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화제

자녀들이 도시로 떠나자 마을에 인형 설치한 주민들


일본 교토에서 북서쪽으로 약 1시간을 달리면 닿는 작은 산골 마을, 이치노노(一野辺). 푸른 자연이 감싸 안은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기묘하면서도 쓸쓸한 분위기가 방문객을 압도한다.
논밭 한가운데서 묵묵히 삽질을 하는 농부, 마당 한구석에서 다정하게 그네를 타는 아이,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미소 짓는 청년까지. 얼핏 보면 평화로운 시골 마을의 일상이지만, 이들의 정체는 모두 사람이 아닌 ‘실물 크기의 인형’이다.

인구 감소와 초고령화로 소멸 위기에 처한 일본의 한 작은 마을이 삭막하게 변해버린 동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취한 특별한 조치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미국 매체 뉴욕포스트와 AFP 통신 등 주요 외신들은 일제히 이치노노 마을의 사연을 보도하며, 인류가 마주한 인구 절벽의 미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소개했다.

사람이 사라진 공백, 오래된 옷을 입은 마네킹이 채우다

현재 이치노노 마을에 등록된 실제 주민은 고작 60명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주민 대부분이 65세를 훌쩍 넘긴 고령층이며, 마을 전체를 통틀어 어린이는 단 한 명뿐이다. 젊은이들이 일자리와 교육을 위해 모두 도시로 떠나버린 탓에, 마을은 낮에도 적막감만 가득한 유령 도시처럼 변해갔다.

마을 주민들이 아이디어로 내놓은 것이 바로 ‘인형 배치’였다. 주민들은 집안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오래된 천과 헌 옷, 마네킹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조합해 실제 사람 크기의 인형을 만들어냈다. 손재주가 좋은 노인들이 정성스레 표정을 그려 넣고 실감 나는 포즈를 취하게 하자, 인형들은 마치 살아있는 주민처럼 마을 곳곳의 공백을 메워갔다.

담벼락 기둥에 기대어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인형 무리, 밭일하다 잠시 땀을 식히는 노인 인형 등 배치된 인형들은 마을에 기묘한 활력을 불어넣었다. 외지인들에게는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해 웃음을 안기지만, 그 이면에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을이 완전히 죽어버릴 것 같다”는 주민들의 절박한 노력이 숨어 있다.


“자식들 앞길 막을까 봐 보냈는데…” 노인들의 뒤늦은 후회

이치노노 마을에 사는 88세의 최고령 주민 히사요 야마자키씨의 증언은 농촌 소멸을 바라보는 노년층의 복잡한 심경을 그대로 대변한다. 그녀는 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씁쓸한 눈물을 훔쳤다.

“이곳에 사는 노인들에게도 다 자녀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들이 이런 외딴 시골 구석에 갇혀 지내면 평생 결혼도 못 하고 직장도 못 구하게 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모두 대학에 가라며 도시로 등을 떠밀었지요.”

하지만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내린 결정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야마자키씨는 “아이들은 도시로 떠난 후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각자 먼 곳에서 일자리를 잡았다”며, “결과적으로 우리가 자식들을 밀어낸 대가를 지금 텅 빈 마을에서 외롭게 치르고 있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마을의 살림을 도맡아보고 있는 이장 이치로 사와야마싸(74)의 위기감은 더욱 구체적이다. 그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이대로 마을을 방치하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오직 단 하나, ‘마을의 완전한 소멸’뿐이다”라고 우려했다. 인형을 세우는 것 역시 소멸을 막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인 셈이다.

2만 개 동네가 사라진다…일본 전체의 거대한 경고등

이치노노 마을의 현실은 이 동네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다. 현재 일본은 지중해의 부호 국가 모나코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고령 인구 비율이 높은 ‘초고령화 국가’다. 일본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이미 29%를 넘어섰다.

일본 정부와 정치권 역시 이 문제를 국가 생존이 걸린 중대한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다. 현재 이치노노 마을처럼 주민 대부분이 65세 이상인 ‘한계 마을’이 일본 전역에 무려 2만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정부는 쇠퇴해가는 농촌 지역을 그대로 두면 국가의 기반이 무너진다며, 이들 지역의 인프라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농촌을 다시 건설하겠다는 굵직한 ‘지방 창생(지방 살리기)’ 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재정 지원과 정책적 대안이 실제 인구 유입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사이 이치노노 마을의 노인들은 오늘도 바늘과 실을 들고 새로운 ‘인형 주민’을 만든다. 사람의 온기가 사라진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마네킹 인형들은, 급격한 인구 감소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 사회에 소리 없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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