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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



전남 순천시 황전면의 한 마을은 117가구에 270여명의 주민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평화로운 곳이었다. 주민인 백아무개씨(남·59)는 마음 씀씀이가 넉넉했다. 그는 평소 자신의 농기계로 마을 사람들의 농사일을 도와주는 등 주변에서 많은 인심을 얻고 있었다.

2009년 7월6일 오전 5시30분쯤 백씨는 논밭을 돌아보기 위해 집을 나서다가 마당에 있는 낯선 검은 비닐봉지를 발견한다. “이게 뭐지” 하면서 안을 들여다보니 그 안에는 상표가 다르고 마개가 닫힌 막걸리 2병이 들어 있었다.

백씨는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평소에도 그에게 신세를 진 마을 주민들이 “고맙다”며 막걸리 등을 집에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때 아내 최아무개씨(59)는 ‘희망근로 사업'(공공 근로사업)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백씨는 비닐봉지를 마루 근처로 옮기며 “누가 막걸리를 갖다놨네”라고 말하면서 집을 나섰다. 뒤이어 최씨도 이웃들과 함께 마시기 위해 막걸리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현장으로 나갔다.

독이 든 막걸리 마신 2명 사망

이날 따라 햇살이 무척이나 따가웠다. 한참 제초작업을 하던 최씨는 갈증을 느끼자 가져온 막걸리가 떠올랐다. 오전 9시10분쯤, 그는 함께 갔던 같은 마을 주민 장아무개씨(여·74)와 이아무개씨(여·75) 그리고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옆 마을 주민 정아무개씨(여·69)를 불렀다.

최씨는 막걸리 마개를 개봉해 세 사람에게 한 잔씩 따라주고 자신도 마셨다. 그런데 막걸리 맛이 이상했다. 다른 사람들은 한 번에 들이켰으나 이씨는 입안에 넣었다가 바로 뱉었다.

이어 막걸리를 마신 세 사람이 갑자기 심한 구토를 하며 거품을 물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이씨는 곧바로 119에 신고했고, 얼마 후 현장에 도착한 구급대 차량에 실려 나머지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최씨는 구례의 한 병원으로, 정씨와 장씨는 순천에 있는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 이중 백씨의 아내 최씨는 후송 도중 숨졌고, 정씨는 치료를 받던 중 사망했다. 일부만 마신 장씨는 치료 후 다행히 건강을 회복했다. 막걸리를 마신 주민 4명 중 2명이 숨지고, 이씨와 장씨만 목숨을 건진 것이다.

사건이 일어난 마을의 입구에 경찰의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다(KBS 방송화면 캡처).

막걸리를 자신의 집 마당에서 처음 발견한 백씨는 망연자실했다.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데다 동네 주민들까지 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사건 발생 이틀 후인 7월8일 최씨의 장례식과 함께 발인이 있었다. 백씨는 장지로 향하는 아내의 관을 붙잡고 두드리며 오열했다.

이 사건은 조용하던 시골 마을을 큰 충격에 빠트렸다. 주민들은 불안감이 커졌고, 가족 같던 마을 주민들 사이에도 불신이라는 장벽이 들어섰다. 이제 주민들의 최대 관심은 “과연 범인이 누굴까”에 모아졌다.

경찰은 전남지방경찰청 차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대규모 수사본부를 꾸렸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감정 결과 문제의 막걸리에서 독극물인 청산가리 성분이 검출됐다. 누군가 막걸리에 의도적으로 넣은 것이다.

이에 따라 경찰은 ‘원한 관계에 의한 마을 내부의 범행’에 무게를 두고 수사력을 집중했다. 먼저 마을 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원한 관계, 갈등, 채무 등을 전수조사하는 등 광범위한 수사를 벌였다.

하지만 경찰 수사는 속도를 내지 못했다. 막걸리병에서 용의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지문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범행에 사용된 청산가리의 구입경로도 전혀 파악되지 않았다. 마을 주변과 저수지 등을 수색했지만 청산가리 보관 용기나 투약에 쓰인 도구 등 결정적인 물증도 찾지 못했다.

마을 입구에는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지 않아 외부인의 침입 여부도 알 수 없었다. 그나마 주민들의 탐문에서 외부인이나 수상한 사람을 본 목격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다.



경찰은 백씨 부부의 원한 관계, 갈등, 치정관계 등에 대해서도 수사했으나 범죄와 연결될 만한 것이 없었다. 결국 50일 이상 강도 높은 수사를 벌였으나,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하고 수사는 난항에 빠진다.

