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생활

협박과 회유

물류신문 2001년 9월10일자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화물차 지입사기 조직 66개와 두목 및 조직원 250명이 공개되자 물류업계는 이렇게 방대한 사기조직이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멘붕 상태에 빠진 것은 명단에 공개된 사기조직이었다.

베일에 가려졌던 자신들의 실체가 드러나자 마치 발가벗겨진 신세처럼 우왕좌왕했다. 이 파장이 어디까지 번질지 몰라 숨죽이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이렇게 언론에 적나라하게 범죄조직의 실체가 드러났는데도 수사기관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사기 조직은 더욱 의기양양했다. 잔뜩 움츠려있던 그들은 또다시 함정을 파놓고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마치 법의 면죄부라도 받은 것처럼 “우리가 사기꾼이면 경찰이 가만 있겠느냐”며 큰 소리를 쳤다.

이들은 자신들의 실체를 세상에 공개한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회사로 협박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거의 매일 적게는 몇 번에서 많게는 수십 통씩 전화가 걸려왔다. 그들은 “네가 정락인이야”하면서 다짜고짜 험한 욕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죽여 버린다” “파묻어 버린다” “밤길 조심해라”는 아주 기본적인 것이었다.

나는 이들의 전화를 피하지 않았다. 회사에 있을 때 걸려오는 전화는 100% 다 받았다. 어차피 시작된 전쟁이었고, 싸움을 피할 이유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의 욕설을 다 듣고 있지는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세 번만 참는다”고 하고, 욕을 할 때 마다 “두 번 남았다” “한 번 남았다”고 말한 뒤 그들을 하대하며 일부러 약을 올리고 화를 돋구었다.

내가 반말을 하면 그들은 더 핏대를 올리면서 “너,ㅆㅂ놈 몇 살 쳐먹었냐”고 물었다. 내가 나이를 말하면 “그들은 어린 놈이 반말을 한다”며 다시 한번 목청을 높인다. 그때 “그래, 네 자식들도 아버지가 사기꾼인 것을 아느냐”며 자존감을 깔아 뭉갰다.

그런다음 전화 수화기를 책상위에 놓았다. 그러면 욕설 대신 요란한 모기우는 것 같은 소리만 들린다. 그들은 내가 욕을 듣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욕을 듣지 않는 나는 감정에 기복이 없었지만 그들은 점점 이성을 잃어갔다.

어느새 모기소리가 잦아들면 수화기를 들어 “사기꾼이 왜 그리 말이 빨라, 잘 못알아 듣겠잖아. 다시 천천히 똑바로 해봐”라며 다시 한번 화를 돋구었다. 그리고는 수화기를 다시 책상위에 놓았다.

그러면 또 다시 화난 모기소리가 저만치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그러다 제 풀에 꺾여 전화를 먼저 끊는다. 그들은 내게 전화해 협박하려고 했다가 오히려 내게 놀림을 당했다. 나는 사기 조직원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갖고 놀았다. 그들은 나와 기 싸움에서 일방적으로 지고 있었던 것이다.

한 번은 회사에 있는데 불청객 세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한 명은 깔끔하게 양복을 입고 있었고, 두 명은 조폭들의 대명사인 깎두기 머리를 하고 있었다. 이들이 조폭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안으로 들어와 “누가 정락인 기자입니까”라고 물은 뒤 내 자리로 다가왔고, 양복입은 친구가 15도 인사를 하더니 “회장님께서 정기자님과 강남에 가서 술 한잔 하고 싶답니다. 지금 밖에 와 기다리시니 함께 가시지요”라고 했다.

나는 버럭하며 “회장인지 뭔지에게 전해라. 나와 만날 곳은 교도소다. 니들은 교도소에 들어가 있고, 내가 면회가면 그때나 보자해라”고 쏘아붙였다.

화물차 지입사기 조직은 창시자인 S씨와 L씨가 대부로 통한다. 어느 날 이중 L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저 000입니다. 정기자님께서 저를 사기조직의 두목으로 표시해 놓으셨던데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얼마면 되겠느냐”며 사실상 백지수표를 내밀었다.

그도 “한 번 만나자”고 했지만, 나는 앞의 조폭들에게 한 것 처럼 “교도소에 들어가면 면회는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협박과 회유가 통하지 않자 이들은 나를 위해하기로 마음먹었다. 중앙대 대학원에 다닐 때다. 그날은 학교에 가지 않았는데, 밤 11시쯤 문자메시지가 왔다.

‘학교에서 노숙하냐 쌍넘아 빨오라고 죽아버려’라고 찍혀 있었다. 이들은 내가 어느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지 알아내고 청부폭력배들을 보내 학교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학교에서 나오지 않으니까 화를 내며 문자를 보냈던 것이다.

이들의 협박이 심해질수록 나는 더 이를 악물었고 추적하는 강도는 더욱 세졌다. 나는 사기조직을 분열시켜야겠다고 마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