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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엑소시스트’ 끝나지 않은 저주


1973년 겨울, 미국 뉴욕의 거리는 유난히 차가운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었다. 극장 앞은 이른 아침부터 표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끝이 보이지 않는 줄이 늘어섰고,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들의 얼굴에는 호기심과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윽고 상영관의 불이 꺼지고 짙은 어둠이 깔리자, 스크린 위로 인류가 마주한 가장 오래된 공포의 실체가 드러났다.
윌리엄 프리드킨(38세) 감독이 연출한 영화 ‘엑소시스트’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이는 순간이었다. 이 영화는 악한 귀신에게 몸을 빼앗긴 12세 소녀 레건 테레사 맥닐(린다 블레어 분)과 그 귀신을 쫓아내려는 두 신부의 처절한 싸움을 다루었다.

영화가 시작되자 상영관 내부는 이내 비명과 신음으로 가득 찼다. 관객들은 눈을 가린 채 비명을 질렀고, 일부는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으며, 몇몇은 바닥에 쓰러졌다. 정신을 잃는 사람도 속출했다. 영화관 앞에는 관객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구급차가 줄을 지어 대기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상영관 내부의 일시적인 혼란이 아니었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과 그 이후, 카메라 뒤편에 숨겨진 현실에서 일어난 일들이었다. 영화제작에 참여한 사람들과 그 주변 인물들에게 수수께끼 같은 불행이 잇따랐다. 사람들은 이를 ‘엑소시스트의 저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잿더미가 된 촬영장과 끊이지 않는 사고

영화 제작은 시작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프리드킨 감독은 스크린에 극도의 사실감을 담아내기 위해 가학적일 만큼 가혹한 환경을 조성했다. 그는 악령에 사로잡힌 방의 냉기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세트장 내부 온도를 영하 20도 이하로 낮추고 촬영을 감행했다. 다른 스태프들이 두꺼운 방한복을 입고 일하는 동안, 주인공 리건 역의 어린 린다 블레어(13세)는 얇은 여름용 환자복 한 장만을 입은 채 몸을 떨어야 했다.


물리적인 부상도 속출했다. 리건이 침대 위에서 격렬하게 공중 부양하며 몸을 흔드는 장면을 촬영할 때였다. 몸을 고정하던 특수 와이어 기계 장치의 고정선이 순간적으로 풀리면서, 린다 블레어는 딱딱한 침대 프레임 위로 강하게 추락했다. 그녀는 척추에 심각한 타박상과 손상을 입었다. 영화 속에 삽입된 리건의 고통스러운 비명과 눈물은 연기가 아닌, 어린 소녀가 느낀 실제 고통스런 비명이었다. 이 사고로 인해 그녀는 평생 만성 척추측만증과 심한 통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극중 린다 블레어가 공중 부양하는 장면.

리건의 어머니 역을 맡았던 엘런 버스틴 역시 안전장치의 허술함으로 인해 평생 만성적인 척추 통증을 앓게 되었다. 악령의 힘에 의해 바닥으로 거칠게 밀려나는 장면을 촬영하던 중, 그녀의 허리에 연결된 줄을 당기던 스태프가 지나치게 강한 힘으로 와이어를 낚아챘다.
엘런 버스틴은 미처 방어 자세를 취하지 못하고 꼬리뼈와 척추를 바닥에 그대로 찧었다. 그녀가 극심한 통증으로 촬영 중단을 요구하며 울부짖었으나, 프리드킨 감독은 카메라를 끄지 않고 그 모습을 그대로 필름에 담았다. 엘런 버스틴은 이 사고로 척추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고 수 주 동안 목발에 의지해 생활해야 했다.

사고와 죽음의 그림자는 촬영장 경계선을 넘어 배우들의 가족에게까지 뻗어 나갔다. 고결한 퇴마사 메린 신부 역을 연기한 막스 폰 시도우가 첫 촬영을 시작하려던 무렵, 스웨덴에 있던 그의 친형이 갑작스럽게 사망했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카라스 신부 역의 제이슨 밀러 역시 촬영 도중 자신의 어린 아들이 탄 오토바이가 해변에서 정체불명의 차량과 충돌해 빈사 상태에 빠졌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뛰어가야 했다.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고 그들의 가족에게까지 불행이 이어진 것이다.

