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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쉬지 못한 천재 ‘아인슈타인 뇌 도난 사건’


현대 물리학의 아버지이자 인류 역사상 지능의 대명사로 불리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그가 남긴 마지막 유언은 “나를 우상화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흔적이 성지가 되길 거부했던 평화주의자의 소망은, 메스를 든 한 남자의 광기 어린 집착 앞에서 무참히 짓밟혔다.

천재 과학자의 뇌를 훔친 의사

1955년 4월 18일 새벽 1시 15분,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 병원에서 현대 과학의 지형을 바꾼 과학자가 숨을 거둔다. 20세기 최고의 천재라 불리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었다. 복부 대동맥류 파열로 인해 76세에 세상을 떠났다.

아인슈타인은 1905년 ‘기적의 해’에 발표한 특수 상대성 이론을 시작으로, 중력의 본질을 파헤친 일반 상대성 이론, 광전효과(1921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등을 통해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류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엎은 인물이다. 그의 업적은 단순한 학술적 성과를 넘어 원자력의 기초가 된 ‘E=mc^2’이라는 공식으로 상징된다.

그는 생전 자신의 죽음이 성지가 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며 비서였던 헬렌 두카스에게 “내 몸은 화장해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뿌려주게. 사람들이 내 뼈를 보며 숭배하는 꼴은 보고 싶지 않네”라는 단호한 유언을 남겼다.

그의 가족들은 고인의 뜻에 따라 조용히 장례를 치르고 시신을 화장할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시신이 화장터로 향하기 전, 이미 그의 머릿속은 ‘텅 빈’ 상태였다. 누군가 인류의 보물이라 불리는 그의 뇌를 몰래 적출해 사라진 것이다.


범인은 그날 밤 당직 부검의였던 병리학자 토머스 스톨츠 하비(42, Thomas Stoltz Harvey)였다. 그는 아인슈타인의 시신을 검사하던 중 거부할 수 없는 유혹에 빠졌다. ‘이 천재의 뇌 속에 도대체 무엇이 들었기에 인류의 지능을 진보시켰는가?’라는 의문이 그를 지배했다.

하비는 유족의 동의 없이 메스를 들었다. 그는 능숙한 솜씨로 아인슈타인의 두개골을 열고 무게 1230g의 뇌를 꺼냈다. 이는 일반 성인 남성의 평균보다 다소 가벼운 무게였다. 하비는 적출한 뇌를 포르말린 용액이 담긴 유리병에 넣고 자신의 가방에 숨겼다.

도난 사실은 이튿날 아침 세상에 드러났다. 뉴욕타임스가 아인슈타인의 뇌가 연구를 위해 보존되었다는 기사를 보도하자, 아인슈타인의 아들 한스 알베르트는 분노하며 병원으로 달려갔다.

하비는 당황했지만, 끈질기게 한스를 설득했다. “이 뇌를 오직 과학적 연구 목적으로만 사용할 것이며, 언젠가 당신 아버지의 천재성을 밝혀낼 열쇠가 될 것이다. 아울러 연구결과는 권위 있는 학술지에만 발표하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한스는 마지못해 사후 승인을 해주었다. 하지만 이 약속은 하비의 인생을 파멸로 이끄는 서막이 되었다.

20년간의 기묘한 도피행

프린스턴 병원은 허가 없이 장기를 적출한 하비에게 즉시 뇌를 반납하라고 명령했다. 하비가 이를 거부하자 병원은 그를 해고한다. 직장을 잃은 하비는 아인슈타인의 뇌를 싣고 도망치듯 프린스턴을 떠났다.

하비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로 뇌를 가져가 세밀하게 촬영한 뒤, 이를 240개의 작은 조각으로 나누었다. 그는 조각난 뇌를 셀로이딘으로 코팅하여 두 개의 커다란 유리병에 나누어 담았다. 이때부터 ‘천재의 뇌’와 ‘실패한 의사’의 기묘한 유랑이 시작된다.


하비는 직장을 잃고 아내와도 이혼했다. 아내는 뇌가 든 병을 보며 “그 흉측한 것을 당장 갖다 버리라”고 소리쳤고, 하비는 그 길로 짐을 싸 집을 나왔다. 이후 그는 캔자스, 미주리 등을 전전하며 단순 노동자로 생계를 이어갔다. 천재의 지능을 연구하겠다던 야심 찬 병리학자는 어느덧 시골의 가내 공업 현장에서 일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그 와중에도 아인슈타인의 뇌는 늘 그의 곁에 있었다. 때로는 서류함 뒤에, 때로는 사이다 상자나 맥주 쿨러(아이스박스) 안에 담겨 이동했다.
세상은 아인슈타인의 뇌가 어디에 있는지 잊어갔다. 그러던 1978년 잡지 <뉴저지 월간>의 기자 스티븐 레비가 수소문 끝에 캔자스주에 숨어지내던 하비를 찾아냈다. 당시 하비는 한 시골 마을에서 평범한 의사로 살고 있었다.

