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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최고 권력층의 성적 노리개 ‘기쁨조’ 잔혹사



대동강변의 밤은 깊었지만, 평양 중심부 노동당 본청 인근의 별장 ‘특각’의 불은 꺼질 줄 모른다. 삼엄한 무장 초소의 경계를 뚫고 들려오는 가녀린 웃음소리와 서구식 금관악기의 선율.
그곳에는 전국의 교실에서 ‘선택’되어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는 소녀들이 있다. 21세기 문명 사회에서 유일하게 국가가 주도하는 조직적 성착취 시스템, 이른바 ‘기쁨조’다.

권력의 침실을 지키는 현대판 ‘채홍사’, 5과의 탄생

기쁨조의 역사는 북한의 권력 세습사와 궤를 같이한다. 1970년대 초, 후계자 자리를 굳히던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파격적인 ‘선물’을 구상한다. 이름하여 ‘5과’. 이것이 오늘날 인권 유린의 대명사가 된 기쁨조의 공식적인 출발점이다.

조선로동당 조직지도부 산하인 5과는 식재료 관리부터 가사, 경호, 유희에 이르기까지 지도자의 사생활 전반을 책임지는 조직이다. 이들의 권한은 보안서(경찰)나 보위부(정보국) 조차 침범할 수 없다.

‘기쁨조’라는 말 자체가 5과 내부의 아첨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김일성의 노령화를 걱정하며 5과 간부가 “수령님의 기쁨을 위해서라면 무엇인들 못 하겠느냐”며 과잉 충성을 보인 것이 시초라는 것이다.
이후 다른 부서 간부들이 5과를 비아냥거리며 “너희가 무슨 엘리트냐, 그저 기쁨조(기쁨을 주는 조)일 뿐이지”라고 놀리던 것이 외부로 유출되어 지금의 명칭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조선 시대 연산군이 팔도의 미녀를 강제 징집하기 위해 ‘채홍사’를 보냈듯, 김정일은 현대판 채홍사인 5과 요원들을 전국 학교에 급파했다.
명분은 ‘수령님의 장수와 기쁨’이라는 효(孝)였으나, 실체는 아버지의 침소 깊숙이 자신의 눈과 귀를 심어 권력의 향배를 감시하려는 정치적 계산이었다.

1974년 ‘목란조’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조직은 김정일이 직접 주관하는 ‘비밀 연회’를 통해 점차 방대하고 노골적인 성적 유희 집단으로 변질되었다.

소녀들을 물건처럼 감정하는 ‘신청사업’

북한 전역의 고급중학교 교정에 검은색 승용차가 나타나면 학교 전체는 숨을 죽인다. 5과 요원들이 이른바 ‘신청사업’을 위해 등판하는 순간이다.
이들의 선발 기준은 가혹하리만큼 세밀하며, 한 인간의 존엄을 철저히 부품화한다.

선발 대상은 10대 중반의 소녀들이다. 키 165cm 이상(김정은 시대 들어 170cm로 상향), 흉터나 점이 없는 깨끗한 피부, 고른 치아 배열은 기본이다. 심지어 손가락 마디의 모양과 신체 비율까지 검열한다. 한 탈북민의 증언에 따르면, 요원들은 학생의 치아를 직접 만져보고 손등의 실핏줄까지 확인하며 마치 물건을 고르듯 점수를 매긴다.

가장 끔찍한 절차는 산부인과 전문의에 의해 강행되는 처녀성 검사다. 수령에게 바쳐지는 제물은 ‘티 없이 깨끗해야 한다’는 전근대적이고 광기 어린 논리가 21세기에도 버젓이 자행된다. 이 과정에서 탈락한 소녀들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정신적 외상을 입으며, 합격한 소녀들은 그날로 부모와 생이별하여 평양 인근의 특수 시설로 보내진다.
5과 요원이 학생을 지목하면,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으며 부모조차 딸의 행방을 물을 수 없다.