이외에도 세트장에서 근무하던 수석 전기 기술자 중 한 명이 작업 도중 공구에 발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고, 세트 제작을 담당하던 목수는 톱에 엄지손가락이 잘려 나가는 끔찍한 부상을 입었다. 제작 기간이 늘어날수록 스태프들 사이에서는 “이 영화를 완성하면 모두가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 섞인 경고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


이 뿐만이 아니다. 1972년 12월의 어느 날 새벽 4시, 미국 뉴욕에 위치한 워너 브라더스 촬영 스튜디오에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영화 촬영이 한창 진행 중이던 세트장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소방관들이 긴급히 출동해 불길을 잡았지만, 주인공 리건의 가족이 거주하는 저택 세트장 전체가 완전히 잿더미로 변해버린 뒤였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생성 이미지.

화재 원인을 조사하던 경찰과 감식반은 불길이 시작된 지점을 찾지 못했다. 전기선에도 문제가 없었고, 인위적인 방화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감식반의 고개를 갸우둥하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리건의 방’ 만큼은 불길이 전혀 닿지 않은 채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은 영화 속에서 악령의 저주와 퇴마 의식이 집중적으로 연출되는 핵심 공간이었다. 나중에 화재 진압과정과 세트 배치상의 위치 등이 영향을 주었다고 판단됐으나 기괴한 소문은 잦아들지 않았다. 이 기묘한 화재로 인해 영화 촬영은 6주 동안 중단되었고,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영화 제작진 사이에서는 촬영장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조명등이 아무런 이유 없이 떨어져 바닥에 깨졌고, 녹음된 소리 안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목소리가 섞여 나오기도 했다.

프리드킨 감독은 촬영장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실제 예수회 신부인 토마스 M. 킹을 세트장으로 초청했다. 신부는 제작진과 배우들의 안전을 기원하며 세트장 전체에 성수를 뿌리고 구마 기도를 올렸다.
그러나 종교적 의식조차 앞으로 다가올 기괴한 사건들을 막아세우지는 못했다. 이것은 스크린 너머의 가상 세계에 갇혀 있어야 할 악마의 형상이 현실 세계로 걸어 나오며 발생한 잔혹사의 서막에 불과했다.

필름 속 죽음이 현실이 되다

영화 ‘엑소시스트’의 저주 중에서 가장 대중을 공포에 떨게 만든 것은 극중에서 사망하는 역할을 맡았던 배우들이 촬영 종료 직후 혹은 개봉 전에 실제로 숨진 사건들이다.

영국 출신의 중견 배우 잭 맥고란은 극중 리건에게 목이 꺾인 채 창밖으로 던져져 살해당하는 연출가 ‘버크 대닝스’ 역을 연기했다. 그는 1973년 2월, 자신의 촬영 분량을 모두 마치고 영화가 개봉하기 불과 열 달 전, 런던을 휩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단순한 감기 증상으로 시작된 병세는 급격한 폐렴 합병증으로 이어졌고, 결국 손을 쓸 시간도 없이 숨을 거두었다. 영화 속 캐릭터의 비참한 결말이 실제 배우의 삶으로 이어진 셈이다.


죽음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극중 카라스 신부의 어머니로 출연해 차가운 병실 침대 위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노모 역할을 맡았던 바실리키 말리아로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평생 연기 경험이 없는 일반인이었으나 뉴욕의 한 식당에서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에게 우연히 캐스팅되어 은막에 데뷔했다. 자신의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가 된 ‘엑소시스트’의 촬영을 마친 후인 1973년 2월, 아흔의 나이에 노환으로 별세했다. 당시 나이를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일로 보일 수 있지만, 극장 개봉을 보지 못한 채 숨져 해석이 분분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생성 이미지.

