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

시흥 전처 성폭행·살인·방화 사건



2025년 4월1일 오전 1시11분쯤, 경기도 시흥시 조남동의 한 편의점 유리문이 열렸다. 계산대에는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던 30대 여성 B씨가 앉아 있었다. 무심코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던 B씨는 문을 열고 들어온 남성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경악하고 말았다. 그는 이혼 후에도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던 전남편 A씨(30대)였고, 그의 손에는 날 선 흉기가 들려 있었다.

좁은 계산대에 갇혀 도망칠 곳이 없던 B씨에게 A씨는 망설임 없이 달려들어 흉기를 휘둘렀다. B씨는 책상 모서리를 붙잡고 몸을 웅크리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갑작스런 공격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치명상을 입고 쓰러지던 B씨는 마지막 생명줄이었던 경찰 지급용 스마트워치의 긴급 버튼을 눌렀다. 비명 섞인 구조 신호는 즉시 112 상황실로 접수되었다. 경찰은 위급 상황 최고 단계인 ‘코드 제로(Code 0)’를 발령하고 현장으로 긴급 출동했다.

A씨는 전처에게 흉기를 휘두른 후 렌터카에서 인화 물질을 가져왔다. 이걸 편의점 바닥과 계산대 주변에 뿌린 뒤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불길이 솟구치는 것을 확인한 그는 피를 흘리며 쓰러진 B씨를 그대로 방치한 채 현장을 빠져나갔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3분20여초 만에 편의점에 도착했으나 이미 A씨가 범행을 저지르고 도주한 뒤였다. 불길은 편의점 천장의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면서 8분 만인 오전 1시 19분에 진화되었지만, 매장 내부는 시커멓게 그을렸다.

경찰과 119 구급대원은 현장에서 B씨를 발견해 병원으로 급히 이송했으나, 끝내 숨을 거둔다. 경찰은 편의점 주변 폐쇄회로(CC)TV를 분석해 A씨를 용의자로 특정하고 추적에 나섰다. 범행 직후 시흥 시내의 한적한 주차장으로 도주해 차 안에서 자해를 시도하던 A씨는, 범행 약 1시간 뒤인 오전 2시 13분쯤 추격해 온 경찰에 체포된다.


사흘간의 치밀한 범행 준비

A씨와 B씨는 2024년 성격 차이 등을 이유로 혼인 관계를 정리했다. 그러나 서류상의 이혼은 관계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지 못했다. 이혼 후에도 A씨는 B씨의 주변을 맴돌며 사적인 비밀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는 등 지속적인 심리적 압박과 괴롭힘을 가했다.

이러한 집착은 성범죄로 이어졌다. A씨는 2025년 3월19일, B씨를 협박해 두 차례에 걸쳐 성폭행했다. 가해자의 거듭되는 범행 속에서 B씨가 느낀 정신적 고통과 공포는 극에 달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며칠 뒤인 3월24일, A씨가 또다시 찾아와 성폭행을 시도하자 B씨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관들은 현장에서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B씨는 인천남동경찰서에 신변안전조치를 신청했고, 경찰은 위급 상황 시 즉시 신고가 가능한 스마트워치를 지급하며 B씨를 ‘112 안전조치 대상자’로 등록했다. 이틀 뒤인 3월26일, 인천가정법원 역시 A씨에게 ‘피해자로부터 100m 이내 접근금지’를 명하는 임시조치 결정을 내렸다. 사법기관과 경찰의 개입으로 B씨를 위한 제도적 보호막이 겹겹이 쌓이는 듯 보였다.

그러나 유치장에서 풀려난 A씨는 반성 대신 증오를 키웠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전처가 나를 고소하는 바람에 주변 사람들에게 부끄럽고 창피해졌다”고 진술했다. 사법 절차가 시작되면서 자신의 체면이 깎였다는 삐뚤어진 배반감이 맹목적인 분노로 변한 것이다.

A씨는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을 비웃듯 보복을 치밀하게 계획했다. 범행 사흘 전에는 동선을 감추기 위해 렌터카를 대여했다. 범행 이틀 전에는 인터넷으로 범행에 사용할 흉기를 주문해 배송받는다. 뿐만 아니라 범행 전날에는 살해 후 흔적을 지우고 매장을 태워버릴 목적으로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구입해 통에 가득 채웠다.

A씨는 B씨가 생계를 위해 특정 시간대에 편의점에서 홀로 근무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법원이 설정한 ‘100m 접근금지’라는 거리 제한은 보복을 결심한 가해자 앞에 아무런 억제력이 되지 못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A씨는 인적이 가장 드문 새벽 시간대를 골라 흉기와 휘발유 통을 싣고 편의점으로 향했던 것이다.



