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심령·공포

‘투탕카멘의 저주’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람들

투탕카멘(투트 앙크 아멘)은 고대 이집트 제18왕조의 12대 왕(재위 B.C. 1361년~1352년)이다.

10대 왕 아크나톤의 동생 또는 조카라고도 하는데 그의 출생에 관해서는 확실치 않다. 제11대 왕(세멘크카)이 재위 3년 만에 죽으면서 9세에 즉위해 ‘소년 왕’으로 불린다.

그러나 18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고, 죽음에 대한 의혹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업적에 관한 기록도 남겨지지 않았다. 젊은 나이에 갑작스레 맞은 죽음과 은폐되다시피 한 그의 존재는 왕위를 노린 누군가에게 살해된 것으로 추측됐다.

이집트 나일강 중류 룩소르 서쪽 교외지역에 위치한 ‘왕들의 계곡’에는 고대 이집트 왕들의 무덤이 모여 있다.

1922년 11월4일, 영국인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와 인부들은 비밀의 문으로 통하는 16개의 돌계단을 발견한다.

11월26일 카터는 발굴 후원자인 런던의 카르나본 백작과 함께 문 앞을 가로 막고 있던 대리석 돌문을 열었다. 이어 두 번째 문 앞에 있던 돌을 치우자 ‘투탕카멘’이란 이름이 드러났다.

카터는 몇 개의 돌을 더 제거한 뒤 촛불을 들고 돌문을 열었다. 그는 무덤 안의 휘황찬란한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렇게해서 투탕카멘의 무덤은 봉인된 지 3300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발굴 당시 투탕카멘의 시신은 110kg에 달하는 황금 관속에 미라 상태로 완벽하게 보존돼 있었다.

시신의 얼굴에는 황금 마스크가 씌워져 있었다. 호화찬란한 유물이 무더기로 나왔는데 각종 금은보화는 물론 3천 년 전의 향기를 그대로 간직한 향료 등, 무려 2천여 점의 귀중한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무덤 입구에는 경고의 문구도 새겨져 있었다. ‘왕의 안식을 방해하는 자들의 머리 위에 화염을 토해 육신을 파괴할 것이다’라고 했는데, 이후 발굴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의문의 죽음을 맞기 시작한다.

발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22명 중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죽음을 당하면서 ‘투탕카멘의 저주’라는 말이 나왔다. 왕의 무덤을 파헤친 자들에게 분노한 투탕카멘이 벌을 내렸다는 것이다.

의문의 죽음은 무덤 발굴 5개월 후부터 시작된다.

발굴 후원자인 카르나본 경은 투탕카멘의 얼굴 상처와 똑같은 부위를 모기에 물려 얼마 뒤 패혈증으로 사망한다. 그가 사망할 때 영국에 있던 그의 개가 경련을 일으키며 죽었고, 이집트 카이로시가 정전돼 도시가 암흑세계로 변했다.

카르나본의 조카인 오베리 허버트는 얼마 후 정신착란을 일으켜 죽었고, 카르나본의 부인도 벌레에 물려 1929년 사망한다. 그녀를 돌봤던 간호사도 원인 불명으로 생을 마감했다.

발굴에 참여했던 미국 고고학자 아서 메이스는 카르나본이 숨진 직후 혼수상태에 빠져 사망했다. 미국 철도계의 거물 조지 J 굴드도 무덤을 본 다음 날 고열을 앓다가 죽었다. 영국의 실업가 조엘 울도 무덤을 견학하고 귀국하던 도중에 고열로 죽었다.

투탕카멘의 미라를 조사하기 위해 이집트에 왔던 X선 촬영 사진기사 아치볼드 더글러스 라이드는 발굴 첫해 영국에서 사망했다. 이집트 왕자인 알리 케멜 화미베이는 무덤을 본 뒤 자신의 아내가 쏜 총에 맞아 죽었다.

프랑스의 이집트학자 조지 방디트는 무덤 방문 뒤 갑자기 사망했고, 카터의 비서 리처드 베텔은 침대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베텔이 빼돌린 유물을 보관하고 있던 그의 아버지 웨스트버리도 살해당했다.

