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죄수·탈옥

바스티유 감옥 기괴한 죄수 ‘철가면’의 정체


1703년 11월, 프랑스 바스티유 감옥에서 한 남자가 숨을 거두었다. 그의 죽음과 동시에 간수들은 서둘러 그의 유품을 모두 불태우고, 그가 머물던 방의 벽지를 긁어냈으며, 바닥 타일까지 갈아엎었다.

그가 남긴 미세한 흔적조차 세상에 남지 않도록 철저히 지워버린 것이다. 이 죄수는 34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으나, 단 한 번도 자신의 얼굴을 타인에게 보인 적이 없었다.

그는 항상 벨벳(혹은 철로 된) 가면을 쓰고 있어야 했으며, 만약 가면을 벗으려 하거나 자신의 정체를 발설하려 할 경우 즉시 처형한다는 엄명이 내려져 있었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기괴한 수수께끼, ‘철가면’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34년의 침묵, 왕을 닮은 죄수의 비극

철가면 죄수의 존재가 처음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그가 죽은 지 수십 년이 지난 후, 철학자 볼테르에 의해서였다. 볼테르는 바스티유에 수감되었을 당시 간수들로부터 이 신비로운 죄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기록에 따르면, 이 죄수는 1669년 피네롤 요새에 처음 수감된 이후 생마르크 섬을 거쳐 바스티유까지 이송되었다.


놀라운 점은 그를 대하는 교도소 측의 태도였다. 그는 죄수였음에도 불구하고 고급 식사와 최고급 의복을 제공받았으며, 교도소장 성 마르크는 그가 이동할 때마다 직접 경호하며 극진히 예우했다. 하지만 오직 하나, ‘얼굴을 보이는 것’만은 절대 금지되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가설은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로도 유명한 ‘쌍둥이설’이다. 태양왕 루이 14세에게 쌍둥이 형제가 있었고, 왕위 계승 분쟁을 막기 위해 형제를 죽이는 대신 얼굴을 가린 채 평생 감옥에 가뒀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철가면 죄수의 키와 체격, 그리고 기품 있는 태도가 루이 14세와 매우 흡사했다는 증언들이 이 가설에 힘을 실었다. 만약 그가 왕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면, 왜 그토록 철저하게 얼굴을 가려야 했는지에 대한 완벽한 설명이 된다.

또 다른 유력한 가설은 그가 루이 14세의 생부이거나, 혹은 왕의 정통성을 뒤흔들 치명적인 비밀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이다. 루이 13세와 왕비 안 도트리슈는 결혼 후 20년 동안 아이가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루이 14세가 태어났는데, 일각에서는 왕비가 근위병 혹은 다른 귀족과 불륜을 저질러 낳은 아이가 루이 14세라고 의심했다. 철가면 죄수가 왕의 실제 친부라면, 그를 죽일 수는 없지만 세상에 드러낼 수도 없었기에 평생 가면을 씌워 격리했다는 추측이다.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조금 더 현실적인 인물이 거론되기도 한다. 루이 14세의 신임을 얻었으나 비밀 작전 실패나 횡령 등으로 눈밖에 난 ‘니콜라 푸케’ 재무장관이나, 프랑스의 군사 기밀을 알고 있던 장군 혹은 첩보원이라는 설이다.

하지만 단순한 정치범에게 이토록 가혹하고 기괴한 ‘가면 형벌’을 내린 것은 여전히 과한 조치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묘비명조차 허락되지 않은 진실

철가면 죄수는 사망 후 ‘마르키올리’라는 가명으로 매장되었다. 그의 정체를 밝히려는 수많은 시도가 있었으나, 루이 14세 이후의 왕들조차 이 비밀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루이 15세는 이 미스터리에 대해 질문을 받자 “그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면, 당신은 그가 차라리 감옥에 있는 것이 나았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서늘한 답변을 남겼다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왕권의 정당성을 위협하는 공포였고, 누군가에게는 평생 얼굴을 잃어버린 지옥이었을 철가면. 그는 죽어서야 비로소 무거운 가면을 벗고 자유를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까지 지키려 했던(혹은 강요받았던) 그 얼굴의 진실은, 3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차가운 감옥 벽 속에 갇힌 채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철가면 죄수가 평생을 감옥에서 보냈던 시기, 프랑스를 통치했던 인물은 바로 루이 14세(Louis XIV, 재위 1643~1715)다. 그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권을 휘둘렀던 인물로, 스스로를 만물의 근원인 태양에 비유해 ‘태양왕)’이라 칭했다.
“짐이 곧 국가다.” 이 한마디로 요약되는 그의 통치 철학은 ‘왕권신수설’에 기반했다. 왕의 권력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므로 누구도 이를 제한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그는 귀족들의 힘을 억누르고 모든 권력을 국왕 한 사람에게 집중시켰다.
그는 자신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파리 외곽에 유럽 최대 규모의 베르사유 궁전을 건설했다. 이곳에서 화려한 연회와 엄격한 에티켓을 통해 귀족들을 통제했으며, 프랑스를 유럽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격상시켰다.

그의 치세 동안 프랑스는 유럽 최고의 강대국으로 군림하며 영토를 확장했지만, 잦은 전쟁과 사치스러운 궁정 생활로 인해 국가 재정은 파탄 직전에 이르렀다. 이는 훗날 프랑스 혁명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철가면 미스터리에서 루이 14세는 주로 ‘비밀을 은폐하는 냉혹한 통치자’로 묘사된다. 자신의 완벽한 권위와 정통성에 흠집을 낼 수 있는 존재(예: 쌍둥이 형제나 출생의 비밀)를 철저히 격리할 만큼 주도면밀하고 단호한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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