외모만으로 끝이 아니다. 본인뿐 아니라 친가와 외가 8촌까지 낱낱이 뒤져 정치범이나 탈북자가 없는지 확인한다. 5과 대상자가 된다는 것은 가문 전체가 ‘성분’을 인정받는다는 뜻이기도 하여, 배급이 끊긴 고난의 행군 시절 일부 부모들은 딸의 희생을 담보로 가문의 생존을 꾀하기도 했다.

평양 인근의 특수 시설에 수용된 소녀들은 약 20개월간의 혹독한 교육을 받는다. 이때부터 이들은 군 계급(소위 등)을 부여받고 호위사령부 소속으로 위장되지만, 실질적인 지시와 관리는 5과에서 내린다. 이들은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며, 개인의 자아는 완전히 소거된다.

지도자의 침소를 책임지는 세 갈래 노예들

선발된 여성들은 외모와 재능에 따라 세 가지 보직으로 분류된다. 지도자의 침소에 드는 ‘만족조’, 피로를 푸는 ‘행복조’, 유흥을 돋우는 ‘가무조’가 그것이다.

만족조는 기쁨조 중에서도 가장 비밀리에 운영되며, 최고지도자의 성적 접대를 전담한다. 이들은 기쁨조 선발 인원 중에서도 미모와 ‘순결’이 가장 뛰어난 이들로 구성된다. 약 6개월간 ‘성기술 교육’을 받는데, 여기에는 지도자의 독특한 성적 취향을 만족시키는 법, 술자리 매너, 의상 연출 등이 포함된다.

김정일 시대 만족조였던 A씨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주말 연회에서 전통 의상 속에 속옷만 입고 시중을 들어야 했으며, 지도자의 기분에 따라 즉석에서 ‘성적 하사품’으로 간부들에게 넘겨지기도 했다.

행복조는 지도자의 건강 관리와 피로 해소를 명분으로 운영된다. 겉으로는 전문 의료 인력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고도의 마사지 기술을 이용한 신체 접촉이 주 업무다.

이들은 평양적십자병원 등에서 전문적인 간호 및 안마 교육을 받는다. 심지어 홍콩이나 마카오 등으로 단기 연수를 보내 외국 선진 마사지 기술을 익히게 하기도 한다.

북한 의사 출신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행복조는 “젊은 사람의 기(氣)를 전달하는 것이 지도자의 장수에 좋다”는 명목으로 24시간 지도자의 곁을 지키며 전신 마사지를 수행한다. 김정일은 특히 발 마사지와 두피 마사지에 집착했는데, 행복조원들은 지도자가 잠들 때까지 손이 부르트도록 안마를 멈출 수 없었다고 한다.

가무조는 연회에서 춤과 노래를 통해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오늘날의 ‘모란봉악단’이나 ‘왕재산경음악단’의 핵심 멤버들이 바로 이 가무조 출신이거나 그 연장선에 있다.



이들은 대외적으로는 화려한 예술가이지만, 비공개 연회에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뉴욕의 밤’, ‘파리의 밤’ 등 테마가 정해지면 해당 국가의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고 스트립쇼에 가까운 공연을 펼친다.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는 자신의 저서에서 가무조의 실태를 폭로했다. 연회 도중 김정일이 무용수들에게 “옷을 다 벗고 춤을 추라”고 명령했고, 무용수들이 당황하자 간부들에게도 “너희도 같이 춤을 추되, 만지지는 말라”는 식의 변태적인 유희를 즐겼다고 기록했다. 이는 가무조가 예술가가 아닌, 지도자의 권위를 확인하기 위한 소모품이었음을 증명한다.

김정일의 처조카 이한영의 증언에 따르면, 간부들은 이들을 ‘지도자 동지의 공연실’이라 불렀으며, 주말마다 벌어지는 이 파티는 권력의 충성심을 확인하는 광란의 현장이었다.

평양 상위 0.1%의 삶의 혜택 ‘온실속의 화초’

물론 특별한 혜택도 주어진다. 기쁨조로 활동하는 기간 동안 그녀들은 북한 일반 여성들은 상상도 못 할 물질적 풍요를 누린다.

평양의 최고급 아파트(혹은 전용 숙소)가 제공되며, 식단은 최고급 식재료로 구성된다. 김정일 시대에는 주로 서구식 고단백 식단이, 김정은 시대에는 현대적인 웰빙 식단이 제공된다.

