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사건한반도

정보사령부 소속 이준광 소령 월북사건


1970년대 후반은 한반도 긴장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당시 남북은 체제경쟁의 정점에 있었다. 북한은 경제력에서 남한에 밀리기 시작하자 대남 공작을 강화하며 심리전과 정보전에 사활을 걸었다. 남북한은 일촉일발의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1978년 6월 13일, 강원도 인제군 소재 육군 제3군단 예하인 제12보병사단(을지부대) 관할 비무장지대에서 대한민국 군을 뒤흔든 초유의 사건이 발생한다. 정보사령부 소속 이준광 소령(34)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월북한 것이다.

대북 정보 취급하던 장교의 월북

당시 이 소령은 동행하던 운전병에게 함께 넘어갈 것을 권유했으나, 거절당하자 운전병의 다리에 총상을 입히고 홀로 북측으로 향했다. 이는 1년 전 발생한 제20사단 유운학 중령의 월북 이후 최고위직 장교였다.

특히 보병 지휘관이었던 유 중령과 달리, 이 소령은 핵심 대북 정보를 취급하던 정보사 소속 장교였다.

정보사는 북한 관련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주로 현지인을 포섭해 정보원으로 이용한다. 북한인, 조선족, 중국인, 탈북자 등이다. 북한인 중에는 일반 주민도 있겠으나 군부, 당 간부, 보위부 등 핵심 계층에도 휴민트를 구축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준광은 대북 휴민트와 포섭된 정보원의 명단과 연락망을 파악할 수 있는 위치였다. 그의 월북은 북한 내 우리 측 정보망이 일거에 소탕될 수 있는 안보적 대재앙을 의미했기에, 우리 측에는 치명적인 상황이었지만, 북한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북한 선전물에 등장한 월북 군인들.

이 소령의 월북 직후, 군 당국은 철저한 보도통제를 통해 사건을 은폐했다. 하지만 그가 지니고 있던 정보의 가치는 국가 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이었다. 정보사가 운용하던 북한 내 핵심 정보원들의 신원이 노출될 위기에 처했으며, 우리 군의 대북 정보 수집 체계 자체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표면적인 월북 이유는 ‘진급 누락에 대한 불만’으로 알려졌으나, 최고 엘리트 장교가 국가를 등진 배경에는 군 내부의 관리 소홀과 기강 해이가 자리 잡고 있었다.

북한은 이 소령을 ‘의거 월북자’로 포장하여 남한 체제의 부패와 군 내부의 갈등(진급 불만 등)을 비난하는 선전 도구로 적극 활용했다. 이 소령은 한동안 북한 매체에 등장하며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는 듯 보였다.

당시 북한의 대남 공작은 남한 내 불만 세력이나 소외된 엘리트 계층을 집중 공략했다. 이 소령의 사례처럼 ‘진급 불만’ 같은 개인적 결함을 파고들어 심리적 동요를 유발하거나, 월북 이후 극진한 대접을 약속하며 체제 이탈을 종용했다.


하지만 북한 정권에 있어 월북자는 ‘한 번 배신한 자는 또 배신할 수 있다’는 불신의 대상일 뿐이었다. 이 소령이 가진 고급 정보가 모두 추출되고 대내외 선전 가치가 떨어지자, 북한은 그를 철저히 고립시켰다. 어느 순간, 이 소령의 이름이 북한의 공식 매체에서 자취를 감춘 것이다.

위성으로 본 승호리 수용소.

정치범수용소에서 확인된 최후

이준광의 생사가 다시 확인된 것은 그로부터 16년이 흐른 1994년이었다. 국제 앰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가 발표한 북한 정치범수용소 명단에 그의 이름이 포함된 것이다. 국방부 역시 수용소에 수감된 인물이 78년 월북한 이 소령과 동일인임을 확인했다.

그가 수감된 곳은 악명 높은 ‘승호리 수용소’였다. 정보 장교로서의 이용 가치가 사라지자, 북한 당국이 그를 ‘사상 재교육’이라는 명목하에 폐기 처분한 것으로 분석됐다. 조국을 배신하고 선택한 ‘지상낙원’의 실체는 결국 차가운 수용소의 창살이었던 것이다.

이준광 사건은 우리 군에 두 가지 뼈아픈 숙제를 남겼다. 첫째는 ‘내부자 위협’에 대한 관리 체계의 부재다. 아무리 정교한 무기 체계를 갖춰도 핵심 정보를 다루는 인원의 정신적·심리적 공백이 발생하면 안보는 한순간에 무너진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둘째는 북한 정권의 비정한 본질이다. 자신의 조국과 동료를 배신하고 넘어온 장교조차 이용 가치가 다하면 수용소로 보내버리는 ‘토사구팽’의 실체는, 북한이 주장하는 이른바 ‘민족 공조’나 ‘동포애’가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오늘날에도 정보전의 양상은 디지털로 변했을 뿐, ‘사람’을 통한 정보 유출의 위험은 여전하다. 이준광의 사라진 생사는 국가 안보에 있어 ‘절대적 충성심과 철저한 기강’이 결여되었을 때 어떤 비극이 초래되는지를 상기시키는 영원한 경고등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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