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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거북이’ 터틀맨 임성훈의 마지막 순정


1970년 9월3일 전북 전주에서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임성훈이다.

아버지는 육군 장군(육군 소장) 출신으로 여러 근무지를 옮겨다녔으며 터틀맨이 태어난 곳도 그중의 하나다. 학창시절은 서울에서 보냈고, 동북고를 졸업했다.

그는 선천성 심근경색으로 군 면제 판정을 받았지만 아버지의 명예를 위한다며 군에 자원입대해 현역으로 복무했다. 터틀맨은 2001년 결성된 3인조 혼성그룹 거북이 1집 앨범 로 데뷔했다.

‘거북이’는 터틀맨의 필명이다.

최초 멤버는 리더 겸 래퍼 터틀맨, 래퍼 지이(본명 이지이), 메인 보컬 수빈(본명 임수빈)이었고, 1980년대 운동권 가요인 <사계>를 힙합과 랩으로 리메이크해 인기몰이에 나섰다.

2003년 수빈이 개인 사정으로 그룹에서 탈퇴한 후 금비(본명 손연옥)가 투입됐다.

이때부터 거북이의 전성시대를 구가한다. 2003년 11월 2집 정규앨범에서는 <왜이래>가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곡은 “갑자기 왜이래 난데없이 왜이래 화만 내면 무슨 일이 잘되나 안된다면 내일 해, 화 내지 말고 내일 해”라며 쉽게 화를 내는 현대인들에게 여유로운 마음을 강조했다.

터틀맨은 리메이크곡과 1집 몇 곡을 제외한 대부분의 곡을 직접 작사, 작곡, 편곡까지 하며 다재다능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독특한 발성의 마왕같은 랩이다. 터틀맨은 자신의 독특한 랩 발성법은 군대에서 구령을 붙이다가 터득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발성이 독특해서 사람들이 성악을 했나 오해를 하기도 하는데 사실 이 발성법은 군대에서 ‘차렷’ 등의 구령을 붙이는 것을 오래하면서 터득한 발성법”이라며 “이 발성을 랩으로 연결시키려고 2년을 연습했다”고 말했다.

2004년 11월 발매한 3집 앨범에서도 역시 거북이의 희망적인 가사와 흥겨운 리듬은 계속됐고 <빙고>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 거북이가 한창 인기를 구가할 때 터틀맨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다.


2005년 4월 경기도 안성에서 열린 한 케이블 음악채널 공개방송 출연을 위해 서울 잠원동 숙소를 나서다 갑자기 쓰러져 병원 중환자실로 실려갔다. 심장혈관이 갑자기 막혀서 심장 근육이 손상되는 ‘심근경색’이 발병한 것이다.

이때 지이와 금비는 아예 병실소파에서 숙식을 함께 했을 정도로 멤버 간 정이 남달랐다. 그해 터틀맨은 심근경색으로 두 번이나 대수술을 받았다. 이때가 거북이에게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였다.

이후 터틀맨은 건강회복을 위해 1년 넘게 활동하지 못했고, 일부에서는 건강이상설과 함께 은퇴설이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수술 후 꾸준한 치료와 재활운동 덕에 많이 호전됐다.

퇴원 이후 그는 “하루에도 캔커피를 10여병 마셨고 건강에도 전혀 신경을 안쓰고 운동도 안해 건강이 나빠졌다”고 말하면서 “이제 건강도 챙기고 평생 심근 확장제를 복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진은 터틀맨에게 “30kg을 빼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롭다”며 다이어트를 권유했다. 터틀맨도 체중 감량에 나섰지만 특유의 묵직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는 “무대에서 쓰러지는 한이 있어서 내 사람들을 위해 내 갈 길을 가겠다”며 체중감량을 포기했다. 터틀맨은 수술 직후 거동이 불편한 상황에서도 음반작업에 매진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음반이 바로 2006년 7월에 발매된 4집 앨범 ‘거북이 사요’다. 터틀맨이 총 프로듀서를 맡은 이 앨범은 역경과는 상관없이 세상을 재미있게 살자는 테마로 제작됐다.

