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신영식 하사 수류탄 투척 사건
경북 상주가 고향인 신영식(23)은 155cm의 작은 키에 다부진 체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친구 꼬임에 빠져 집에서 뛰쳐나왔다. 안동역 앞에서 구두닦이 생활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돈이 모이면 사창가 등에 가서 탕진했다. 신은 1966년 3월 장기 하사로 제2군 하사관학교에 입학한 후 전방에 배치됐다.
육군 0사단 00연대 2대대 7중대 향도를 맡았다. 신영식에게는 군 입대 전 사귀던 부산사는 애인 박아무개씨(25)가 있었다. 어느 날부터 박씨와 연락이 닿지 않자 변심했다고 보고 배신감에 이를 갈았다.
1968년 5월7일 신은 25일간의 정기휴가를 얻었다. 그는 곧바로 박씨를 찾으려고 부산에 내려갔다. 부산 여기저기를 미친 듯이 헤맸으나 박씨를 찾는데는 실패했다. 그는 할 수 없이 14일 고향인 상주에 가서 가족들을 만났다.
다음날인 15일 일단 부대로 귀대한 신은 “고기를 잡는다”며 수류탄 3발을 갖고 나와 16일 안동에 도착했다. 하룻밤은 ‘경주 여인숙’에서 묵었다.
신은 18일 오전 8시 선술집에서 김아무개양(23) 등과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오후 7시30분에는 안동시 운흥동 문화극장 근처 무허가 대포집에서 입대 전에 알았던 친구 2명과 술을 마시면서 만취 상태가 됐다.
당시 극장에서는 한국영화 ‘복수’의 마지막회가 상영되고 있었다. 극장에는 영화를 보려는 관객들로 만원을 이뤘다.
밤 10시25분쯤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이 우르르 출구로 몰려 나왔다. 이때 술에 만취한 신영식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사람들에게 던졌다. 수류탄(M26)이었다. 신은 약 30초 간격으로 수류탄 2개를 던져 폭발시켰다.
큰 폭발음과 함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길바닥에 피를 흘리면서 쓰러졌다. 초등학생 2명을 포함한 5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다친 사람도 25명이나 됐다. 극장에서 퇴장하던 관람객들이 혼비백산해 비명소리와 함께 뛰는 바람에 일대는 아수라장이 됐다.
신영식은 순찰 중이던 안동경찰서 수사계 최방연 형사(39)에게 발견됐다.
최 형사는 갑작스런 폭음에 놀라 얼굴을 돌렸을 때 “내가 죽일 놈이다”라고 중얼거리며 비실비실 극장 앞에서 빠져나가던 신을 발견 붙잡았다. 잡힌 순간 신은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서 또 하나의 수류탄을 꺼내들고 안전핀을 뽑았다. “건드리면 터드린다”고 위협했다.
최 형사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자 “달려들면 누구나 죽여 버린다”면서 유유히 걸어서 현장에서 150미터쯤 떨어진 여인숙 ‘향영’으로 도망쳤다. 당시 신은 국방색 잠바에 감색바지, 운동모자를 썼고, 구두는 극장 앞 가게에 벗어둔 채 맨발이었다.
최 형사는 즉각 응원부대를 불러 동료 4명과 함께 신이 숨은 방을 포위, 수류탄을 손에 든 채 이불에 기대어 비스듬히 누워있는 신을 체포했다. 신은 군 수사기관에 넘겨졌다.
신은 왜 이런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것일까. 신은 19일 오후 2시쯤 기자들과 만나 범행 동기 등을 스스럼없이 말했다. 군 수사대의 심문을 받은 뒤 기자들 앞에 나타난 신은 기자들이 ‘범행동기’를 묻자 “냉혹한 사회에 대해 복수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직접 적인 동기는 군에 입대할 당시의 애인 박씨가 부산에서 다른 남자와 산다는 말을 듣고 수류탄으로 때려 부수려했다”면서 현재의 심경은 “할일을 다 끝내 행복하다”고 까지 말해 주위를 아연케 했다.

그는 또 범행에 ”후회하지 않는다“며 ”영화 관객들에게 수류탄을 던진 이유는 영화가 ‘복수’여서 복수를 하기 위해 극장 앞에 수류탄을 던졌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신은 군용물절도, 폭발물 사용죄, 살인 및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군사재판에 회부됐다. 1968년 5월28일 신영식의 애인 박씨가 재판에 나와 증언대에 섰다. 그는 신을 배신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부산 남포동에 사글세 2만원 짜리 방을 구해놓고, 신영식으로부터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자신은 배신한 것이 아니고 수 십 일 동안 연락이 안 돼 못 만났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또 신영식이 사형을 면할 경우 출옥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그해 11월21일 육군고등군법회의은 신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다음해인 1969년 2월25일 대법원은 신영식에 대한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대로 사형을 확정했다.
그리고 약 5개월 뒤인 7월31일 오후 2시 신은 육군 00부대 뒷산에서 총살형이 집행됐다. 다만 본인의 희망에 따라 형집행 직후 안구가 적출됐고, 실명한 2명의 파월 장병에게 각각 각막이식 수술이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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