은막 위에서 영면에 들었던 두 배우가 실제로 숨을 거두자, 촬영장 내부에서는 스크린의 플롯이 현실의 생명을 앗아간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1973년 12월26일,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영화 ‘엑소시스트’가 전 세계 극장가에 개봉했다. 영화는 숱한 논란과 화제를 불러모으며 흥행 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진짜 공포는 영화가 흥행 가도를 달린 이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1977년 9월14일, 미국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주간지 기자인 애디슨 베릴이 잔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경찰의 수사 끝에 체포된 범인은 폴 베이트슨이라는 이름의 방사선사였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과거 뉴욕대 메디컬 센터에서 근무하던 시절, 영화 ‘엑소시스트’에서 주인공 리건이 목에 바늘을 찔러 뇌혈관 조영 검사를 받던 병원 장면에 의사와 간호사를 돕는 실제 방사선사 조연으로 출연했던 인물이다.
베이트슨은 기자 살해 혐의로 체포되었으나, 당대 뉴욕을 공포에 떨게 했던 ‘허드슨강 연쇄 토막살인 사건’의 범인이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을 받기도 했다. 영화 속 메디컬 세트장에서 차가운 눈빛으로 리건을 바라보던 그가 현실에서는 잔혹한 범죄자였던 셈이다.

또 다른 비극은 악령 ‘파주주’의 기괴한 목소리를 신들린 듯 연기해 찬사를 받았던 중견 여배우 메르세데스 맥캠브리지의 가정에서 일어났다. 영화가 개봉하고 14년이 흐른 뒤에도 저주의 메아리는 뜻밖의 곳에서 터져 나왔다.
1987년 11월, 그녀의 아들인 존 마크 러츠는 금융 사기 사건에 휘말려 파산 위기에 직면하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는 자신의 아내와 두 딸을 권총으로 차례차례 쏘아 살해한 뒤, 자신 역시 머리에 총을 쏘아 목숨을 끊었다. 악마의 목소리를 빌려 세상을 뒤흔들었던 어머니의 유산 뒤에는, 일가족 참살이라는 잔혹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공 소녀 역할을 맡았던 린다 블레어의 삶도 순탄하지 않았다. 그녀는 영화가 큰 성공을 거둔 이후, 악마를 숭배하는 무리들로부터 수많은 협박 편지를 받았다. 방화와 살해 협박에 시달린 그녀는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숨어 지내야 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정신적 압박을 받은 그녀는 이후 다른 작품에서 큰 빛을 보지 못했고, 오랜 시간 정신적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영화 ‘엑소시스트’ 주요 장면 모음.

우연의 일치인가, 초자연적 경고인가

오늘날 과학자와 영화 역사학자들은 ‘엑소시스트의 저주’를 두고 철저히 계산된 마케팅과 열악한 환경이 만들어낸 우연의 일치라고 분석한다.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극한의 세트장 환경, 감독의 폭압적인 촬영 방식, 1년이 넘는 장기 촬영 기간 동안 수백 명의 스태프가 동원되면서 사고 발생 확률이 자연스럽게 높아졌다는 해석이다. 또한 고령의 배우가 사망하거나 가족이 사고를 당하는 일은 어느 거대 제작 영화에서나 통계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범주 내에 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 모든 사건을 단순한 통계와 확률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들어간 비극의 연쇄가 너무나 정교하다. 악령의 방만을 비껴간 화재, 스크린 속 배역의 죽음과 실제 사망의 일치, 세트장 안팎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신체적 파괴와 살인 사건까지.
필름에 담긴 고대 악마의 저주를 단순한 가상으로만 여겼던 이들에게, 현실이 던진 경고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런면에서 영화 제작 기간과 개봉 직후까지 배우와 스태프, 그 가족을 포함해 총 9명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통계는 서늘하다.


영화 ‘엑소시스트’를 둘러싼 미스터리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은막의 어둠 속에 박제되어 있다. 그것이 인간의 광기가 만들어낸 우연의 연속이었는지, 혹은 인간이 감히 건드려서는 안 될 미지의 존재가 보낸 실존적 경고였는지는 여전히 스크린을 바라보는 독자와 관객들의 몫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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