레비가 “박사님, 정말 아인슈타인의 뇌를 가지고 계십니까?”라고 묻자 하비는 구석에 놓인 맥주 상자에서 뇌가 담긴 유리병 몇 개를 꺼냈다. 그 속에는 옅은 노란색 액체에 잠긴 아인슈타인의 뇌 조각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이 보도가 나가자 전 세계는 발칵 뒤집혔다. 인류 최고의 보물이 시골 의사의 아이스박스 안에서 20년 넘게 방치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하비는 범죄자로 지탄받았지만, 법적으로 ‘신체 부위의 소유권’에 대한 개념이 모호했던 시절이었고, 유족의 사후 동의를 받았기에 ‘절도죄’로 처벌을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의사 면허를 박탈당하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등 실질적인 대가를 치렀다. 그는 노년이 되어서야 자신의 집착이 덧없음을 깨달았다.


43년 만의 귀환, 도둑 의사의 쓸쓸한 최후

1997년, 84세의 고령이 된 하비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아니면 노환 때문인지 뇌를 반환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빌린 뷰익 자동차 뒷좌석에 뇌가 든 가방을 싣고 미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8000km의 여행을 시작했다. 이 여정은 작가 마이클 패터니티의 저서 <아인슈타인과 함께한 드라이브>로 기록되기도 했다.

드디어 고인의 손녀인 에벌린 아인슈타인을 만났지만, 정작 그녀는 할아버지의 뇌 조각 받기를 거부했다. 에벌린에게 하비는 학자라기 보다 가족의 동의 없이 뇌를 훔치고, 40년 넘게 그것을 사적으로 소유하며 여기저기 떠돌아아닌 도굴꾼에 불과했다. 그녀는 하비가 죄책감을 털어내기 위해 자신을 이용한다고 느꼈고, 그 부도덕한 여정에 마침표를 찍어줄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결국 하비는 1998년, 자신이 처음 뇌를 적출했던 장소인 프린스턴 대학교 병원의 후임 병리학자 엘리엇 크라우스에게 남은 뇌 조각들을 반납했다. 도둑질로부터 43년 만의 귀환이었다.

현재 아인슈타인의 뇌 대부분은 뉴저지주 프린스턴 의료센터에 엄격한 통제 하에 보관되어 있다. 또한, 일부 조각들은 필라델피아의 무터 박물관에 전시되어 일반인들도 관람할 수 있다. 뇌의 오염과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특수 용액에 담겨 유리 슬라이드 형태로 보존되고 있으며, 보안 시설 내에서 관리된다.

그렇다면 하비가 그토록 열망했던 ‘천재성의 비밀’은 밝혀졌을까? 1980년대 중반부터 몇몇 논문이 발표되었다. 아인슈타인의 뇌는 수리적 사고를 담당하는 두정엽이 일반인보다 15% 정도 넓고, 신경세포를 돕는 교세포의 밀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였다.

그러나 현대 과학자들은 이에 회의적이다. 표본이 단 하나뿐이며, 뇌의 구조와 지능 사이의 상관관계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하비의 집착은 과학적 성과보다는 기괴한 해프닝으로 남게 되었다.

토머스 하비는 2007년 95세의 나이로 쓸쓸히 사망했다. 그는 평생을 아인슈타인의 뇌라는 ‘왕관’을 지키려 했으나, 정작 그 무게에 눌려 자신의 삶을 파괴했다.

이 사건은 ‘개인의 존엄성’과 ‘공공의 과학적 이익’이 충돌했을 때 발생하는 비극을 보여준다. 위대한 지성은 죽어서도 온전히 쉬지 못했고, 한 인간의 맹목적인 집착은 인류 최고의 천재를 ‘병 속의 해부학 표본’으로 전락시켰다.


우리가 아인슈타인에게서 배워야 했던 것은 그의 뇌 조각이 가진 물리적 구조가 아니라, 그가 그 뇌로 그려냈던 우주의 아름다움과 평화에 대한 철학이었을지도 모른다. 천재성은 뇌의 무게가 아니라 그 뇌가 품었던 사고의 깊이에서 나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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