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심령·공포

같은 공포영화 보고 갑자기 사망한 10대들

지난 1987년 3월 미국 뉴욕에 사는 한 10대 소년은 친구들을 만나 어디론가 향한다. 그리고 몇 시간 뒤 그들은 모두 사망한 채 발견된다.

이틀 후 미국 일리노이주에 살던 17세 소녀 카렌 로건 또한 어딘가를 다녀온 뒤 죽음을 맞이한다. 부모는 딸이 외출했다가 넋을 잃은 채 돌아와 방에 들어갔는데 얼마 후 죽어있었다고 했다.

이상한 것은 카렌과 같은 날 같은 장소에 나타났던 또 다른 10대 소녀도 사망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미국 일대에서 10대 청소년들의 동시다발적인 사망 사건이 일어난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이들의 죽음에서 두 가지 공통점을 발견한다. 사인이 심장발작으로 인한 돌연사였다는 것과 모두 극장에서 영화를 본 후 숨졌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극장에서 본 것은 다름아닌 공포 영화 <나이트메어3>였다.

1984년에 처음 제작된 이 영화는 한 지역 사람들의 음모로 불에 타 죽은 10대 남자가 ‘프레디 크루거’라는 불멸의 살인마가 되어 나타나 자기 목숨을 앗아간 이들의 자녀를 살해한다는 내용이다.

영화 <할로윈>, <13일의 금요일> 등을 만든 미국의 웨스 크레이븐 감독이 만든 영화다.

‘나이트메어’는 악몽을 소재로 한 새로운 형식의 공포영화로 평가받았고, 저예산 영화였지만 엄청난 수익을 올리며 흥행과 비평에 성공한다.

또한 관객의 호평을 받으며 속편을 이어갔다.

크레이븐 감독은 1편에서 연출과 각본까지 맡았다. 1985년에 후속편으로 <나이트메어2>가 나왔지만 크레이븐은 불만족을 표시했고, ‘나이트메어3’는 직접 각본을 쓰게 된다.

이렇게 만든 ‘나이트메어3’는 그 어떤 것보다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됐다.

그런데 1987년 이 영화가 개봉된 후 기이한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한다.

심장 발작을 일으켜 사망하는 사건이 미국 일대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났고, 이같은 기현상은 영화 개봉 2주만에 미국 전역으로 확대됐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가 전 세계에서 개봉하자 영화 속에 삽입된 ‘살인마 프레디의 자장가’가 특히 관심을 끌었다.

각국의 10대 청소년들은 초점 없이 흐린 눈빛으로 프레디의 자장가를 읊조리며 환각상태에 빠지는가 하면, 어떤 젊은이들은 영화 속의 악령을 숭배하기까지 했다.

이런 현상이 끊이지 않자 사람들 사이에서는 나이트메어를 보면 아이들이 미치거나 저주가 내린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공포감이 확산됐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잇따른 죽음은 정말 나이트메어 저주를 받은 것일까.

이에 대해 캘리포니아대학 사회학 교수 메이비드 킬립은 “대부분의 피해자가 10대 청소년임을 감안할 때 영화를 보고 극도의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던 그들은 영화화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 채 패닉 상태에 빠져있다가 끝내 자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망자들을 부검한 결과 대부분 심장발작과 같은 심장 이상이 원인이었고 현장에서 자살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자 콜롬비아대 정신과 교수 마트린 골드 박사는 “영화에 등장하는 화상으로 일그러진 광기어린 웃음, 면도칼 장갑을 끼고 기괴한 소리를 내는 영화 속 살인마 프레디를 보고 난 후 감수성이 예민한 10대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현실감을 잃고 환영과 환청에 시달리다가 급기야 심장발작을 일으켜 죽은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이러한 주장이 제기되자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했고, 미국 의학 당국은 “10대들의 죽음은 의학적으로 ‘브루가다 증후군’일 뿐”이라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이것은 심장 관련 유전성 질환으로 특별한 증상 없이 수면 중 발생한 심장발작으로 실신하거나 숨지는 질환을 말한다.