샤넬, 디올 등 해외 명품 화장품과 가방, 보석류를 선물로 받는다. 특히 김정일은 충성심을 고취하기 위해 벤츠 같은 외제차를 통째로 하사하기도 했다. 딸이 기쁨조에 선발되면 그 가족은 즉시 ‘토대’가 좋은 것으로 간주되어 평양 거주권이나 좋은 보직을 배정받는 등 가문 전체가 특권층으로 편입된다.

권력이 대를 이어 세습되듯, 기쁨조의 스타일 역시 지도자의 취향에 따라 진화했다.

자신의 키가 작았던 김정일은 160~165cm 사이의 아담하고 관능적인 동양적 미인을 선호했다. 그는 기쁨조에게 벤츠를 하사하거나 ‘공훈 배우’ 칭호를 주며 ‘공주’처럼 대접해 측근들의 환심을 샀다. .

김정은 집권 초기, 기쁨조를 폐지했다는 설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실상은 ‘현대화’였다. 김정은은 170cm 이상의 늘씬한 ‘모델형’ 서구 미인을 선호하며, 이들을 ‘모란봉악단’이나 ‘청봉악단’처럼 이들을 세련된 예술가로 포장해 대외 홍보용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이는 과거의 은밀한 성적 유희 집단이라는 오명을 씻어내기 위한 이미지 세탁인 동시에, ‘정상 국가’의 지도자상을 연출하려는 고도의 전략이다.



2017년 영국 매체에 따르면 북한이 38억 원어치의 여성용 속옷(가터벨트, 코르셋)을 수입한 정황이 포착되었는데, 이는 김정은 역시 아버지 못지않은 변태적 연회를 즐기고 있음을 시사한다.

폐기된 소모품들의 감옥 없는 유배 생활

기쁨조의 생활은 화려해 보이지만, 그 유효기간은 25세 전후로 짧다. ‘노화’가 시작되었다고 판단되면 이들은 가차 없이 퇴역 명령을 받는다. 하지만 사회로 돌아온 그들에게 기다리는 것은 자유가 아닌 또 다른 감옥이다.

최고 지도자의 치부를 가장 가까이서 목격한 이들이기에, 국가는 이들을 철저히 관리한다. 퇴역한 기쁨조는 주로 호위사령부 군관이나 당 고위 간부와 강제로 결혼한다. 이는 지도자의 비밀을 아는 이들을 ‘충성 집단’ 내부에 묶어두려는 고도의 통제 전략이다.
신랑 측은 지도자가 하사한 ‘선물’이라며 영광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실상은 평생을 감시와 통제 속에 살아야 하는 비극의 연장선이다.

평양의 화려한 조명 아래서 지도자의 웃음을 이끌어내는 ‘기쁨조’. 하지만 그 미소 뒤에는 숨소리조차 통제받는 서슬 퍼런 금기와, 이를 어길 시 가해지는 잔혹한 처벌이 존재한다.

기쁨조에게 허락된 것은 오직 ‘지도자의 기쁨’뿐이다. 그 외의 모든 인간적 욕구는 철저한 금기의 대상이다. 이 가혹한 금율은 한 인간을 완벽한 ‘물건’으로 개조하는 데 목적이 있다.

기쁨조에게 ‘사적인 사랑’은 곧 체제에 대한 반역이다. 동료와의 우정은 물론, 외부인과의 어떠한 감정 교류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들은 24시간 2인 1조 혹은 3인 1조로 상호 감시 체제하에 놓이며, 누군가를 그리워하거나 슬퍼하는 기색만 보여도 ‘사상적 변절’로 간주된다.

기쁨조는 선발 당시의 신체 조건을 퇴역 시까지 유지해야 하는 ‘국가적 명령’을 받는다. 단 1kg의 체중 증가도 징계 대상이다. 허락받지 않은 화장, 머리 모양 변경, 심지어 손톱 손질조차 불가능하다. 신체는 지도자의 소유물이기에 마음대로 손댈 수 없다는 전근대적 논리가 지배한다.

