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충격에 빠트린 5대 미제사건
일본에서는 매년 발생하는 범죄 중 상당수가 미제로 남고 있다. 유족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2010년에는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폐지됐으며, 이를 계기로 현지 경찰은 장기 미제사건에 대해 적극 수사에 나서고 있다.
이에 대한 성과로 26년간 미궁에 빠져있던 ‘나고야 주부 살인사건’과 18년간 미해결 상태이던 ‘다쓰노시 여아 살인사건’ 등을 해결했다.
일본에는 여러 충격적인 미제사건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미해결 사건 5가지를 꼽았다.
1.글리코·모리나가 사건 (グリコ・森永事件)
1984년 3월18일 오후 일본 굴지의 제과업체 에자키 글리코의 사장 자택에 권총과 공기총으로 무장한 괴한 세 명이 침입한다. 이들은 욕실에서 목욕 중이던 에자키 사장을 알몸 채로 납치해 달아난다.
다행히 에자키는 범인들의감시가 소홀한 틈을 이용해 탈출에 성공한다. 같은 해 4월2일 에자키 사장의 자택에 협박 편지가 배달됐고, 이후 미이니치 신문 등에도 소위 ‘도전장’이 도착한다.
이후 정체불명의 범인은 ‘괴인 21면상’이라는 이름으로 언론과 경찰에 편지를 보내며 글리코 및 모리나가 제과 등 여러 식품 회사에 금품을 요구하고 협박한다.

범인은 슈퍼마켓에 청산가리가 든 과자를 놓아두고 “독이 든 과자”라는 경고문을 남기는 등 대담한 수법을 사용했다. 이로 인해 일본 전역의 제과업계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소비자들은 공포에 질렸다.
범인은 1985년까지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녹음된 협박 테이프를 보내고, 경찰을 조롱하는 듯한 내용의 편지를 보내는 등 치밀하고 대담하게 행동했다. 현지 경찰은 연인원 130만 명의 수사 인력이 동원했지만, 결국 범인을 잡지 못하고 2000년 2월 공소시효가 만료돼 영구미제로 남았다.
2.세타가야 일가족 살해 사건 (世田谷一家殺害事件)
2000년 12월 30일 밤부터 31일 새벽 사이에 도쿄도 세타가야구에 살던 미야자와 일가족 4명(부모와 8세 딸, 6세 아들)이 자택에서 침입한 괴한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한다.
범인은 일가족을 살해한 후에도 현장에 머물며 냉장고에서 음식을 먹거나 컴퓨터를 사용하는 등 기이한 행동을 했다. 그는 현장에 모자, 점퍼, 힙색, 칼 등 수십 점의 증거물과 함께 자신의 DNA, 지문, 신발 자국 등을 남겼다. 특히 신발은 한국에서 제조돼 영국 브랜드 ‘슬레진저’로 판매된 제품이었고, 힙색에서는 미국 네바다 사막의 모래가 발견되는 등 범인의 신원을 특정할 만한 구체적인 단서들이 적지 않았다.

범인의 혈액형은 B형으로 밝혀졌고, 남겨진 증거를 토대로 몽타주까지 제작됐지만, 지금까지 범인은 잡히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은 일본 내 강력 범죄 공소시효 폐지를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3.오카야마 지하호수 행방불명 사건 (岡山地下湖行方不明事件)
1991년 3월15일 일본 고치 대학 동아리인 탐험부 회원 13명은 오카야마현의 천연기념물인 히메사카 종유동으로 탐사를 떠난다. 이들은 사전에 허가를 받지 않고 탐사에 나섰다.
동굴 탐사 중 회원 중 한 명인 나구라 유우키(남)가 동굴 깊숙한 곳에 있는 수심 약 30m의 지하 호수에서 수영하다가 실종된다.
이상한 것은 나구라가 사라진 지 약 4시간이 지나서야 경찰에 실종신고가 접수된데다 현장에 있던 12명의 동아리 회원들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고 계속해서 바뀌었다는 점이다.
더욱이 동아리 회장이었던 하쿠마이 미호(여)는 사건 경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기자들을 피해다녔고, 결국 동아리에서 제명됐다.

