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병(말단비대증)으로 투병하다 사망한 ‘농구선구 김영희’
1963년 부산에서 출생했다. 너무 작게 태어나 할머니가 백일기도를 했을 정도였다. 부모님의 키도 큰 편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165cm, 어머니가 163cm였다.
그런 그녀의 키가 5살 때부터 콩나물 자라듯 크기 시작했다. 부산 석포초등학교 입학식 날엔 맨 뒤에 설 정도가 되더니 5학년 때 175cm가 넘었다. 부산 동주여중 농구부 시절 실업팀 한국화장품과 전속 계약을 맺었다.
1981년 서울 숭의여고를 졸업한 후 한국화장품에 입단했다.
1983년 겨울 스포츠 양대 산맥 중 하나인 점보시리즈가 출범하면서 스타로 발돋움한다. 그녀의 키는 무려 2m 5cm, 국내 최장신 여성이다. 이 큰 키로 코트를 누비며 상대 팀을 압도했다.
1984년 LA올림픽 때는 국가대표로 출전해 은메달을 따는 데 기여했다. 이후 점보시리즈에 복귀해 최전성기를 누린다. 당시 한 경기 최다인 52점을 넣으며 개인 타이틀 5관왕을 차지했다. 75 리바운드를 기록해 한 경기 역대 최다 리다운드 기록도 갖고 있다.
최전성기를 누릴 때 갑작스런 불행이 찾아온다. 1987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훈련하다 쓰러졌는데, 뇌종양 판정을 받고 코트를 떠난다. 1998년에는 당뇨병과 위궤양 합병증이 찾아와 뇌종양 수술을 다시 받게된다.
설상가상 1998년 어머니가 59세의 나이에 뇌출혈로 세상을 떠난 뒤 2000년 아버지마저 암으로 눈을 감았다. 2002년이 돼서야 ‘거인병’(말단비대증)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충격은 컸다. 김영희는 외로움과 우울증이 겹치며 방안에 갇히 코끼리로 살아왔다. 밖에 나가지 않고 창밖을 보며 흘러가는 세월만 원망했다. 죽을 결심도 했다.

‘말단비대증’은 뇌 가운데 완두콩 크기만 하게 위치하는 뇌하수체에 생긴 종양이 과도한 성장호르몬을 분비해서 생긴다. 김영희처럼 성장판이 닫히기 전인 청소년기에 발생하면 키가 2m 이상으로 자라는 거인병으로 나타난다.
성장판이 닫힌 성인이 돼서는 손, 발, 코, 턱 등 신체의 말단이 크고 굵어지는 양상이 나타난다. 내부 장기도 커져 심장이 비대해지면 심부전 등으로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 이외에도 고혈압, 당뇨병, 골다공증 등 합병증이 동반된다.
김영희도 합병증으로 인해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는 상태가 됐다. 큰 혹이 시신경을 눌러 눈을 모두 실명할 뻔했고, 고통을 이기기 위해 하루에 진통제 15알 이상 먹고 버틴 적도 있었다.
한때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대인기피증을 겪기도 했다.
김영희는 방송에 출연해 “등 뒤에서 남성들이 ‘와 거인이다’ ‘남자야 여자야’ ‘저것도 인간인가’라며 웃더라. 한 할머니는 흉측한 동물을 보듯 놀라시더라. 그때 제가 ‘죄송하다. 저도 사람이다’라고 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이를 극복하고 삶에 대한 새 희망을 품게 된다. 그녀의 힘겨운 생활이 알려진 뒤 농구인이나 이름 모를 팬들의 도움이 전해졌다.
김영희는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의 8평짜리 원룸에 살았다. 그녀의 한 달 고정 수입은 체육 연금으로 받는 70만 원이 전부였다. 틈틈이 집에서하는 부업으로 생활비를 벌었다.
그런데도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다. 수시로 소년소녀 가장의 집을 찾아 나서고, 경기도 광명에 있는 지체장애인시설(사랑의 집)에 들러 그들과 함께했다.

홀로 사는 노인분들을 찾아가 떡과 죽을 대접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동네 어른들이 330mm 신발을 보고 “항공모함이 따로 없구만” 하고 놀라시면, “할아버지, 이 배 타고 노 저어서 유럽여행 다녀오세요”라고 맞장구를 치며 말동무가 돼 주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김영희는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키는 다 자랐는데, 심장 등 장기까지 비대해져 생명을 잃을 수도 있어서다. 성장호르몬 생성을 억제하는 주사값과 병원 치료비까지 합치면 수 백 만원이 들어갔다.
이런 그녀가 2023년 1월31일 ‘말단비대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0세. 많은 농구인들이 김영희의 마지막을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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