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간부 짐승 의붓아버지 죽인 ‘김보은·김진관’ 사건
김보은(여)은 어릴 적 아버지를 잃었다. 7살이 되던 해 어머니는 검찰 공무원이자 청주지방검찰청 충주지청에서 근무하는 김영오와 재혼한다. 처음에는 아빠가 생겼다는 기쁨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러나 2년 후 김보은이 국민학교 2학년이 되자 김영오는 본색을 드러냈다. 1979년 어느 날 밤 아내가 잠시 집을 비우자 김영오는 의붓딸을 안방으로 끌고가 성폭행한다. 지옥같은 생활의 서막이었다.
김영오는 공휴일이나 방학 때는 의붓딸을 하루종일 방에 가둬놓고 몹쓸짓을 했다. 말을 듣지 않으면 폭언과 폭행, 협박이 이어졌다. 그는 단속할 때 압수한 물건을 집으로 가져와 사사로이 감상하는 등 음란물에 중독돼 있었다.
김영오의 범행은 점점 대담해지고 변태성향을 띄기 시작했다. 모녀인 아내와 김양을 같이 눕혀놓고 번갈아 성폭행하고 온갖 변태행위를 요구했다. 김양이 생리 중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거의 매일 성폭행 했다.

보은이와 가정교사도 성폭행하고 담뱃불로 온몸을 지졌다. 다방종업원이나 술집 여자들도 집안으로 끌어들여 때리고 성폭행하는 등 엽기적인 행각을 벌였다. 이같이 가족 등을 대상으로 범행을 서슴없이 저질렀지만 누구도 김영오를 신고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식칼과 쥐약을 보여주며 “이혼이나 고소하면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했고, 검찰의 위세를 당해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참다못한 아내가 시댁식구들이나 남편의 친구들에게 호소해 봤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보은이나 남편에게 몹쓸 짓을 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방법이 없었다. 때문에 엄마는 딸에게 “너 하나 참으면 집안이 편안하다”면서 희생을 요구했다.
김보은은 1991년 서울에 있는 4년제 종합대 무용과에 입학하면서 기숙사 생활을 한다. 비로소 지옥같은 집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의붓아버지는 김보은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성인이된 의붓딸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기 시작한다. 주말에는 반드시 충주에 있는 집으로 오게 한 후 성폭행했다. 여전히 악마같은 계부 김영오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김보은은 학교에서 동갑내기이자 같은 학교 사회체육과 남자친구(김진관)가 생기면서 큰 변화가 찾아온다. 둘은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그럴수록 김보은은 김진관에게 의붓아버지에게 짓밟히고 더렵혀진 자신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결국 자신이 겪었던 일과 괴로운 사정을 모두 털어놓는다.
김진관은 김영오를 찾아가 성폭행을 그만 둘 것을 요청하였으나 오히려 “다 잡아 족치겠다. 확그냥죽여 버리겠다”는 협박을 당한다.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고 판단한 김진관은 결국 김영오를 처단하기로 결심한다.
1992년 1월16일 김진관은 서울 창동시장에서 범행에 사용할 식칼, 공업용 테이프, 장갑 등을 구입한 후 충주에 내려간다. 이때 김보은은 충주시 역전동 집에 대기하고 있었다.
김진관은 김보은과의 전화통화로 범행시간을 정하고, 다음날인 1월17일 오전 1시30분쯤 김보은이 열어준 문을 통해 집안으로 들어갔다.
당시 김영오(53)는 속옷 차림으로 술에 취해 골아 떨어져 있었고, 김진관은 방으로 들어가, 머리맡에서 식칼을 한 손에 들어 김영오를 겨누고 양 무릎으로 양팔을 눌러 꼼짝 못하게 하고 흔들어 깨웠다. 이어 들고 있던 식칼로 김영오의 가슴을 세게 찔렀고, 칼날이 심장에 바로 꽂히면서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김보은과 김진관은 강도살인을 당한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김영오 시신의 양 발목을 공업용 테이프로 묶었다. 그런 다음 장롱 속에 있던 현금을 가져가게 하고 서랍 등을 뒤져 방안에 흩어 놓았다. 김진관이 달아난 후 김보은은 옆집에 가서 강도를 당했다며 도움을 요청한다.
경찰 조사에서 김보은은 “복면을 한 청년 3명이 침입해 흉기로 위협하면서 돈을 요구하다가 반항하는 의붓아버지를 찌르고 달아났다”고 진술했으나 집안에 외부 침입 흔적이 없고, 진술이 자주 엇갈리고 일부 사실과 다른 점이 의심을 샀다. 특히 성인인 아버지와 의붓딸이 한 방에서 그것도 한 이불을 덮고 잤다는 것에 의문을 품는다.
