를 벌었는데, 그 돈 대부분을 인형뽑기로 탕진했다.

범행 2개월 전에 실직하면서 하루에 컵라면 한 끼로 식사를 대신할 정도로 궁핍했다. 돈이 다 떨어지면 누나에게 손을 벌리기도 했다.

월세 17만원이던 고시원비도 밀리고, 민방위와 예비군 훈련을 받지 않아 향군법 위반으로 벌금 150만원이 나왔으나 내지 않아 지명수배된 상태였다.
휴대전화 요금도 60만원이 미납됐고, 개인 질병인 하지정맥류 수술비 300만원이 필요했지만, 돈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결국 정씨는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죽이기로 마음먹는다. 총무가 고시원비를 독촉하자 10월20일에 내겠다고 했는데, 이날을 범행 디데이로 잡았다. 범행 전에 검은색 스키 마스크 모자, 고글, 소형 플래시, 회칼 1개와 과도 2개, 가스총을 준비했다.

SBS 방송화면 캡쳐.

모든 준비가 끝나자 범행 당일 고시원 3층에서 준비했던 범행도구들을 꺼냈다. 자신을 알아볼 수 없게 검은색 옷과 검은색 건빵바지를 챙겨 입은 뒤 검은색 스키 모자를 쓰고 그 위에 소형 플래시를 썼다.

손에 장갑을 낀 후 과도 2개는 종이와 테이프로 칼집을 만들어 양쪽 다리에 찼다. 가스총도 허리춤에 찬 후 오전 8시쯤 자신의 방 침대에 라이터 기름을 뿌린 뒤 인형뽑기로 뽑은 권총 모형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이후 화재 연기를 피해 복도로 뛰어나온 피해자들을 무차별 회칼로 찔렀다. 정씨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4층으로 올라가 그곳에 있었던 나머지 피해자 5~6에게도 흉기를 휘둘렀다

고시원에 사는 이들은 대부분 취업준비생이나 저임금 노동자들이었다. 사망자와 부상자 등 13명은 근처 식당에서 일했던 40~50대의 중년 여성이거나 아들 치료비를 벌던 중국동포 등이었다.

사망자 중 3층에 살고 있던 중국 동포 김선자씨(여‧49)는 한국으로 시집 온 딸의 초청으로 2년 전에 한국에 들어왔다. 그는 어릴적에 입은 화상으로 몸이 불편한 아들의 다리를 고치기 위해 한국에 오자마자 인근 먹자골목에 있는 식당에서 일했다.

4층에 거주했던 서진씨는 산둥대 국제무역학과 2학년에 재학 중 4개월 전 휴학계를 내고 한국에 들어왔다. 그는 학비를 벌기 위해 고시원에 거주하면서 강남의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같은 4층에 살던 최정임씨(여‧49)는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집을 나와 혼자 지내고 있었다.

다이어리에 세상을 비관하는 메모 나와

정상진은 경찰에서 “살기가 싫었다. 세상이 나를 무시해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그의 방에서 발견된 다이어리에는 “존재 가치성 없음”, “집 밖에서도 가치성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생쇼만 하다가 가는 거야”, “나 같은 태생은 결국 이렇게 끝나는 거야”, “하는 일마다 한계에 부딪히고 삑사리 나고”,
“이제야 저도 오랜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한 순간을 맞을 거 같습니다”, “피로써 싸워. 내 마지막 순간을 위하여”, “내 인생 마지막 하이라이트. 멋지게 끝내자 마지막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SBS 방송화면 캡쳐.

정씨는 현주건조물방화죄, 방화치사죄, 살인죄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재판에서 정씨 측 변호인은 정상진의 정신상태에 문제가 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정씨가 우울증을 앓고는 있지만 정신병적인 상태는 아니었다며 받아들이지 않고, 사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람을 살해한 뒤 경찰의 총에 맞아죽겠다는 범행동기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치밀한 범행계획을 짠 데다, 자신의 범행에 대해 진지한 참회를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부모로부터 방치되고, 학교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도 보살핌을 받지 못한 점은 인정되지만 양형기준을 아무리 엄격하게 적용해도 사형에 처할 수밖에 없다”고 판시했다.


정씨가 항소하지 않아 사형이 확정돼 현재까지 미집행 사형수로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저작권자 ⓒ정락인의 사건추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