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사기극 ‘히틀러 가짜 일기장’ 사건
1983년 4월25일, 서독의 저명한 시사주간지 <슈테른>(Stern)의 함부르크 본사 편집국은 터질 듯한 긴장감과 환호로 가득 차 있었다. 전 세계 기자들이 모인 기자회견장에서 슈테른의 경영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선언했다. “역사를 다시 써야 합니다. 우리 취재진이 수십 년간 베일에 싸여 있던 아돌프 히틀러의 친필 비밀 일기장을 마침내 찾아냈습니다.”
그들이 제시한 것은 총 62권에 달하는 두툼한 일기장이었다. 나치 독일의 패망과 함께 영원히 사라진 줄 알았던 독재자의 사생활과 속마음이 담겼다는 이 문서의 등장은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이 위대한 발견이 인류 역사상 가장 황당하고도 정교한 ‘사기극’으로 밝혀지는 데는 채 2주가 걸리지 않았다.
추락한 비행기, 그리고 38년 만의 전설
이야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를린의 지하 벙커에 고립된 히틀러는 패망을 예감하고 자신의 개인 문서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세라글리오 작전’으로 명명된 이 계획에 따라, 히틀러의 사적인 기록물들을 실은 수송기가 베를린을 이륙해 남부 바이에른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 비행기는 목적지에 닿지 못하고 드레스덴 근처의 작은 마을인 보르니츠에 추락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주민들과 군인들은 불타는 잔해 속에서 일부 문서들이 빠져나왔다고 했으나, 전후의 혼란 속에서 이 이야기는 역사의 미스터리로 묻히는 듯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1970년대 후반, <슈테른>의 베테랑 기자 게르트 하이데만(Gerd Heidemann)이 이 전설에 매료되었다. 하이데만은 단순한 기자가 아니었다. 그는 나치 시대의 유물과 골동품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수집가이기도 했다. 심지어 나치 독일의 공군 총사령관이었던 헤르만 괴링이 소유했던 호화 요트 ‘카린 2세’를 사들이기 위해 자신의 아파트까지 저당 잡힐 정도로 그의 집착은 깊었다.
전직 나치 고위 인사들과 교류하며 기괴한 인맥을 쌓아가던 하이데만에게, 어느 날 “추락한 비행기에서 흘러나온 히틀러의 비밀 일기장이 실존한다”는 은밀한 첩보가 날아든다.

사기꾼과 탐욕스러운 기자의 은밀한 만남
하이데만에게 일기장의 존재를 흘린 인물은 슈투트가르트에서 골동품상을 운영하던 콘라트 쿠야우(Konrad Kujau)였다. 그는 좀도둑과 문서 위조로 잔뼈가 굵은 전문 사기꾼이었다. 쿠야우는 서독에 나치 유물 수집가들이 넘쳐난다는 사실을 알고, 평범한 구형 무기나 그림에 가짜 감정서를 붙여 비싸게 팔아넘기며 재미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급기야 “히틀러가 직접 쓴 일기장이 있다면 어떨까”라는 대담한 상상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먼저 동독에 있는 고위 장성 형제를 통해 삼엄한 국경을 넘어 일기장을 밀수해 오는 것처럼 연기했다. 하이데만은 이 정교한(?) 거짓말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두 사람의 이해관계는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쿠야우는 돈이 필요했고, 하이데만은 빚더미를 청산하고 언론계의 전설이 될 ‘한 방’이 필요했다.
하이데만은 즉시 <슈테른> 경영진을 설득했다. 세기의 특종을 잡아야 한다는 눈먼 욕망에 사로잡힌 경영진은 철저한 검증 과정을 생략한 채, 이 비밀 프로젝트에 거액의 비자금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슈테른 측이 일기장을 구매하기 위해 지불한 금액은 무려 930만 마르크(당시 가치로 약 370만 달러, 현재 가치로 수백억 원에 달하는 거액)였다. 이 과정에서 하이데만은 쿠야우에게 줄 대금을 중간에서 가로채는 방식으로 거액을 착복하며 탐욕을 보였다.
