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

‘비뚤어진 복수심’ 중곡동 세 모자 보복 살인사건

버스 토큰 횡령하다 들킨 후 해고당하자 남탓으로 돌리고
밀고 의심한 동료에게 원한 품고 극단적인 증오심 표출



서울 광진구(당시 성동구) 중곡동의 한 연립주택 203호에는 조아무개씨(남·35) 가족이 살고 있었다. 그는 1976년부터 중동 해외건설현장에서 7년 동안 용접공으로 일하다 귀국해 84년 9월부터 서울 시내버스 회사에서 운전기사로 일했다.

중매로 결혼한 오아무개씨(여·33)와는 슬하에 큰아들(9·초등학교 3년)과 막내아들(7·유치원생) 형제를 두고 있었다. 조씨 가족은 가정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부부 사이에 금실도 좋아 이웃에 화제가 될 정도였다.

조씨의 집과 버스 회사 차고지는 거리가 상당했다. 이 때문에 다음날 새벽 근무가 있는 날에는 회사 기숙사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된 일가족

1988년 2월9일 오전 10시쯤 회사에 출근한 조씨는 하루 일을 마쳤으나 다음날 새벽 운행 때문에 귀가하지 않고 회사 기숙사에 머물렀다. 오후 10시20분쯤 그는 가족들의 안부를 묻기 위해 집에 전화를 걸었으나 ‘통화 중’ 신호가 들렸다.

이후 2~3차례 추가로 전화를 했으나 역시 통화 중이어서 이상하게 생각했다. 늦은 시간 아내가 오랫동안 누군가와 통화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씨는 다음날 오후 업무를 마치자마자 서둘러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젯밤 집에서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이 자꾸만 불안했다. 2시15분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의 초인종을 눌렀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문을 두드려봐도 마찬가지였다. 현관문은 안에서 굳게 잠겨 있었다.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조씨는 옆집에 양해를 구하고 베란다를 통해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집안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비릿한 냄새까지 풍겨왔다.

그는 거실 전등을 켜고 곧바로 안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었더니 방안은 난장판이 돼 있었다. 화장대와 옷장 등에서 꺼낸 옷가지와 화장품 등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아내는 이불을 푹 뒤집어쓴 채 누워있었는데, 이불에는 핏물이 스며들고 바닥에도 피가 묻어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사건이 일어난 조씨 집 안방(MBC 방송화면 캡처).

조씨는 떨리는 손으로 이불을 들춰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아내 오씨는 입에 수건으로 재갈이 물리고, 양손이 흰색 끈으로 결박된 상태였으며, 하의는 벗겨져 있었다. 복부에는 흉기에 찔린 상처가 있었는데, 이미 숨이 멎어 있었다.


두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부엌방과 건넌방으로 갔더니 역시 각각 양손이 묶이고 입에 재갈이 물려 있었으며 명치 부분을 칼에 찔려 사망한 상태였다. 조씨는 곧바로 경찰에 전화해 신고했다.

부검결과 아내 오씨의 몸에서는 성폭행 흔적이 발견됐으며, 세모자 모두 목이 졸려 살해된 후 2차로 칼에 찔린 것으로 드러났다. 하룻밤 사이에 아내와 두 아들을 한꺼번에 잃은 조씨는 큰 충격에 빠졌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안방 화장대에는 예금통장과 귀걸이 목걸이 등이 그대로 있어 피해품이 없는 것으로 판단됐으나 나중에 장롱에 있던 다이아 반지 등 약 180만원 상당의 금품이 없어진 것이 확인됐다.

주변을 탐문해보니 9일 오후 5시40분쯤 이웃 주민이 오씨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이때 누군가 전화를 받은 뒤 아무런 말도 없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또 해당 주민이 이날 밤 9시40분쯤 집으로 찾아갔으나 초인종을 눌러도 인기척이 없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경찰은 사건 발생 시간을 9일 오후 5시40분에서 10시 사이로 추정했다.

