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화제

두 통에 ‘5500만원’ 역대 최고가 기록한 멜론


일본 북부 홋카이도의 작은 마을 유바리시에서 자란 멜론 두 개(통)가 도쿄의 한 아파트 전세 보증금과 맞먹는 가격에 팔렸다.

2026년 5월22일 아침, 홋카이도 삿포로시 중앙도매시장은 이른 새벽부터 모여든 상인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올해 처음으로 수확한 ‘유바리 멜론’의 첫 경매가 열리는 날이었다. 수많은 눈길이 경매사를 향한 가운데, 장내를 술렁이게 만든 낙찰가가 울려 퍼졌다. 단 두 개의 멜론이 기록한 가격은 무려 580만 엔, 우리 돈으로 약 5500만 원에 달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에 세워졌던 기존 최고 기록인 500만 엔을 껑충 뛰어넘은 역대 가장 높은 금액이다.

이 엄청난 가격의 주인공을 차지한 이는 게이오 전철 산하의 식품 슈퍼마켓인 ‘게이오 스토어'(도쿄도 다마시)의 의뢰를 받은 도매업체 ‘후타미 청과(홋카이도 구시로시)였다. 경매가 끝난 후, 이 멜론은 곧바로 비행기에 실려 당일 저녁 도쿄 다마시에 위치한 게이오 스토어 사쿠라가오카점에 전시됐다.

이날 경매를 현장에서 지켜본 게이오 스토어의 쓰쿠다 료지(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사실 회사에서 준비한 예산을 조금 넘어서는 금액이어서 가슴을 졸였다. 하지만 유바리 멜론의 가치를 생각하면 낙찰받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매장을 찾는 손님들을 위해 며칠간 정성스럽게 전시한 뒤, 방문객들이 직접 맛을 볼 수 있도록 시식 행사를 열어 나눌 예정”이라고 말했다.


왜 멜론 두 개가 자동차 한 대 값일까

외국인들의 눈에는 과일 두 개에 수천만 원에 거래되는 모습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기이한 풍경으로 보일 수 있다. 여기에는 일본 특유의 독특한 시장 문화와 역사적 배경이 숨어 있다.

일본의 농산물과 수산물 도매시장에서는 그해 처음으로 수확해 출하한 상품을 ‘하츠모노’라고 부르며 매우 귀하게 여긴다. 첫 수확물을 먹으면 수명이 늘어나고 복이 온다는 오랜 민간 신앙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첫 경매에서 매겨지는 턱없이 높은 가격은 순수한 과일의 맛이나 크기에 대한 대가가 아니다. 한 해 동안 고생할 농민들을 격려하고, 시장의 활기를 불어넣으며, 자사의 사업 번창을 기원하는 일종의 ‘축하금’ 성격이 강하다.

낙찰을 받은 기업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홍보 수단이 없다. ‘역대 최고가로 멜론을 산 기업’이라는 소식이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전국으로 보도되면서 얻는 광고 효과는 수억 원의 마케팅 비용을 쓰는 것보다 훨씬 크다. 결국 기업들은 과일이 아니라 ‘화제성’을 사는 셈이다.

물론 유바리 멜론 자체의 품질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 나무에서 오직 가장 튼튼한 열매 한두 개만 남기고 모두 잘라내 영양분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키운다. 농민들은 멜론 표면에 아름다운 그물망 무늬가 균일하게 생기도록 매일 손으로 닦아주며, 햇빛을 골고루 받게 하려고 매일 위치를 바꿔준다.

유바리 멜론을 비롯한 멜론류가 전 세계인에게 귀한 대접을 받으며 큰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특유의 고급스러운 맛과 향 덕분이다. 부드러운 과육을 한 입 베어 물면 꿀을 머금은 듯한 즙이 입안 가득 퍼지는데, 이는 식사의 품격을 높여주는 최고의 디저트로 꼽힌다.


특히 유바리 멜론처럼 속이 주황색을 띠는 멜론은 맛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이로운 영양소가 가득하다.
주황빛 과육의 비밀은 ‘베타카로틴’이라는 성분이다. 이 성분은 몸속에서 비타민 A로 바뀌어 시력을 보호하고 안구 건조증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몸에 해로운 활성산소를 없애주는 항산화 작용이 뛰어나 피부 노화를 막고 면역력을 높여준다.

멜론에는 수박의 세 배가 넘는 ‘칼륨’이 들어있다. 칼륨은 몸 안의 짠 성분(나트륨)을 밖으로 내보내 주어 혈압을 안정시키고 붓기를 빼는 데 탁월하다. 여기에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신경을 안정시키는 천연 물질(GABA)과 피로 해소에 좋은 비타민 C가 풍부해, 지친 몸에 활력을 불어넣는 천연 보약 역할도 톡톡히 한다.

가뭄을 이겨내고 피어난 달콤한 결실

올해 유바리 멜론을 키워낸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유바리시 농업협동조합의 재배 담당자인 사토 가즈키(남·44)는 올해 초를 돌아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지난 2월과 3월에 예년보다 눈이 훨씬 적게 내렸고, 날씨가 무척 건조했다”며 “멜론은 초기에 적절한 수분과 온도가 유지되어야 해서 밤낮으로 온실을 드나들며 상태를 살펴야 했다. 물을 주는 시기를 맞추느라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았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 유바리시는 과거 방만한 재정 운영으로 입었던 큰 빚을 20년 만에 완전히 모두 갚아내는 뜻깊은 해를 맞이했다. 도시 전체가 오랜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시점에 터져 나온 유바리 멜론의 역대 최고가 경신 소식은, 현지 주민들에게 단순한 경매 기록 그 이상의 기쁨으로 다가왔다.

새벽녘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진 경매사의 거친 목소리와 상인들의 환호성. 그 소리는 오랜 세월 동안 땅을 일궈온 이들의 땀방울과, 그 노력을 귀하게 여겨줄 줄 아는 이들의 마음이 만나 만들어낸 아름다운 화음이었다.


백화점 진열대 위에서 정갈하게 포장된 채 누군가의 소중한 마음을 전할 준비를 하는 주황빛 과육 속에는, 단지 달콤함뿐만 아니라 내일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따뜻한 염원이 함께 녹아 흐르고 있다.■

<저작권자 ⓒ정락인의 사건추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