경찰은 초기에 A씨를 살인 및 방화 혐의로 입건했으나, 치밀한 계획성과 신고에 대한 보복 심리가 명확히 확인됨에 따라 형량이 더 무거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살인’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이 과정에서 A씨가 과거 다른 여성에게 강간상해죄를 저질러 교도소에서 2년6개월간 실형을 살고 나온 성범죄 전과자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복역 후에도 전혀 교화되지 않은 채 전처를 상대로 다시 성범죄를 저지르고 끝내 살인까지 감행한 것이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항소심의 반전, 사회로부터의 영구 격리

1심 재판 과정에서 A씨는 보복살인과 방화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성폭행 혐의에 대해서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고 사전에 합의된 관계였다”며 전면 부인했다. 숨진 피해자는 말이 없다는 점을 악용해 성범죄 책임을 회피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의 판단은 단호했다. B씨가 생전 경찰 조사에서 남긴 진술은 매우 구체적이었으며, 수사기관이 확보한 증거들과도 정확히 일치했다. 1심 재판부인 수원지법 안산지원은 A씨의 강간, 유사강간, 유사강간미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동종 성범죄 전력이 있음에도 법원의 임시조치를 어기고 잔혹한 보복 범죄를 저지른 점, 방화로 인해 추가 인명피해가 발생할 위험이 컸던 점 등을 고려해 1심은 A씨에게 징역 45년을 선고했다. 사형을 구형했던 검찰과 형량이 무겁다고 주장한 A씨 양측 모두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수원고법 형사14부에서 진행된 항소심에서는 새로운 법적 쟁점이 부각되었다. 1심 재판부가 판결을 내릴 때, 검찰이 청구한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명령’에 대한 판단을 누락한 법리적 오류가 발견된 것이다. 관련 법률상 재범 위험성이 인정되어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할 때는 본래의 범죄 형량과 동시에 선고해야 한다.

항소심 재판부가 A씨의 재범 위험성을 재평가한 결과, 과거 성범죄 전력과 이번 범행의 잔혹성으로 미루어 재범 위험성이 ‘높음’ 단계로 도출되었다. 이에 따라 항소심 재판부는 전자장치 부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부착 명령이 누락된 1심 판결을 파기했다. 다시 열린 선고 공판에서 항소심 재판부는 1심의 징역 45년보다 훨씬 무거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사법 질서를 뒤흔드는 보복 범죄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한 결과였다.



재판부는 “자신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사법기관의 임시조치마저 무시한 채 피해자를 찾아가 살해한 행위는, 한 개인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것을 넘어 국가의 사법 기능과 형벌권 행사를 정면으로 방해한 중대한 반사회적 범죄”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다만 사형 선고에 대해서는 “다른 유사 사건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할 때 생명 자체를 박탈할 만한 특수한 사정이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선을 긋는 대신, 가해자가 죽는 날까지 사회로부터 격리되도록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20년간의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무너진 방지책과 남겨진 과제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피해자 신변보호 체계가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숨진 B씨는 이혼 후 지속되는 가해 속에서도 국가와 법률 제도를 신뢰하며 매뉴얼대로 행동했다. 경찰에 신고했고,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을 받아냈으며, 신변보호용 스마트워치를 상시 착용하고 있었다.

실제 습격을 당한 공포의 순간에도 B씨는 스마트워치 버튼을 눌러 국가에 구조 요청을 보냈고, 경찰 역시 최고 비상 단계를 발령해 공조 가능한 가장 빠른 속도로 현장에 출동했다. 서류와 수치상으로 국가의 매뉴얼은 완벽하게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가해자의 비뚤어진 보복심과 치밀한 계획 앞에서는 그 어떤 방지책도 힘을 쓰지 못했다. 법원의 100m 접근금지 명령은 물리적인 돌발 습격을 차단하는 실효적 제동 장치가 되지 못했고, 렌터카에 흉기와 휘발유를 싣고 돌진하는 물리적 폭력을 막아서지 못했다. 경찰이 도착하기 전, 가해자가 흉기를 휘두르고 불을 지르는 데 걸린 시간은 단 몇 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제도적 장치는 겹겹이 마련되어 있었으나, 격분한 범인의 물리적인 흉격을 차단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범인의 보복심으로 인해, 신변보호 조치를 신뢰하고 매뉴얼대로 대처했던 30대 피해자는 끝내 목숨을 잃었다.


남겨진 유족들 또한 평생 치유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을 안고 살아가게 되었다. 가해자에 대한 사법부의 영구 격리 판결은 내려졌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현행 신변보호 제도를 어떻게 더 실효성 있고 촘촘하게 개혁할 것인가에 대한 무거운 숙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 있다.■

<저작권자 ⓒ정락인의 사건추적.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