유력한 용의선상에 오른 전직 버스기사

경찰은 살해 수법이 잔인하고 피해품 일부가 사라진 점 등을 들어 범인이 원한이나 치정, 강도 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였다. 남편 조씨의 주변 인물들도 수사 대상에 올랐는데, 이 중 한 명이 유력한 용의 선상에 떠오른다.

조씨의 회사 동료였던 전직 버스기사 어성갑(남·36)이었다. 그는 버스 운행 중 토큰을 몰래 빼돌린 것(속칭 ‘삥땅’)이 들통나 다른 버스 기사 3명과 함께 해고된 상태였다. 회사 측은 별도로 이들에 대해 경찰 수사를 의뢰했다.

해고 후 어씨는 승용차를 구입해 동대문구 장안동 일대에서 자가용 불법 영업으로 생활비를 벌었고, 이 과정에서 동료 버스기사 3명이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되자, 곧바로 도주 행각을 벌였다. 경찰은 전과 3범인 어씨를 같은 혐의로 지명수배했다.



어씨는 횡령 사실을 회사에 밀고한 것이 조씨라고 확신하고 그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다. 도주 과정에서 조씨를 찾아가 “너 때문에 숨어 살아야 하니 공소시효인 7년 동안 내 두 아들을 책임지라”며 협박했지만 그때마다 거절당한다.

경찰은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 어씨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해 피묻은 점퍼와 양말 등을 찾아냈다. 혈흔 감정결과 피해자들의 혈액형과 일치했다.

유력 증거물이 나오자 모든 수사력을 어씨의 행방을 쫓는데 집중한다. 그리고 사건 발생 4일 만인 2월13일 오전 9시쯤 고향 인근인 충북 청주시의 한 여관에 은신해 있던 어씨를 붙잡았다.

어성갑에게 살해된 조씨의 두 아들(MBC 방송화면 캡처).

그는 처음에는 범행을 부인하다가 피가 묻은 옷 등 증거물을 제시하자 범행 일체를 자백한다. 범행동기에 대해서는 “조씨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졌다고 생각했다”며 “그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고 싶어 가족을 노렸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경찰은 어씨의 자백에 따라 범행에 사용된 흉기(과도)를 서울 중랑천에서 찾아냈다.

범행 후 친구와 밤새 술마시고 놀아

어씨가 붙잡히면서 범행 당시의 상황도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어씨는 조씨 가족을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2월9일 오후 5시40분쯤 중곡동의 한 시장에서 과도(25cm)를 구입한 후 조씨 집을 찾아갔다. 조씨와 어씨는 고향 친구여서 평소 두 집안 식구들이 함께 야유회를 가는 등 가까운 사이였다.

당시 안방에는 세 모자가 있었는데, 어씨는 “어머니와 할 얘기가 있다”며 아이들을 다른 방으로 보낸 뒤 오씨에게 “당신 남편 때문에 살길이 막연하니 생활대책을 세워달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한다.

어씨는 오씨를 과도로 위협해 입을 수건으로 틀어막은 뒤 성폭행한 후 살해한다. 이어 건넌방에 있던 두 형제도 같은 수법으로 연이어 살해하고 집안을 뒤져 장롱에 있던 금품 일부를 훔쳐 나왔다.


범행 후에는 집으로 이동해 피 묻은 옷을 갈아입은 후 강동구 암사동에 있는 친구 이아무개씨(32)를 찾아간다. 두 사람은 천호동 스탠드바와 카바레 등에서 밤새 술을 마시고 놀았다. 어씨는 다음 날 태연히 집으로 들어가 옷가지 등을 챙겨 수원과 조치원을 거쳐 청주로 이동한 후 여관에서 숨어 지냈던 것이다.

경찰이 어씨를 송치하자 검찰은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위반 혐의(살인, 강간, 절도 등)로 구속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 수법이 잔인하기 이를 데 없고, 사소한 원한을 이유로 무고한 세 명의 생명을 앗아간 것은 사회적으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며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했다.