처음에는 강도사건으로 수사를 진행하던 경찰은 이런 점을 집중 심문했다. 현장에서 가족이 아닌 제3자의 지문, 바로 김진관의 것이 나오자 경찰은 그를 체포해 충주로 압송했다. 경찰은 김보은에게 김진관을 아느냐고 물었고, 더이상 숨길 수 없다고 판단한 김보은은 “내가 범인이”라며 범행 일체를 자백한다.
9살 때부터 12년 동안 성폭행을 당한 사실로 털어놓는다. 이렇게해서 범행동기가 된 의붓아버지 김영오의 상습 성폭행도 드러나게 된다. 김진관의 아버지가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상담을 의뢰하면서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사회에 큰 충격을 준다.
전국에서 ‘김보은 김진관 사건 공동대책 위원회’가 구성되어 이들의 구명 활동에 나선다. 공동대책위원회는 김보은과 김진관의 무죄를 주장하였으며, 22명의 무료 변호인단도 구성했다. 여성단체에서도 들고 일어나 성폭력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공동대책위와 변호인단은 김보은과 김진관의 정당방위를 주장한다. 재판부는 김보은에게 정당방위의 요건 중 하나인 ‘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있다고 볼 여지가 있음을 인정했다. 지금 현재 성폭행을 당하거나 당할 위험이 있지는 않지만, 지금까지의 흐름으로 볼 때, 언제 갑자기 일어나서 성폭행을 가할지 모른다는 논리다.
하지만 김영오를 살해한 행위가 사회 통념상 사회적 상당성을 결여하여 정당방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방에서 ‘자고 있는 사람을 깨워서’ 살해한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김진관에게도 정당방위 성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사건에서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는 정당방위의 현재성은 인정될 수 없고, 긴급피난의 현재성만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보충성 또는 균형성이 결여되어, 긴급피난도 성립될 수 없다고 한다.
1심 재판에서 검찰 측은 “그렇게 오랫동안 성폭행을 당하면서도 집을 나가는 등 어떤 시도도 안 했냐”고 물었고 김보은은 “의붓아버지가 몸을 요구할 때마다 말을 듣지 않으면 가족을 모두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해 두려움 때문에 반항할 수 없었다”며 “내가 반항했다면 그는 정말 나를 물론 온가족을 죽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은의 어머니(51)는 증인으로 나와 “죽은 남편이 평소 포악하고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로 성도착 증세를 보였고, 남편과 딸의 관계를 알았지만 이혼이나 고소할 생각은 전혀 할 수 없었다”며 “전처는 담뱃불로 온몸을 지지는 등 학대를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갔고, 전처 소생의 딸은 시끄럽게 운다고 남편이 이불을 뒤집어 씌워 질식해 숨졌다. 딸을 희생시켜오다 이런 결과를 낸 것이 죄스럽다”고 증언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 평소 김씨가 가족들을 위협하는데 사용했던 식칼, 쥐약, 음란비디오테이프 26개, 음란서적 5권 등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1심 재판부는 직접 살인을 한 김진관에게 징역 7년, 김보은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김진관에게 징역 5년, 김보은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으로 감형했다. 이들의 형량은 대법원에서 확정된다.

법정에서 김진관은 “지상에서 어머니 다음으로 사랑했던 여자의 고통을 알고 괴로운 나머지 군대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다”며 “나는 보은이의 의붓아버지를 죽인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보은이를 살린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은도 “옥살이를 한 지난 7개월이 지난 22년간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었다. 밤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더 이상 밤새도록 짐승에게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라며 “세월이 가면 언젠가 마음의 상처는 아물겠지만 그 쓰라린 기억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제 죄값은 달게 받겠지만 진관이에게 관대한 처분을 내려달라”며 흐느꼈다.
이들의 최후진술을 듣고 있던 방청석 여기저기서도 울음이 터져나왔다.
김보은은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 사면으로 사면 복권되었고, 김진관은 잔여형의 절반을 감형받았다. 김진관은 1995년 2월17일에 출소한 후 1998년 2월3일과 7월 16일에 복권을 신청했으나 기각됐다.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 공론화가 금기시되었던 근친 성폭력의 실상이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으며, 1991년에 일어난 김부남 사건과 함께 1993년에 성폭력 특별법이 제정되는 데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또한 살인 사건에 대해서 집행유예가 선고된 최초의 고등법원 판례이기도 하다.
한편 두 사람이 구속되어 있던 기간 동안, 김보은의 어머니와 김진관의 아버지는 옥중에 있는 딸과 아들을 대신하여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가 제정한 제1회 인권상을 받는다.
김보은과 김진관의 사랑은 결실을 맺지 못했고, 두 사람은 김진관의 복역 이후 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두 사람은 각각 개명한 후 조용한 삶을 살고 있다고 전해진다.■
<저작권자 ⓒ정락인의 사건추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