투탕카멘의 미라를 검사한 더글러스 데리 교수는 갑자기 죽었다. 그와 같이 미라를 검사한 알프레드 루카스도 거의 같은 시기에 심장 발작으로 사망했다.

투탕카멘 유물을 관리하던 아브라함은 유물전시회 문제로 카이로에서 회의하고 집으로 가다 의문의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투탕카멘 유물의 영국박물관 전시를 위해 수송 작업을 지휘하던 가멜 메레즈는 “파라오의 어리석은 전설을 믿지 않는다”고 공언한 그날 밤 갑자기 사망했다. 이밖에도 유물을 운반하던 6명은 그 후 5년 내에 모두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묘지를 발굴한 하워드 카터는 1939년 66세로 사망하면서 자연수명을 살았다.

하지만 그의 주변은 불운이 겹쳐졌다. 자식처럼 기르던 카나리아가 독사에 물려 죽고, 딸 이브린 와이트는 중증 노히로제에 걸려 고통 받다가 수수께끼 같은 유서를 남기고 목매 자살했다.

이후에도 투탕카멘 무덤에서 도난 된 부장품을 소지한 사람이 잇따라 사망했다. 심지어 남아공의 한 여성은 자기 가족에 내린 투탕카멘의 저주를 풀어달라고 이집트 문화부에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던 2011년, 영국의 역사학자인 ‘마크 베이넌’이 충격적인 주장을 내놓는다.

투탕카멘의 저주로 사망했다는 사람들 중 최소 7명은 연쇄살인마에 의해 살해됐다는 것이다. 투탕카멘에 대해 연구하던 그는 우연히 어떤 책과 일기를 발견했는데, 놀랍게도 여기에는 투탕카멘의 저주와 관련된 기록이 있었다.

이 책을 남긴 사람은 영국의 마술사이자 신비주의자 ‘알레이스터 크로울리’라는 남자였다. 그는 ‘텔레마’라는 종교를 만든 교주였고, 텔레마의 사원을 세워 고대 이집트 왕인 파라오들을 숭배했다.

크로울리는 1904년 아내와 함께 이집트로 여행 갔다가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고대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의 신 호루스신이 크로울리를 신의 대리인으로 임명했다는 것이다. 그는 계시를 적은 ‘율법의 서’를 쓰기도 했다.

크로울리는 자신이 신을 대신해 투탕카멘의 무덤을 파헤친 자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차례로 제거할 살인 명부를 만들었다.

첫 번째 목표로 발굴작업의 후원자인 카르나본 경을 찍었으나 그가 갑자기 사망하자 두 번째 목표물로 알리 케멜 화미 베이를 점찍었다. 크로올리는 알리의 아내인 마리를 텔레마 종교로 끌어들인 후 마리를 세뇌시켜 남편을 권총으로 살해하게 만든다.

크로울리의 하수인이 된 마리는 세번째 목표물인 허버트도 살해했다. 그는 카르나본 경의 조카이자 무덤 발굴 현장에서 인부들을 감독했던 사람이었다.

크로올리는 투탕카멘의 무덤에 들어갔다가 몰래 유물들을 훔친 뒤 비싼 값에 팔아 호의호식하던 베텔과 그가 빼돌린 유물들을 보관하던 베텔의 아버지까지 살해했다.

이어 영국 박물관에서 투탕카멘 유물을 담당하던 어네스터 윌리스 버지와 브리티시박물관 관계자 에드거 스틸 등 7명을 죽였지만 텔레마의 사원에서 한 신도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경찰의 주목을 받게 되자 더 이상 살인행각을 이어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마크 베이넌은 “크로올리에게 살해된 7명의 공통점은 모두 런던에서 사망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크로올리는 일기와 책을 통해 자신의 살인행위흘 기록으로 남겨놓았다. 그리고 1947년, 72세의 나이에 아편중독으로 사망한다.

투탕카멘의 저주는 현재까지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일각에서는 투탕카멘의 무덤 발굴과 관련된 사람이 1500명쯤 되는데, 이중 10년 이내에 사망한 사람이 21명 뿐 이라며 ‘조작설’을 제기한다.■

<저작권자 ⓒ정락인의 사건추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