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떠난 주인 10년 동안 역앞에서 기다린 하치코
인간과 동물의 동행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의 크기는 여전히 신비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서로 다른 존재가 하나의 영혼처럼 연결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동물이 가진 사랑에는 인간의 사랑처럼 ‘조건’이나 ‘계산’이 섞여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반려견에게 주인은 단순한 사육자가 아니라 세상의 전부이자, 삶의 유일한 좌표다. 때로는 인간조차 포기해버리는 신뢰와 의리를 그들은 끝까지 지켜내곤 한다.
여기, 그 수많은 사랑의 기록 중에서도 가장 시리고도 따뜻한 한 페이지를 펼쳐보려 한다.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오직 한 사람의 발소리만을 기다렸던, 어느 작은 생명의 위대한 서사시다.
낡은 역사의 노을 속에서 시작된 운명적 만남
1924년의 동경, 차가운 정적이 흐르던 시부야 역전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도쿄 제국대학 농학부 교수인 우에노 히데사부로였다. 그의 발치에는 솜사탕처럼 하얗고 보송보송한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아키타현에서 갓 올라온 이 강아지의 이름은 ‘하치(Hachi)’. 여덟을 뜻하는 숫자 ‘8(八)’에서 따온 이름처럼, 녀석은 우에노 교수 인생에 찾아온 여덟 번째 축복이자 마지막 사랑이 되었다.
당시 아키타견은 순종의 혈통을 보존하기 어려운 귀한 존재였으나, 우에노 교수에게 하치는 단순한 명견이 아니었다. 자식이 없던 교수 부부에게 하치는 늦둥이 아들이자, 퇴근길의 고단함을 씻어주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매일 아침, 하치는 교수의 출근길을 시부야역 개찰구 앞까지 배웅했다. 교수가 역 안으로 사라지면 하치는 집으로 돌아갔다가, 저녁 5시가 되면 어김없이 다시 역 앞으로 나갔다.

시부야의 상인들은 이 진풍경을 매일 목격했다. 시계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역 앞에 앉아 있는 하치를 보고 “아, 벌써 퇴근 기차가 들어올 시간이구나”라며 짐을 챙겼다. 주인과 반려견 사이의 이 무언의 약속은 마치 영원히 멈추지 않을 톱니바퀴처럼 견고해 보였다.
멈춰버린 5시, 그리고 차가운 침묵의 시작
운명의 수레바퀴가 비극으로 방향을 튼 것은 1925년 5월 21일이었다. 그날 아침도 하치는 평소와 다름없이 교수의 뺨을 핥으며 배웅했다. 그것이 마지막 체온이 될 줄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우에노 교수는 대학 회의 도중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쓰러졌고, 다시는 눈을 뜨지 못했다.
그날 저녁 5시, 하치는 평소처럼 시부야역 개찰구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기차가 들어오고 수백 명의 인파가 쏟아져 나왔지만, 하치가 기다리는 ‘그 냄새’를 가진 사람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역무원들이 퇴근하고 역의 불이 꺼질 때까지 하치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하치는 시부야역으로 향했다. 교수의 친척 집으로 입양을 가기도 하고, 먼 곳으로 거처를 옮기기도 했으나 하치는 번번이 담장을 넘어 시부야로 달려왔다. 녀석의 발바닥은 피가 배어 나왔고 털은 먼지로 뒤덮여 엉망이 되었지만, 5시의 약속은 하치에게 삶의 유일한 이유였다.

기다림이 1년, 2년을 넘어가자 세상은 하치를 잊기 시작했다. 역 앞의 노점상들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하치를 방해물 취급하며 발로 차거나 물을 뿌리기도 했다.
아이들은 녀석에게 돌을 던졌고, 들개라고 비난받으며 떠돌이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하치는 짖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그저 인파 속에서 오직 한 사람의 실루엣을 찾기 위해 눈을 가늘게 뜨고 개찰구만을 응시할 뿐이었다.
눈 내리는 밤, 비로소 완성된 마지막 마중
1935년 3월 8일, 시부야에는 유난히도 시린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늙고 병든 하치는 이제 제대로 걷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녀석의 한쪽 귀는 축 처졌고, 기생충과 굶주림으로 인해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다.
어느덧 주인을 잃은 지 10년. 날짜로 치면 3653일의 세월이었다. 하치는 마지막 힘을 다해 시부야역 근처의 한 어두운 골목길로 기어갔다. 차가운 바닥에 몸을 누인 하치의 눈앞에는 아마도 10년 전 그날의 따뜻한 환영이 보였을지도 모른다.
단정한 정장을 입고 가방을 든 채 환하게 웃으며 “하치, 기다렸니?”라고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주인의 손길 말이다.

다음 날 아침, 하치는 차디찬 사체로 발견되었다. 녀석의 위장 속에서는 주인이 생전에 즐겨 주던 꼬치구이의 꼬챙이 몇 개가 발견되어 사람들의 가슴을 더욱 미어지게 했다.
하치의 죽음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전역은 슬픔에 잠겼다. 녀석을 박대했던 상인들은 참회의 눈물을 흘렸고, 하치의 장례식은 여느 유명 인사 못지않게 성대하게 치러졌다.

오늘날 시부야역 앞에는 하치코의 동상이 서 있다. 녀석은 여전히 개찰구 방향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 하치가 보여준 것은 단순한 동물의 본능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그리고 그 사랑을 지켜낸다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고행인지를 온몸으로 증명한 것이었다.
이제 하치는 더 이상 춥고 배고픈 역전에서 떨지 않아도 된다. 하늘나라 개찰구 너머에서, 10년의 기다림을 보상받듯 주인의 품에 안겨 마음껏 꼬리를 흔들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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