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아한 어머니 연기 ‘탤런트 남윤정’ 사망사건
1954년 5월4일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얼굴이 예뻐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가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초등학교 때 서울 창경궁으로 소풍을 갔는데, 운명처럼 배우 김지미를 만나게 된다.
당시 촬영을 나왔던 김지미는 남윤정을 보고 “너는 예뻐서 나중에 배우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남윤정은 ‘커서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키운다.
1973년 상명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TBC 동양방송 공채 탤런트에 응시해 13기로 연예계에 정식 데뷔했다.
KBS 2TV 드라마 <꽃반지>(1985), KBS 1TV <은하의 강>(1993), <노란 손수건>(2003), TV소설 <고향역>(2005), MBC <하얀거탑>(2007) 등에 출연했다.
영화 <유관순>(1974), <괴짜들의 꼴찌 안녕>(1991), <정신 나간 유령>(1992), <멀고 먼 해후>(1995), <진실게임>(2000) 등에 출연하며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었다. 주로 따뜻하고 단아한 어머니상을 연기했다.
1979년 결혼해 가정을 이뤘고 슬하에 외동딸을 뒀다.
그러나 2011년 11월21일 남편이 사고로 사망하면서 평범했던 삶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당시 남윤정의 남편은 경기도에서 재생 에너지 관련 사업체를 운영했다. 쓰레기를 재활용해 재생 에너지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날 공장에 문제가 생겨 점검하러 들어갔다가 직원들과 함께 사고를 당했다. 가스가 누출되면서 옆에 있던 사람들을 덮쳤다. 남씨의 남편은 전신에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다음 날 아침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럽게 남편을 잃은 남윤정은 큰 슬픔에 젖었다. 마음을 추스릴 새도 없이 남편이 남긴 사업체의 운영을 맡았다. 남편의 사업을 이어가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한평생 연기만했던 남윤정에게 사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회사 운영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급기야 믿었던 사람들마저 제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앞에서는 협조하는 척하면서 번번이 뒤통수를 때렸다.
이로 인해 남윤정은 분노와 배신감에 치를 떨어야 했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의 부재는 더 크게 느껴졌다.
당시 남윤정은 MBC 드라마 <위험한 여자>에 출연 중이었다. 그가 맡은 ‘파주댁’은 일찍 남편을 잃고 혼자 힘으로 두 아이를 열심히 키워낸 정이 많은 인물로 묘사됐다.
남윤정은 힘든 상황 속에서도 2012년 2월29일에 시작한 JTBC 드라마 <아내의 자격>에도 캐스팅돼 연기 열정을 쏟아부었다. 주인공 윤서래(김희애)의 시어머니인 진수애 역을 맡았다. 그나마 연기할 때는 잠시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고 주어진 상황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남윤정은 딸에게 “너무 감당하기 힘들다”는 말을 자주 했다.
딸 신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매주 주말 여의도 아파트에 찾아와 엄마 곁을 지켰다. 그러다 같은해 7월 학교에서 강의하던 남편이 방학을 맞이하자 엄마와 한집에서 살았다.
하루하루 위태위태했던 남윤정. 그러던 그해 8월1일 결국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이날 아침 딸 신씨는 평소처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엄마 방으로 갔다. 그런데 방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고 깨끗하게 정리돼 있었다.
연락도 두절 상태였다. 신씨는 엄마가 친구에게 간 줄 알고 이곳저곳에 전화를 걸어봤지만 행방이 묘연했다. 느낌이 이상했던 딸은 오후 3시25분쯤, 드레스 룸에 들어갔다가 싸늘하게 식은 엄마의 시신을 발견한다. 향년 58세.
남윤정은 마지막 가는 길에 딸에게 편지를 남겼다. “너무 미안하다. 엄마가 힘들어서 그런 것이고 네 탓이 아니니 죄책감 갖지 마라. 정말 사랑한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처음 언론에는 남윤정의 사망원인이 ‘과로로 인한 심장마비’로 알려졌다. 유족이 정확한 사인에 대해 함구했던 것이다.
하지만 금세 극단적인 선택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지면서 온갖 추측성 기사가 쏟아졌다. “생활고 때문이다” “우울증 때문이다” “신병을 비관했다” 등등.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기사화되기 시작했다.
사실과 다른 내용이 연이어 보도되자 신씨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직접 심경을 토로했다. 사인을 밝힐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 “유서에 ‘과로로 심장이 안 좋아 사망한 것으로 해달라’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저와 사위가 있는데 생활고로 그런 선택을 했다는 건 정말 치욕스럽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우울증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는 것도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인의 시신은 화장을 거쳐 서울 원지동 서울추모공원에 안치됐다.
자상하고 따뜻한 이미지로 대중에게 친근했던 배우 남윤정. 고인은 마지막까지 살려고 몸부림쳤지만, 닥친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 고통의 깊이와 높이를 짐작하기는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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