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생활

‘기자 명함을 가진 영업사원’이 필요했던 그 회사


그 회사는 여의도에 있었다. 일단 취업을 하면서 급한 불은 껐지만 현실은 참담했다.

대표를 제외한 직원은 7명. 이중 2명이 대표와 친인척 관계였다. 건축관련 잡지를 발간했는데, 매체라기 보다는 상품정보지에 가까웠다. 언론체계나 언론에 대한 마인드도 없었다.

원래 취재기자는 한 명도 없었는데, 처음 뽑은 것이 나였다. 회사 규모가 작더라도 기자명함을 갖고 현장에 나가 치열하게 취재하고 기사를 쓰고 싶었는데, 이곳은 기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기자 명함을 가진 영업사원이 필요했던 거였다.

어쩌다 현장에 나가면 영업사원 취급을 받았는데, 자존심도 상하고 심한 자괴감까지 들었다. 당장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대표 처남인 편집팀장에게 “나는 영업사원이 되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라고 따졌더니, 그는 “함께 언론 체계도 만들고, 기자도 충원해서 취재기능을 활성화시켜 보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이 말을 믿고 계속 다녔는데,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쌓이기 시작했다. 9월 말부터 회사 측에 이런 문제를 하나씩 제기했다. “왜 약속이 다르냐”, “이곳이 언론사가 맞냐” 등등. 10월부터는 회사 사람들과 부딪히며 갈등이 시작됐다.

나는 좀 바꿔보려고 했는데, 그들은 아무도 내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고, 내 편도 없었다. 그땐 정말 미칠 것만 같았고, 점점 막다른 길에 몰려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을 그 사람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걱정과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았다.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 있다보니 생각도 벼랑 끝으로 몰렸다.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물론 그때의 내 생각과 판단은 백 번 천 번 생각해도, 짧고 어리석었다. 불투명한 미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의 잘못된 생각과 판단이 결국 서로에게 큰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회사를 그만둔 후 방에 틀어박혀 매일 술만 마시며 방황했다. 가슴에 큰 구멍이 난 것처럼 허전하고, 심장이 잘려 나가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세상에서 유일한 내 편,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고립무원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외로움이 밀려왔다. 1995년 11월은 내 인생에서 ‘가장 슬프고 잔인한 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