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화제

‘비트몽 성의 비극’ 탐욕의 종말과 과학의 탄생



벨기에 몽스 인근의 비트몽 성. 이 웅장한 성의 주인, 이폴리트 드 보카르메 백작(32)은 겉으로는 고귀한 혈통을 자랑했으나, 화려한 작위 뒤에 빚더미를 숨긴 ‘파산한 귀족’이었다.

도박과 방탕한 생활로 가산이 탕진된 그에게 남은 마지막 카드는 아내 리디(24)가 상속받을 거액의 유산뿐이었다.

유산의 직접적인 상속권자는 리디의 남동생이자 백작의 처남인 귀스타브 푸그니(22)였다. 그는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었으나, 친척으로부터 현재 가치 수십억 원에 달하는 30만 프랑을 상속받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피로 물든 만찬

백작은 평소 몸이 불편한 귀스타브를 향해 묘한 우월감과 경멸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저런 불구자가 수십억 원의 가치를 지닌 유산을 독점하는 것은 신의 실수다. 그 돈은 나처럼 품위 있게 쓸 줄 아는 자의 것이어야 한다”는 비뚤어진 확신이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백작에게 처남은 보호해야 할 가족이 아니라, 유산을 가로막는 ‘제거 대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는 처남을 죽이고 유산을 가로채겠다는 음흉한 계획을 세운다.


범행을 결심한 후에는 놀라운 인내심을 발휘했다. 성의 별채에 화학 실험실을 차리고 수개월간 담뱃잎에서 니코틴을 추출하는 연습을 반복했다. 그는 자신이 시대를 앞서가는 천재라고 믿었다.

당시 법의학은 비소 같은 금속 독극물은 찾아냈지만, 니코틴 같은 식물성 알칼로이드를 시신에서 분리할 기술은 없었기 때문이다. ‘증거가 없으면 범죄도 없다’는 오만이 그를 지배했다.
아내 리디 역시 화려한 파티와 보석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남편의 실험을 지켜보며 동생의 죽음이 가져올 황금빛 미래를 함께 꿈꿨다.

1850년 11월 20일, 백작은 귀스타브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정신적으로 누나에게 의지했던 귀스타브는 흔쾌히 성을 방문했다. 백작은 평소보다 더 친절하게 처남을 맞이했다. 식사가 끝날 무렵, 백작은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 귀스타브의 목을 낚아채 짓눌렀다.

“매형, 왜 이러세요! 숨이…!”
“겁내지 마라, 귀스타브. 자네의 그 거추장스러운 유산은 내가 잘 챙길테니.”

백작은 미리 준비한 고농축 니코틴액을 귀스타브의 입에 강제로 부어 넣었다. 니코틴은 중추신경계를 마비시켰고, 귀스타브는 극심한 경련 끝에 불과 몇 분 만에 질식사했다.

백작은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시신의 입과 옷에 강한 식초(초산)를 들이부었다. 니코틴 특유의 매캐한 냄새를 가리고 부식 흔적을 식초 탓으로 돌리려는 치밀한 계산이었다. 아내 리디는 이 모든 과정을 묵인하며 동생의 죽음을 방조했다.



법의학의 승리, 장 스타스의 혁신적 원리

사건 직후 백작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장례 절차를 서둘렀고, 수사관들에게는 귀족 특유의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며 압박했다. 그러나 수사 당국은 “뇌졸중으로 급사했다”는 백작의 주장을 의심했다. 시신에서 풍기는 기묘한 식초 냄새와 백작의 실험실이 결정적 단서였다. 벨기에 검찰은 당시 최고의 화학자 장 스타스 교수에게 감정을 의뢰했다.

스타스 교수는 백작의 오만을 깨뜨릴 정교한 화학적 그물을 짰다. 이것이 오늘날 모든 약물 수사의 기초가 된 ‘스타스 오토 추출법’이다. 당시 시신은 이미 부패가 진행 중이라 단백질과 지방이 뒤섞인 ‘화학적 쓰레기통’과 같았다. 스타스는 혁신적인 분석과정을 거쳐 니코틴을 분리했다.

우선 시신 조직을 에탄올과 산성 용액에 담가 독성 성분을 녹여냈다. 이어 용액을 염기성으로 바꿔 니코틴을 ‘자유 염기’ 상태로 만들었다. 이렇게하면 니코틴은 기름 같은 성질이 되어 물보다 에테르에 더 잘 녹게 된다. 에테르를 넣어 흔들면, 니코틴 성분만 에테르 층으로 쏙 빨려 올라오는데, 스타스 교수는 에테르를 증발시켜, 바닥에 투명하고 기름진 액체만 남게 했다.



그는 이 액체를 자신의 혀끝에 살짝 대보았다. 지독하게 타는 듯한 통증. 그것은 의심할 여지 없는 순도 90% 이상의 니코틴이었다. 동물 실험 결과 즉사 수준의 ‘순도 높은 니코틴’임이 입증되었다.

1851년 몽스 법정. 백작은 마지막까지 귀족의 품위를 유지하려 애쓰며 스타스 교수를 무시했다. “한낱 실험실의 약쟁이가 감히 백작의 명예를 논하는가” 하지만 스타스 교수는 차분하게 증언했다. “과학은 계급을 모릅니다. 당신이 처남의 폐 속에 집어넣은 이 검은 액체는 당신의 가문 이름보다 더 명확하게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내 리디는 최후 진술에서 눈물을 흘리며 태도를 바꿨다. “저는 남편의 광기가 두려워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제 남동생을 죽인 것은 오로지 저 사람의 탐욕입니다!”라며 남편에게 모든 책임을 돌렸다. 재판 결과는 엇갈렸다. 리디는 남편의 압박에 가담했다는 참작 사유로 무죄가, 주범인 보카르메 백작에게는 사형이 선고되었다.

단두대 위로 사라진 허영

1851년 7월 19일, 벨기에 몽스(Mons) 광장. 수많은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백작은 단두대 앞에 섰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죄가 없다! 과학이 나를 모함했다!”고 외쳤으나 서슬 퍼런 칼날은 그의 목 위로 떨어졌다.

이 사건은 법의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폴리트 드 보카르메 백작은 유산을 탐내다 목숨을 잃었지만, 장 스타스 교수는 ‘독물학’이라는 인류의 진정한 과학적 유산을 남겼다. 이것은 근대 수사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으며, 오늘날까지도 약물 검출의 기초 원리로 사용되고 있다.


백작은 과학을 악용해 완전범죄를 꿈꿨으나, 오히려 그가 무시했던 과학이 그의 죄를 낱낱이 밝혀낸 셈이다. 탐욕은 눈을 가리지만, 과학은 진실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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