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사건

‘어금니 발견’ 백제 비명횡사 소년왕의 비밀


삼국시대 백제는 475년부터 538년까지 약 60년간 웅진(충남 공주)을 수도로 삼았다. 당시 재위했던 왕들은 충남 공주시 금성동 무령왕릉과 왕릉원에 묻혀 있다. 이 일대에는 무령왕릉을 포함해 무덤 7기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도굴되면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주인이 확인된 무덤은 1971년 발견된 제25대 무령왕(재위 501~523)과 왕비가 묻힌 무령왕릉이 유일하다.

국가유산청과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1∼4호 무덤에 묻힌 인물들이 제21대 군주인 개로왕의 직계 문주왕(22대)과 삼근왕(23대)을 비롯해 혈연관계에 있는 왕족들로 추정했다. 그리고 2023년부터 이 무덤들에 대한 재조사에 나선다.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권역의 1~4호분 재조사 현장(국가유산청 제공).

과거 도굴된 상태로 한 차례 조사가 진행됐으나 흙더미가 뒤죽박죽 섞여 있고, 바닥도 엉망인 상태였다. 연구소는 무덤 안에 남아 있는 흙을 모아 정밀하게 살폈다.


그러다 2호 무덤에서 어금니로 추정되는 치아 2점과 뼛조각 일부, 청색 옥이 달린 정교한 금 귀걸이, 은에 금을 도금해 줄무늬를 새긴 반지, 철에 은을 씌워 장식한 오각형 형태의 칼 손잡이 고리 장식 등을 발견하는 성과를 거둔다.

도금 줄무늬 반지(왼쪽)와 도깨비 문양을 띤 금제 장식칼 부속(오른쪽, 국가유산청 제공).

법의학 분석 결과 어금니의 주인은 10대 중후반 인물로 파악됐다. 연구소 측은 웅진 도읍기 시절 왕위 계승과 가계도, 어금니를 통해 추정한 연령대 등을 고려해 2호 무덤의 주인이 백제 제23대 왕인 삼근왕(재위 477~479)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문주왕은 고구려의 침략을 피해 한성에서 웅진으로 천도한 후 권신이자 병관좌평인 해구에게 살해당한다. 해씨 세력은 문주왕의 맏아들인 삼근왕을 왕으로 세웠는데, 당시 그의 나이 불과 13세였다.

공주 왕릉원 2호분 묘실 바닥에서 출토된 귀걸이 장신구(국가유산청 제공).

즉위 후 모든 권력은 해구가 처리하고 삼근왕은 그에게 휘둘려 국정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가까스로 해구를 죽여 부왕의 앙갚음을 했으나 재위 3년차이자 15세 때인 479년 11월에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으며 비운의 소년왕으로 남았다.

공주 왕릉원 3호분 출토 유리구슬들(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제공).

삼근왕의 어금니와 함께 발견된 뼛조각의 경우, 긴뼈의 일부분으로 추정되나 크기가 가로 1㎝, 세로 2㎝에 불과해 데옥시리보핵산(DNA) 등을 추출해 분석하기 어렵다고 한다.


2호를 비롯해 각 무덤에서는 여러 종류의 옥 1천여 점도 나왔다. 연구소는 “황색과 녹색 구슬에 사용된 납 성분은 산지가 태국으로 추정된다”며 “당시 동남아시아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교역망이 운영되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