1983년 4월, <슈테른>은 마침내 일기장 발견을 독점 보도하며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발행 부수를 평소보다 200만 부 이상 늘렸고, 미국의 <뉴스위크>, 영국의 <더 타임스> 등 세계적인 언론사들에 막대한 판권 요금을 받고 연재 권리를 팔아넘겼다. 심지어 당대 최고의 역사학자 영국의 휴 트레버-로퍼 같은 전문가들까지도 초기에 “이 일기장은 진짜가 확실하다”며 섣부른 감정을 내려 힘을 실어주었다.
당시 <슈테른>은 검증을 한답시고 전문가들에게 일기장을 보여줬는데, “출처(입수 경로)가 확실하다”는 하이데만의 거짓말을 믿게 만든 뒤 30분만 쓱 보게 하는 등 제대로 된 검증 환경을 주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일기장 속 히틀러는 우리가 알던 광기 어린 독재자가 아니었다. “내 손으로 유대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그 방법이 너무 잔인해서는 안 된다”, “루돌프 헤스가 나 몰래 영국으로 날아가다니, 내 가슴이 찢어진다” 등 지극히 인간적이고 고뇌하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만약 이것이 진품이라면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통째로 바꾸어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축제는 오래가지 않았다. 세계적인 역사학자들과 서독 연방문서보관소, 그리고 연방형사청(BKA) 등 과학수사 전문가들이 본격적으로 검증에 착수하자마자 황당한 허점들이 화수분처럼 터져 나왔다.

가장 결정적인 타격은 종이와 태그에서 나왔다. 서독 법의학팀이 일기장의 종이와 제본용 실, 접착제를 화학 분석한 결과, ‘폴리에스테르’와 ‘형광증백제’ 성분이 검출되었다. 이 물질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50년대 이후에나 상용화된 현대적 소재였다. 즉, 히틀러가 죽고 난 뒤에 만들어진 종이로 일기를 썼다는 뜻이다.
쿠야우가 흉내 낸 히틀러의 필체(독일 전통 고딕 서체인 쥐터린체)는 언뜻 비슷해 보였으나 오류가 가득했다. 특히 히틀러는 1944년 암살 미수 폭탄 테러로 오른손을 심하게 다쳤고, 말년에는 파킨슨병을 앓아 손을 심하게 떨었다. 그러나 일기장 속 글씨는 폭탄 테러 당일에도, 죽기 직전에도 한결같이 정갈하고 막힘이 없었다.
내용의 수준도 형편없었다. 쿠야우는 도서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히틀러의 연설집 내용을 그대로 베껴 썼는데, 연설집에 인쇄된 오타와 잘못된 통계 수치까지 그대로 일기장에 적어 넣는 실수를 저질렀다. 또한 일기장 표지에 히틀러의 이니셜인 ‘AH’를 장식하려다 고딕체 알파벳 모양을 헷갈리는 바람에 표지에 ‘FH’라고 붙여놓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욕망이 낳은 대참사, 그리고 남겨진 교훈
사기극의 실체가 드러나자 전 세계는 경악했고, 찬사는 조롱으로 바뀌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쿠야우는 국경을 넘어 도망쳤다가 결국 자수했고, 기자 하이데만 역시 사기 및 횡령 혐의로 체포되었다. 1985년 서독 법원은 두 사람에게 각각 4년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진상은 코미디에 가까웠다. 쿠야우는 문구점에서 흔히 파는 저렴한 노트에 홍차와 잉크를 쏟아붓고, 방바닥이나 가구 모서리에 마구 문질러 ‘낡은 느낌’을 냈다고 자백했다. 이 삼류 사기꾼의 손장난에 세계 최고를 자부하던 주간지와 베테랑 기자, 엘리트 편집장들이 통째로 놀아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슈테른>의 편집장과 경영진은 전원 사퇴했고, 수십 년간 쌓아 올린 신뢰도는 단 하룻밤 사이에 바닥으로 추락했다. 독자들의 거센 불매운동이 이어졌으며, 회사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함께 ‘돈에 눈이 멀어 검증을 포기한 언론’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기게 되었다.
히틀러 가짜 일기장 사건은 단순한 위조 범죄가 아니다. 그것은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했던 인간의 확증 편향’과 ‘자극적인 특종으로 돈을 벌려 했던 언론의 상업주의’가 결합했을 때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가 나타나는지 보여주는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경고등이다. ‘사실 확인'(Fact-check)이라는 언론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절대적인 의무를 저버린 대가는 실로 잔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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