최고 지도자의 가장 가까운 곳에 머물지만, 그들이 본 지도자의 술버릇, 건강 상태, 사적인 대화 등은 뇌세포에서조차 지워야 한다. “보고도 못 본 것이고, 듣고도 못 들은 것”이어야만 생존이 가능하다.


임신과 실수가 불러온 잔혹한 숙청

기쁨조의 세계에서 ‘실수’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배신’과 ‘숙청’만이 있을 뿐이다. 금기를 깨뜨린 소녀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무대 의상 대신 거친 수인복, 혹은 소리 없는 증발이다.

1990년대 중반, 가무조 소속이었던 여성 B씨는 동료와의 사적인 대화 중 “장군님도 이제 예전 같지 않으시고 나이가 드신 것 같아 걱정이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는 지도자의 건강 상태를 언급한 ‘일급 기밀 누설’로 간주되었다. 다음 날 B씨는 점호에 나타나지 않았고, 평양에 살던 그녀의 부모와 형제들까지 하룻밤 사이에 자취를 감췄다. 수용소 출신 탈북민의 증언에 따르면, 그녀는 함경도 소재의 완전통제구역으로 끌려간 후 영양실조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쁨조 내부에서 가장 끔찍한 처벌은 임신 시 발생한다. 지도자의 아이를 갖는 것은 체제의 안위를 위협하는 ‘불순물’의 발생으로 간주된다.
전직 요원의 증언에 따르면, 만족조 여성 중 임신이 발각된 한 동료는 마취도 없이 강제 낙태 수술을 받아야 했다.

수술 직후 제대로 된 회복 기간도 없이 현장에서 파면되었으며, 이후 ‘더럽혀진 소모품’이라는 낙인과 함께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자강도의 오지 탄광으로 하격(계급 강등)되어 평생 감시 속에 살게 되었다.

당대 최고 권세가였던 최룡해는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기쁨조원들에게 엽기적인 요구를 했다. 만족감을 극대화한다는 명목으로 여성들의 생니를 모두 뽑고 틀니를 끼게 한 것이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김정일은 자신의 ‘물건’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격노했다. 이때 발치당한 기쁨조원들은 ‘지도자의 하사품을 훼손한 죄’로 졸지에 25호 교화소로 끌려갔으며, 신체적 후유증과 고문에 시달리다 결국 전원 총살당하는 비극적 결말을 맞이했다.

이런 비극적인 사례들은 기쁨조가 인격체가 아닌 수령의 기분을 맞추기 위한 ‘소생물’이자 ‘소모품’에 불과함을 보여준다.

정치 전문가들은 기쁨조를 ‘국가 주도의 조직적 성범죄’이자 북한 가부장적 독재 권력의 결정체로 규정한다. 조선 시대 ‘흥청망청(興淸亡淸)’이라는 말이 ‘흥청(기쁨조의 원형)’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는 뜻에서 유래했듯, 기쁨조는 북한 체제의 도덕적 파산과 야만성을 상징하는 결정적 지표다.


평양의 화려한 조명이 가린 ‘아동 성착취’

평양의 화려한 연회장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는 누군가의 박제된 청춘과 짓밟힌 인권의 대가다. 지도자의 ‘기쁨’을 위해 소녀들의 영혼을 제물로 바치는 이 기괴한 연극은 지금 이 순간에도 대동강변에서 현재진행형이다.

한 탈북 기쁨조 출신 여성은 고백한다. “우리는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장군님의 기분 보좌를 위해 존재하는 살아있는 인형이었을 뿐입니다.”
기쁨조는 10대 중반에 선발되는데 이는 국제법상 명백한 ‘아동에 대한 성착취’에 해당한다. 이는 단순한 유희의 문제를 넘어,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국가가 자행하는 조직적인 인신매매이자 아동학대다.

국제사회가 이 비극을 ‘평양의 가십’이 아닌 ‘인권의 사각지대’로 직시하고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독재자의 미소 뒤에 숨겨진 소녀들의 눈물이 멈추지 않는 한, 북한이 외치는 ‘인민의 낙원’은 그저 피로 물든 허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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