부녀를 범인으로 몰아 사건조작한 검찰

수사가 교착 상태에 빠졌을 무렵, 검찰이 예상치 못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사건은 급반전된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에서 별건의 무고 사건을 수사하던 중 백씨와 최씨의 딸인 A씨(26)가 범행을 자백했다며 사건을 가져간다. 그러면서 “딸이 아버지와 공모해 어머니를 죽였다“고 단정하며 백씨 부녀를 긴급 체포했다. 검찰 발표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검찰에 따르면 백씨는 딸인 A씨가 11살 때부터 부적절한 관계(근친상간)를 맺어왔다. 아내 최씨는 이런 사실을 10여년 전부터 알고는 갈등을 빚어 왔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날 것을 두려워한 부녀는 최씨를 죽이기로 공모하고, 평소 그가 즐겨마시던 막걸리에 청산가리를 타서 마당에 놓았다고 했다. 이런 사실이 검찰의 발표로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큰 논란을 불러왔다.

그런데 검찰 발표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이상했다. 앞뒤가 맞지 않았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는 백씨는 막걸리 최초 발견자여서 용의 선상에 올랐지만, 아내를 죽일만한 동기를 찾지 못했고, 그의 딸인 A씨는 처음부터 용의선상에 있지도 않았다.

백씨의 딸 A씨가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영상 화면 캡처.

만약 백씨 부녀가 오랫동안 부적절한 관계에 있었다면 이를 의심할 만한 신체적 흔적, 산부인과 기록, 주변의 목격담 등이 있어야 했다. 검찰은 이에 관한 어떤 증거물도 확보하거나 제시하지 못했다.

마을 공동체는 소문이 엄청 빠른 특성이 있다. 백씨 부녀가 부적절한 관계였다면 마을에는 이미 공공연한 비밀로 떠돌며 뒷말이 무성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민 누구도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고, 소문도 없었으며, 부녀의 부적절한 행동을 목격한 사람도 없었다.

주민들은 백씨 부부와 딸의 관계도 “좋았다”고 입을 모았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검찰이 강압과 유도심문을 통해 허위자백을 강요하는 등 백씨 부녀에게 누명을 씌워 사건을 조작한 것이다.

막걸리 사건 발생 전 A씨는 마을 남성 3명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은 A씨의 진술에 일관성이 부족하고,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무혐의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다.

검찰은 A씨의 지능이 낮아 진술이 일관되지 못하고,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점, 그리고 피고소인인 마을 남성들이 범행을 강력히 부인한다는 점을 들어 A씨의 성폭행 피해 주장을 거짓으로 판단했고, 오히려 무고 혐의로 조사한다.



A씨는 ‘경계성 지능장애’를 앓고 있었다. 지적장애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평균보다 낮은 인지 능력을 보이는 상태다. 검찰은 질문에 쉽게 동조하거나 기억이 파편적인 A씨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진술이 조금만 꼬여도 “거짓말을 한다”며 윽박지르거나 압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막걸리 사건이 터지자 “네가 성폭행 당했다고 거짓말해서 감옥가게 생겼으니 막걸리 사건을 자백하면 용서해 주겠다는”식의 거래를 시도한다.

검찰은 또 A씨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질문을 집요하게 던졌고, 이를 부인하면 “네 아버지는 다 인정했는데, 왜 너만 숨기냐”며 거짓말로 압박해 답변을 유도했다. 또 “아버지가 너에게 다 뒤집어씌우고 있다”는 식으로 부녀간을 이간질해 아버지를 원망하게 만들고, 결국 아버지를 공범으로 지목하게 했던 것이다.

검찰은 이 내용으로 아버지 백씨를 압박했다. A씨의 진술조서를 보여주거나 내용을 들려주며 “딸이 당신과 성관계를 했고, 당신이 시켜서 막걸리에 청산가리를 탔다고 다 불었다. 그런데 왜 당신만 끝까지 부인해서 딸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느냐“는 식으로 압박했다.

또 부성애를 자극해 “당신이 계속 부인하면 딸은 가중 처벌을 받아 평생 감옥에서 썩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인정하면 딸은 정상참작을 받아 일찍 나갈 수 있다”는 식으로 자백을 종용했다.

백씨가 양손에 수갑과 포승줄을 찬 채 집안에서 현장검증을 받고 있다(KBS 방송화면 캡처).