하지만 브루가다 증후군은 대부분 20대에서 40대 성인 남성에게 주로 발병하고 세계적으로 1만명 당 5명꼴로 발병하는 희귀 질환인데 유전적 질환이 없는 10대들이 유독 나이트메어를 보고 난 뒤 사망한 것은 브루가다 증후군으로만 보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그러던 중 놀라운 사실 하나가 알려지는데, 나이트메어 저주는 크레이븐 감독 때문에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이트메어 탄생 비화와 맞물린다.

나이트메어를 제작하기 3년 전인 1981년 어느 날, 크레이븐은 LA타임스를 보다가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보게 된다. 1970년대 캄보디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왔던 난민들을 다룬 내용이었다.

실제로 1975년에서 1979년 사이 캄보디아는 정치가 폴 포트가 이끄는 무장단체에 의해 무차별 학살이 자행됐다. 이 무장단체는 3년7개월간 전체 인구 700만명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국민들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때 일부 캄보디아 사람들은 학살을 피해 미국으로 탈출하기도 했는데, 이들 난민들은 잠을 제대로 들지 못하고 악몽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중 일부는 겨우 잠에 빠져들었다가 갑자기 깨어난 후 곧바로 사망했다. 부검결과 그들의 죽음에 특이한 것은 없었고 단지 심장발작이 원인이 된 돌연사였다.

언론 기사를 통해 이런 사실을 접한 크레이븐은 그들의 기이한 죽음을 연구하기 위해 직접 캄보디아에 찾아가 3년간 면밀히 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 후 크레이븐은 실제 캄보디아 난민의 기이한 죽음을 본 떠 ‘꿈속에서 살해당하면 실제로도 죽음을 당한다’는 나이트메어의 기본 스토리를 완성했다. 여기에 그가 어린시절에 보았던 끔찍한 화상을 입은 노숙인의 모습을 10대 살인마 프레디로 설정한 뒤 영화를 제작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크레이븐이 캄보디아 난민들의 죽음을 영화로 만든 것이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저주를 불러 일으킨 것이라고 믿게 됐다.

이런 이야기가 번지면서 사람들은 더욱 동요하며 극심한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지금까지 이러한 기현상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은 채 ‘나이트메어’의 저주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웨스 크레이븐 감독

1939년 8월2일 미국 오하이오즈 클레베랜드에서 태어났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으며 위튼 칼리지에서 영문학과 심리학을 공부하고, 존스홉킨스대에서 철학과 창작 석사 학위를 이수했다.

대학에서 강사 생활을 하다 1970년 숀 커닝햄의 다큐멘터리 포르노그래피 ‘투게더’에 편집자로 참여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했다.

1972년 잉그마르 베리만 감독의 <처녀의 샘>을 포르노 호러물로 바꾼 <분노의 13일>(원제 ‘왼편 마지막 집’)을 연출하며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1977년 <공포의 휴가길>로 시트베스 공포영화제 대상을 수상한다.

이후 <저주받은 축복>(1981), <공포의 휴가길2>(1983)를 선보였다. 그러던 1984년 현대적인 공포영화 <나이트메어>를 통해 상업적인 성공과 국제적인 명성을 한꺼번에 얻는다.

특히 꿈에 나타나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 ‘프레디 크루거’라는 공포영화 사상 가장 독창적인 캐릭터를 탄생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크레이븐 감독은 1996년 새로운 공포영화 시리즈 <스크림>으로 다시 한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것은 역대 가장 성공한 공포영화 시리즈로 꼽히는데, ‘시리즈 4편’ 모두 크레이븐이 직접 연출했다.

그는 뇌종양으로 투병하다 2015년 8월30일 로스엔젤레스 자택에서 76세로 세상을 떠났다.■

<저작권자 ⓒ정락인의 사건추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