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 아이디(ID)에 얽힌 사연
나는 기자 생활하면서 회사(언론사)의 공식 이메일 아이디(ID)는 하나만 사용했다. ‘freedom’이다.
재직순으로 보면 물류신문(freedom@klnews.co.kr), 중앙일보(freedom@joongang.co.kr), 시사저널(freedom@sisapress.com), 탐사저널(freedom@tamsaj.com)이다.
개인이메일 ID에는 ‘free’가 들어있다. 이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내게 “왜 그렇게 자유를 갈망하느냐?”고 묻는다. 이렇게까지 줄기차게 같은 ID 하나만을 고집하는 것을 보면 숨은 사연이 있다고도 생각한다.
내가 ‘free’ 또는 ‘freedom’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1995년 개봉된 영화 ‘브레이브하트’를 보고 나서다.
특히 마지막 장면이 강렬한 울림을 줬다.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고 ‘Freedom~!!!’을 외치며 죽음을 선택한 주인공 월레스(멜 깁슨). 그 마지막 모습을 보는 순간, 내 온몸에 전율이 쫙 퍼졌다.



이 장면을 본 나는 한동안 침묵했다. 죽음 앞에서 외친 ‘freedom’에서 진정한 자유를 봤기 때문이다. 만약 월레스가 목숨과 타협했다면 수많은 사람들을 절망에 빠트렸을 것이지만, 그는 자신의 목숨과 희망을 바꿨다.
월레스는 내게 “자유는, 신념은, 저런 것”이라는 걸 일깨워줬다. 그때의 그 모습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나도 월레스처럼 죽음 앞에서도 신념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아이디’로 쓴 것이 지금까지 왔다.
사실 ‘자유’는 누구나 갈망한다. 크게는 ‘국가’와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작게는 ‘자기 자신’ 안에서도 자유를 찾는다. 내가 갈망하고, 찾고, 지키고 싶은 자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 살아가면서 ‘신념’을 끝까지 지켜가겠다는 생각, 어쩌면 무모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걸 끝까지 지켜가는 것도 쉽지 않다. 끊임없이 타협을 요구받고, 그걸 무너뜨리기 위한 유혹도 뿌리쳐야 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시험에 들게 한다.
그렇다고 신념을 ‘아집’이나 ‘독선’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독불장군이 돼서도 안 된다. 내 생각이 옳다고 남한테 강요해서도 안 된다. 진정한 자유와 신념은 사회조직과의 어울림, 즉 조화 속에서 찾고 지켜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행동으로 보여주고 실천하는 것이다. 실천하지 않는 신념은 위선일 뿐이다. 자유를 찾는 것도 신념을 지켜가는 것도, 결국 ‘나’에게서 출발한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내 자신의 일은 하찮게 여기면서 국가나 사회를 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生과 死의 기로에서 자신의 ‘신념’을 선택하고 죽음을 맞기란 쉽지 않다. 죽음 앞에서도 버릴 수 없는 것, 총칼 앞에서도 타협할 수 없는 것, 돈 앞에서도 흔들릴 수 없는 것, 그건 바로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자유(freedom)와 ‘신념'(belief)’이다.

기자생활에서 나는 신념을 지켰다. 초심을 잃지도 않았다. 숱한 위험과 위기속에서도 나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다. 이메일 아이디에 불어넣은 월레스의 혼이 나를 떠나지 않았다. 이것을 지킨 것이 내 기자생활에서의 큰 가치이자 자부심이다.
월레스가 죽음 앞에서 외쳤던 자유.
지금도 내 가슴을 뜨겁게 한다.
“Freed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