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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살육자 ‘호랑이 눈’ 홍윤성의 기괴한 기록



조선 초기, 한양의 밤거리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한 사내가 있었다. 등불도 없는 방 안에서 호랑이처럼 빛을 내는 눈으로 서책을 읽고, 그와 눈이 마주친 가축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으며, 당대 최고의 권력자들조차 그 시선 앞에선 오줌을 지리며 고개를 떨궜다는 기괴한 기록의 주인공. 바로 ‘세조의 사냥개’이라 불렸던 인산부원군 홍윤성(1425~1475 )이다.

500년이 지난 지금도 세간에 회자되는 그의 ‘호랑이 눈’은 과연 실존했던 신체적 기이함이었을까, 아니면 피로 세운 권력이 만들어낸 공포의 상징이었을까.

촛불 없이 서책을 읽는 괴물

1450년대 조선, 한양 도성에는 기이한 소문이 돌았다. 고위 관료인 홍윤성의 집에서는 밤마다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이었다. 깊은 밤, 방 안의 모든 불을 껏음에도 불구하고 창호지 너머로 은은한 금빛 기운이 새어 나왔다.

소문의 실체는 경악스러웠다. 홍윤성이 자신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채(眼光)만으로 서책의 작은 글씨를 선명하게 읽어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호랑이 눈’ 이야기는 단순히 용맹함을 칭송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홍윤성은 실제로 성격이 매우 포악하고 탐욕스러웠던 것으로 유명하다. 실록에서도 “성품이 거칠고 사나우며 법도를 지키지 않았다”고 기록될 만큼 문제적 인물이었다. 여기서 ‘호랑이 눈’은 그의 강력한 카리스마와 동시에 통제되지 않는 폭력성을 상징했다.

보통 야사(野史)는 인물을 신격화하거나 악마화하기 위해 외모를 부풀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홍윤성의 경우는 다르다. 국가 공식 기록인 <성종실록> 5년(1474년 9월8일), 그의 사망 기사(졸기)에는 이례적일 만큼 노골적인 묘사가 남아 있다.


“윤성은 사람됨이 체격이 크고 씩씩하며, 눈동자가 번쩍번쩍하여 호랑이 같았으므로 사람들이 감히 똑바로 보지 못하였다.”

사관이 공식 기록에 ‘호랑이 같은 눈’이라 적시한 것은 그가 가진 위압감이 단순한 소문을 넘어 실재했음을 방증한다. 야사집인 <필원잡기>나 <대동야승>으로 넘어가면 묘사는 더욱 구체화된다. 어느 날 밤, 홍윤성이 굶주린 호랑이와 마주쳤을 때 오히려 눈을 크게 뜨고 노려보자, 호랑이가 그 기세에 눌려 꼬리를 내리며 도망쳤다는 전설이 그 예다.

계유정난의 하이에나, 법 위에 군림한 맹수

홍윤성의 이 무시무시한 눈빛이 ‘권력’이라는 날개를 단 것은 1453년 10월 10일 밤이었다. 무관출신인 그는 수양대군(세조)이 단종의 보필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쿠데타, ‘계유정난’의 현장에서 홍달손, 양정 등과 함께 최전방 행동대장 중 한 명이었다.

홍윤성은 한명회가 작성한 ‘살생부’를 손에 쥐고 궁궐 문을 지켰다. 문을 들어서는 대신들의 얼굴을 확인하던 그의 눈빛은 사냥감을 고르는 맹수의 그것과 같았다.
조정의 중신들은 홍윤성의 번뜩이는 눈빛과 마주치는 순간 죽음을 직감했다. 세조는 그런 홍윤성을 가리켜 중국 한나라 고조(유방)의 용맹한 장수였던 ‘번쾌’에 비유하며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홍윤성은 세조의 정통성 부재를 공포로 메워주는 가장 유능한 도구였다.

세조 즉위 후 정난공신 1등에 책봉된 그는 영의정을 거쳐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 이후 그의 행보는 그야말로 ‘안하무인’이었다. 그의 눈빛이 호랑이를 닮아갔던 것처럼, 그의 성정 또한 포악한 맹수와 다를 바 없었다.



자신의 집 앞을 지나던 행인이 말에서 내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때려죽였으며, 경기도 일대의 비옥한 논밭에 제멋대로 말뚝을 박고 “내 땅”이라 주장하며 농민들을 쫓아냈다.

자신의 가문에 해가 되거나 뜻에 거스르면 친척조차 가차 없이 처단했다. 친숙부인 홍원용을 대낮 길거리에서 모욕하고 핍박하여 결국 죽음에 이르게 했다. 자신의 집 노비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길거리에서 직접 몽둥이로 때려죽이거나, 심지어 자신의 처가 식구들까지 협박해 재산을 갈취한 기록이 있다.

사헌부에서는 홍윤성의 탄핵안을 수없이 올렸으나, 세조는 “나를 위해 손에 피를 묻힌 사람”이라며 철저히 그를 감싸고 돌았다. 당시 백성들 사이에서는 “호랑이 눈과 마주치면 제삿날을 받아놓은 것”이라는 탄식이 쏟아졌다. 그의 눈빛은 이제 용맹함의 상징이 아니라, 통제되지 않는 권력이 뿜어내는 ‘광기’의 증표였다.

안광(眼光) 뒤에 숨은 권력의 민낯

홍윤성은 1474년, 정승의 반열에서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났다. 임종 직전까지도 그의 방은 눈에서 나오는 광채로 대낮처럼 환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가 죽었을 때 세조의 손자인 성종은 쌀과 콩 등을 하사하며 예우했다.
이때 성종은 10대 후반의 젊은 왕이었고, 실제 권력은 정희왕후(세조의 비)의 수렴청정과 훈구 대신들이 쥐고 있었다. 홍윤성이 죽을 때까지 권세를 누린 배경에는 ‘공신 세력의 카르텔’이 있었던 것이다.

현대 의학적 관점에서는 그의 ‘안광’에 대해 흥미로운 가설이 제시된다. 그가 극심한 ‘안구 돌출증’이나 망막에 특이한 반사 구조를 가진 희귀 질환을 앓았을 가능성이다. 하지만 실록이 기록한 유일한 ‘괴물의 눈동자’
홍윤성의 눈빛이 그토록 공포스러웠던 이유는 그의 안구 구조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휘두른 권력이 단 한 번도 ‘책임’이라는 견제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조라는 거대한 뒷배를 등에 업고 휘두른 무소불위의 칼날이, 사람들의 눈에 환각에 가까운 공포를 심어준 것이다.



홍윤성의 ‘호랑이 눈’ 사건은 단순한 기담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이 법과 도덕의 통제를 벗어났을 때, 인간이 얼마나 잔혹한 괴물로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경고다.

500년 전 한양 거리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그 번뜩이는 눈빛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갑질’과 ‘특권’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맹수들을 경계하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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