어씨는 감형을 노리고 항소와 상고까지 했지만 대법원이 원심을 인용하면서 형량이 최종 확정됐다. 어씨는 구치소에서 수감생활 중 천주교에 귀의했다.

정부는 1990년 4월17일 어씨를 포함한 포항연쇄살인의 주범 최정호, 충남 공주에서 부녀자 6명을 강간 살해한 강창구 등 9명의 흉악범에 대해 교수형을 집행했다. 어씨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눈과 콩팥 등 사후 장기기증을 서약했다.

완전한 가족 파멸이 목적

이 사건은 비뚤어진 복수심이 부른 비극이다. 어씨는 조씨의 밀고로 자신이 해고돼 원한을 품었다고 했지만, 실제 조씨가 밀고 했는지는 공개되거나 확인되지 않았다. 설령 조씨가 밀고했더라도 어씨의 범죄혐의가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에 분노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도 어씨는 마치 자신이 억울한 누명을 쓴 것처럼 착각한다.

조씨를 자신의 인생을 망친 ‘절대 악’으로 규정해 분노를 정당화하고, 사사로운 원한을 품고 극단적인 증오심을 표출했다. 여기에 더해 조씨에게 보상을 요구하며 협박까지 일삼았다.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자 무고한 가족들에게 보복의 칼을 휘둘렀다. 어씨는 자신을 밀고했다고 믿는 조씨에게 직접 복수하는 것보다 그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족을 파괴함으로써 더 큰 고통을 주고자 했다.

그의 범행은 치밀하고 계획적이었으며 비열하고 악랄했다. 어씨는 조씨가 다음날 새벽 근무 때문에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미리 흉기를 준비해 그의 집을 찾아갔다.

그는 먼저 조씨의 미성년 두 아들을 다른 방에 밀어넣어 엄마와 분리시켰다. 안방에 오씨 혼자 남게 되자 미리 준비한 흉기로 위협해 저항하지 못하도록 제압하고, 양손을 묶고 입에는 재갈을 물렸다.



이어 오씨의 하의를 벗긴 뒤 성폭행한다. 이는 단순히 성적 욕구를 채우려는 목적을 넘어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완전히 굴복시키고 무력화하려는 수단으로 사용했으며, 어씨가 느꼈던 사회적 박탈감(해고 및 수배)을 타인을 지배함으로서 보상받으려는 잔인한 심리가 투영된 것이다.

여기에 분노 대상인 조씨의 가족을 유린한다는 왜곡된 정복감과 보복 심리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충북 청주시의 한 여관에서 체포돼 경찰서로 압송되는 어성갑(MBC 방송화면 캡처).

어씨는 조씨의 아내와 미성년 두 아들을 목졸라 살해한 후에는 마치 확인 사살하듯 칼로 2차 가해를 했다. 이처럼 어씨가 조씨 가족을 유린하고 어린 아이들까지 처참하게 살해한 것은 그의 목적이 오로지 조씨 가족의 완전한 파멸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어씨는 극도의 자기중심적 사고와 비뚤어진 보복 심리가 결합된 인물이었다. 자신의 불행을 남 탓으로 돌리는 미성숙한 방어기제가 잔혹한 폭력성과 결합했을 때 발생하는 최악의 비극을 보여 준 전형적인 사례다.

세 명을 죽이고도 전혀 죄책감이나 불안감을 느끼지 않았을 뿐 아니라, 범행 후 옷을 갈아입고 친구를 찾아가 밤새도록 흥청망청 술을 마신 것은 극도의 흥분 상태를 넘어 목표를 달성했다는 만족감의 표출에 가까웠다.

비록 어씨가 죽기 전 종교에 귀의하고 사후 장기를 기증했다는 것에 일말의 자비심이 작동해도 단란했던 한 가족을 파괴한 것은 죽어서도 용서받지 못할 잔악한 범죄였다는 본질이 변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