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귀신 출몰하는 일본 ‘이코마 터널’
1914년 4월18일 일본 오사카부 히가시오사카시와 나라현 이코마시를 연결하는 ‘이코마 터널’이 개통된다.
일본의 건설회사 오바야시구미에서 준공한 철도 터널로 총 연장은 3천388m다.
이곳은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의 한 맺힌 피와 땀이 서려 있다. 터널이 뚫린 이코마산은 지반이 약하고 물이 많아 터널 공사가 불가능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와 건설회사는 공사를 강행했다.
공사 중 크고 작은 사고가 불을 보듯 뻔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던 건설회사는 공사에 투입할 인부들을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들로 채웠다. 더 많은 조선인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돈을 많이 준다”고 현혹했다. 이 말에 속은 많은 조선인들이 몰려들었다.
이렇게 조선인들은 죽음의 터널 공사에 내몰렸다.
1911년 6월, 공사가 시작되자 건설회사는 악마의 본성을 드러냈다. 이들은 터널 입구를 봉쇄해 안에 있는 인부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가두는 등 악랄하게 노동력을 착취했다.
식사는 하루에 한 끼만 제공했다.

예견된 대로 공사 시작부터 잦은 사고가 이어졌다. 천장과 암벽이 무너지거나 낙석사고로 죽거나 다쳤고, 1913년 1월26일에는 낙반 사고가 발생해 152명이 생매장됐다.
사고가 나도 부상자들을 치료하거나 매몰자들을 구출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대로 방치하거나 아예 터널에 매장해 버렸다.
반항하는 인부는 무차별 구타한 후 인근 호수에 빠트려 죽였다. 이렇듯 폭행과 가혹행위, 살인이 일상적으로 벌어졌다. ‘사람의 피가 많이 섞여야 공사가 성공한다’는 미신을 믿던 일본인 감독관들은 인부들을 잔인하게 죽였다.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터널은 조선인들의 피를 먹으며 33개월 만에 완공됐다.

그런데 터널에서 잦은 사고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1946년 터널을 통과하던 열차에서 화재가 발생해 28명이 사망하고 7명이 부상당했다. 1947년 8월에는 오사카에서 나라로 향하던 열차가 폭발해 40명이 부상당했다.
1948년에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열차가 오사카 방면 내리막을 폭주하듯이 달려 다음 역에 정차 중이던 열차와 충돌해 49명이 사망하고 289명이 부상하는 대형참사가 발생했다.

사고가 끊이지 않자 억울하게 죽은 조선인들의 저주가 내렸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실제 ‘한복에 상투를 튼’ 조선인 유령을 봤다는 목격담도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통곡 소리와 비명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원인모를 참사가 이어지고 사람들의 불안감이 커지자 일본 정부는 1964년 터널을 폐쇄했다.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시키기 위해 아예 입구를 봉쇄해 버렸다. 터널 개통 50년 만의 일이다.

이렇게 터널 안에서 벌어졌던 학살의 기억이 묻혀지는 듯했다. 그러나 1992년에 일본 작가 스미이가 <다리가 없는 강>을 펴내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작가는 인근에 살았던 사람 등을 취재해 당시 터널 공사 중 일어났던 야만의 사건들을 책에 담았다.
일본 정부는 “조선인을 학대했다”는 사실을 전면 부인했지만 1912년 9월1일자 <아사히 신문>에 “조선인 노동자가 공사 현장에서 도주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것은 당시 조선인이 감시의 대상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코마 터널이 유령터널이 되기까지의 비극은 영화 <박치기> 속에 한 조선인의 슬픈 대사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코마 터널을 뚫은 게 누구였는지 아니….”
현재 터널 인근에는 조선인들이 세운 사찰(보덕사)이 있다. 사찰 경내에는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가 있어 당시 공사에 참여했다 희생당한 조선인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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