초등학교 중퇴 학력 수준인 백씨는 자신의 이름 정도만 읽을 수 있는 문맹에 가까웠는데, 검찰 수사기록에는 매우 논리적이고 정연한 문장으로 작성된 자술서가 포함돼 있었다. 검찰이 미리 작성한 범행 시나리오를 종이에 적어준 뒤, 그 글씨를 그대로 베껴 그리게 한 것이다. 백씨는 자신이 쓴 그림 글씨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검사가 시키는 대로 지장을 찍고 서명했다.

검찰은 조사 내내 백씨를 포승줄로 묶고 수갑을 채워 극도의 공포감과 무력감을 줬고, 법적 지식이 없는 그에게 진술거부권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국선변호인은 형식적으로만 존재했을 뿐 실제 조사과정에서는 백씨를 방어해주지 못했다. 검찰은 또 백씨에게 답을 정해놓고 유도심문을 벌여 그것을 확정된 자백으로 기록했다. 이렇게 조작된 사건을 검찰은 ‘자극적이고 패륜적 범행’으로 발표하며 대중을 기만했던 것이다.

검찰이 A씨에게 수갑을 채워 현장검증을 벌이고 있다(KBS 방송화면 캡처).

재판에서도 희비가 엇갈렸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들이 살인죄를 입증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백씨 부녀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항소심은 원심을 뒤집고 백씨에게는 무기징역, A씨에게는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부녀의 범행이 물증은 없지만 딸이 고백한 부적절한 관계와 범행 모의 과정이 매우 구체적이어서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말하기 어려운 내용이라고 봤다.

또 검찰이 제시한 ‘근친상간을 들켜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시나리오를 반인륜적이긴 하지만 충분히 가능한 범행 동기로 받아들였다. 백씨 부녀는 검찰 조사가 강압적이었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을 인용해 형을 확정했다.

재심서 무죄 선고로 15년 만에 석방

백씨 부녀는 2022년 1월 검찰의 강압수사를 주장하며 재심을 청구했고, 2024년 1월 재심이 결정되면서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수감된 지 15년 만에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같은 해 10월31일 광주고등법원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고, 검찰의 상고 포기로 최종 확정됐다.

재심과정에서 새로운 사실도 드러났다. 검찰은 백씨가 시장에서 청산가리를 샀다고 주장했지만, 해당 시장 상인들은 “청산가리를 판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백씨가 청산가리를 보관했다는 장소에서는 청산가리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

범행에 사용된 막걸리의 제조일자와 구입 경로도 검찰 발표와 달랐다. 당시 사용된 막걸리는 특정 제조사의 제품이었다. 검찰은 백씨가 이 막걸리를 집 근처 슈퍼에서 ‘7월2일’에 샀다고 했으나 범행에 쓰인 막걸리병의 제조일자는 ‘7월4일’이었다.

더욱이 백씨가 구입했다고 한 해당 슈퍼에서는 이 제품을 취급하지도 않았다. 즉 검찰은 아직 제조도 되지 않은 막걸리를 백씨가 샀다고 허위로 기재했고, 슈퍼에서 취급하지 않은 막걸리를 슈퍼에서 샀다고 조작했던 것이다.

특히 재심과정에서 검찰이 부녀에게 유리한 진술이 담긴 부분을 빼고, 불리한 부분만 재판부에 제출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 영상은 유도 질문과 강요 등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대검찰청은 재심 무죄판결 이후 공식사과문을 발표하고 상고를 포기했고, 재심 무죄판결을 내린 재판부는 판결문을 낭독하면서 “사법부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백씨 부녀가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YTN 방송화면 캡처).

다만 당시 허위자백을 강요하는 등 사건을 조작했던 강아무개 주임검사는 검찰을 떠나 현재 변호사로 활동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금까지 백씨 부녀에게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았다. 현행법상 강 전 검사에게 어떤 법적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향후 국가가 지급해야 할 수십 억 원의 형사보상금은 고스란히 국민의 세금으로 나가야 한다.


문제는 국가권력이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만드는 데 혈안이 된 사이 진짜 범인은 수사망을 벗어났다.

원래 이 사건은 2024년 7월에 공소시효가 만료될 예정이었으나, 2015년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한 ‘태완이법’이 시행되면서 이 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이에 따라 범인을 잡으면 언제든지 처벌이 가능하다.

문제는 이미 오랜 세월이 흘러 물증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다. 경찰은 이 사건을 장기미제사건으로 전환했다. 여러 정황상 범인은 당시 사건 현장에서 가까운 곳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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