타이틀곡 <비행기>에 대해서는 “1차 심근경색 수술 후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계속 귓가에 맴돌았던 멜로디를 곡으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비행기’는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꿈꿨지만 쉽게 탈 수 없었던 비행기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는 가사로 동심을 자극하는 노래다. 거북이는 ‘비행기’로 데뷔 후 첫 지상파 가요프로그램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그해 12월에 열린 제16회 서울가요대상에서 본상을 수상했다.

이런 와중에도 거북이는 전 소속사와의 전속계약과 관련 분쟁을 1년 넘게 벌여 왔고 급기야 2007년 1월18일 법원으로부터 “전 소속사에 4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해 10월 터틀맨은 1인 연예기획사 ‘부기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2008년 2월에는 1년6개월여 만에 <싱랄라>가 수록된 정규 5집 ’오방간다’를 발매했다. ‘타이틀곡 싱랄라’는 거북이 특유의 낙관적이고 밝은 분위기를 잘 살려낸 곡이다. 이어 강렬한 느낌의 댄스곡 ‘마이 네임(My Name)’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4월2일 오후 3시쯤 터틀맨은 서울 금호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당시 소속사 측은 “매니저가 집을 찾았는데 전화도 안 받고 문도 잠겨있었다”며 “열쇠 수리공을 불러 집에 들어가 보니 침대에서 자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깨워도 안 일어나고 호흡이 없길래 119 구급대를 불렀다”고 설명했다. 사인은 심근경색이었고, 그의 나이 38세였다.

터틀맨의 유해는 화장을 거쳐 경기도 안성 유토피아 추모관에 안치됐다. 터틀맨의 사망은 멤버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준비없이 맞이한 이별이었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리더의 공백으로 거북이는 존폐 기로에 서게 된다.

결국 2008년 9월 멤버인 지이와 금비는 기자회견을 열고 거북이의 해체를 공식 발표했다. 데뷔 7년 만이다. 지이는 “거북이는 항상 우리 셋이 함께 했고, 그러기에 힘든 일이 닥쳐도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오빠가 없는 지금 거북이가 추구하던 음악세계를 이끌어 가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거북이가 해체한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눈물을 흘렸다.

금비와 지이는 “거북이의 노래는 오빠가 작곡을 해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곡을 받는다면 거북이가 추구하던 음악세계가 묻힐 것 같다”며 해체 이유를 밝혔다.

거북이 해체 후 지이는 2014년 4월 작곡가 겸 프로듀서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그해 9월에는 남편과 함께 일렉트로닉 DJ로 데뷔했다. 금비는 2019년 기획사(GB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사업가로 변신했다.

2020년 12월9일 방송된 Mnet ‘AI 프로젝트 다시 한번’에서는 터틀맨의 모습을 AI 기술로 재현됐다. 공연에는 터틀맨의 어머니와 형도 참석했다.

생전 녹음해둔 추임새와 함께 터틀맨의 모습이 무대에 등장하자 그의 가족들과 관객들은 눈물을 터트렸다. 터틀맨은 생전 모습 그대로 멤버들과 함께 무대를 꾸몄다. 거북이 완전체의 마지막 공연이었다.


첫 사랑과의 순정 끝까지 지킨 터틀맨

터틀맨은 학창시절에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다. 군에서 제대하기 직전까지 변함없이 사랑을 이어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연락이 뚝 끊겼다. 자주 오던 편지도 오지 않았다. 갑작스런 태도 변화에 터틀맨은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휴가를 나와 여자친구 집 앞에서 매일 기다렸지만 끝내 만나지 못했다. 귀대를 앞두고 여자친구의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때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다.
터틀맨은 당시 상황을 듣고는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그의 여자 친구는 성폭행을 피하려다 교통사고를 당했던 것이다.이후 터틀맨은 첫사랑 K를 잊지 못해 다른 여성을 만나거나 결혼할 생각을 접었다.
그는 끝까지 K와의 순정을 지키며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멤버 지이는 방송에 나와 “성훈이 오빠가 매일 그 얘기하며 울었다”고 전했다. 터틀맨의 친형 임준환씨는 “성훈이가 첫사랑에 대한 심정을 담아 노래를 만들었는데, 이름 이니셜인 ‘KSK’가 노래 가사에 나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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