이러한 여러 의문점들로 인해 인터넷상에서는 단순 실종사고가 아닌 집단 따돌림이나 살인사건 후 유기 등 다양한 음모론이 제기됐다. 이후 지금까지 진실은 밝혀지지 않은 채 추측과 루머가 난무하며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4.이노카시라 공원 토막 살인 사건 (井の頭公園バラバラ殺人事件)
1994년 4월 21일 오전 도쿄도 미타카시에 위치한 이노카시라 공원 쓰레기통에서 청소부가 이상한 비닐봉지를 발견한다. 그 안에는 토막난 시신 일부가 들어 있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인근 수색에 나섰고 총 7개의 쓰레기통에서 각각 비닐봉지에 담긴 27조각의 토막 시신을 찾아낸다. 발견된 시신은 신체의 약 3분의 1에 불과했고, 머리와 몸통 대부부은 찾지 못했다. 신원 확인결과 피해자는 1급 건축사였던 가와무라 세이치(남·35)였다.
시신 조각들은 모두 약 20cm 크기로 균일하게 절단됐으며, 이는 전기톱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됐다. 또한 모든 혈액이 완전히 제거됐고, 비닐 봉지에는 배수 구멍이 뚫려 있었다. 피해자의 지문 대부분도 훼손된 상태였습다.
시신을 절단하고 혈액을 제거하는 방식이 매우 정교해 범인이 해부학적 지식이 풍부한 의료 전문가이거나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사람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정황상 시신은 다른 곳에서 훼손된 후 공원에 유기된 것으로 판단됐다. 시신이 담긴 봉지를 묶는 데 사용된 매듭이 특정 어부들이 사용하는 방식과 유사하다는 점이 특이점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범인을 특정할 만한 명확한 증거나 목격자가 확보되지 않아 수사는 난항을 거듭했다. 2005년에는 피해자와 외모가 비슷한 ‘K’라는 남성이 자신이 범죄 조직으로부터 감시당하고 있었으며, 피해자가 자신으로 오인돼 살해당했을 수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결국 이 사건은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 채, 2009년 4월23일에 공소시효 만료로 인해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일본은 2010년에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했지만, 이 사건은 그 이전에 발생해 소급 적용되지 않았다.
사건의 잔혹성과 미스터리한 요소들로 인해 다양한 도시 전설과 추측이 난무했으며, 심지어 사건 발생 2년 전 출시된 비디오 게임 ‘신 메가미텐세이’에서 이노카시라 공원에서 토막 살인사건이 발생한다는 내용이 등장한 것과 엮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5.마츠오카 신야 실종 사건 (松岡伸矢くん失踪事件)
1989년 3월 7일 시코쿠 지방 도쿠시마현 사다미츠정 (현재는 쓰루기정으로 편입)에서 당시 4세였던 마츠오카 신야(남)가 할아버지 집에서 불과 20초 만에 감쪽같이 사라진다.
당시 신야의 가족은 외할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바라키현에서 도쿠시마현의 친척 집을 방문하는 중이었다. 사건 당일 아침, 신야는 아버지를 포함한 다른 친척들과 함께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잠시 한눈을 팔아 동생을 집 안으로 데려다주는 약 20초~40초 사이에, 집 앞마당에 혼자 있던 신야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아이가 없어진 상황이 너무 순식간이어서인지, 목격자도 없었다. 납치나 가출 등 그 어떤 단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실종 열흘 후 가족들에게 “위로금을 주겠다”는 정체불명의 전화가 걸려왔으나, 이 전화가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사건 발생 직후부터 신야에 대한 여러 목격담과 제보가 있었지만, 신빙성 있는 내용은 없었다. 북한에 의한 납치 가능성 등 다양한 추측만 무성했다. 이 사건은 1991년에 발생한 카모마에 유키 양 실종 사건, 이시이 마이 양 실종 사건과 함께 일본의 ‘3대 미해결 아동 실종사건’으로 불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