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 보키토’가 담장을 뛰어 넘은 진짜 이유
네덜란드 로테르담 중심가에 자리 잡은 ‘블라이도르프 동물원'(Blijdorp Zoo)은 150년이 넘는 깊은 역사를 지닌 유럽의 대표적인 명소다. 이곳은 단순히 동물을 가두어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동물이 살던 자연환경을 그대로 재현해 세계적으로 큰 찬사를 받던 곳이었다.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과 쇠창살을 없애는 대신, 넓은 도랑을 파고 물을 채워 관람객과 동물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사람들은 자연 속을 거니는 듯한 동물들을 바라보며 평화로움을 만끽했고, 동물원 측은 이 자연 친화적인 설계가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가장 안전하고 행복한 울타리가 될 것이라 확신했다.
4미터의 물길을 뛰어서 탈출한 대장 고릴라
2007년 5월18일, 동물원은 휴일을 맞아 나들이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평화롭던 오후의 공기를 깬 것은 한순간의 날카로운 비명이었다. 몸무게 180킬로그램에 달하는 거대한 수컷 고릴라 ‘보키토’가 관람객들이 걸어 다니는 공원 한복판으로 뛰어든 것이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야생동물의 탈출 극에 동물원은 순식간에 공포로 뒤덮였다.
보키토는 당시 11살로, 고릴라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인 ‘실버백'(은빛등 고릴라)이었다. 고릴라를 가두어 둔 우리 앞에는 너비 4미터가 넘는 깊은 도랑이 있었다. 고릴라는 본래 물을 극도로 싫어하고 수영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동물원이 믿고 있던 가장 완벽한 방어벽이 바로 이 물길이었다.
그러나 보키토는 그 믿음을 비웃듯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물길을 건너 도랑 너머의 콘크리트 벽을 기어올랐다. 사슬이 없는 자연 친화적 공간을 만들겠다는 인간의 설계가 고릴라의 야성 앞에서 무력해지는 순간이었다.

우리를 벗어난 보키토는 곧장 한 여성을 향해 돌진했다. 그는 여성을 붙잡고 바닥에 끌고 다니며 거칠게 공격했다. 뒤이어 주변에 있던 다른 관람객 3명도 대피하는 과정에서 다쳤다. 겁에 질린 사람들은 근처 식당으로 뛰쳐 들어가 문을 잠그고 탁자와 의자로 바리케이드를 쳤다. 소동은 보키토가 동물원 건물 안으로 들어간 뒤, 추격한 직원들이 쏜 마취 화살을 여러 발 맞고 쓰러져서야 끝이 났다.
당시 언론은 고릴라가 사람을 공격했으나 다행히 가벼운 상처에 그쳤다고 앞다투어 보도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밝혀진 사건의 실상은 단순한 소동 그 이상이었다. 초기 발표와 달리 피해 여성의 상태는 매우 심각했다. 손과 팔의 뼈가 부러졌고, 온몸에 100군데가 넘는 물린 상처를 입어 중환자실에서 오랜 기간 치료를 받아야 했다.
친근함의 미소가 도발의 신호로
보키토는 왜 수많은 사람 중 유독 그 여성만을 표적으로 삼아 공격했을까. 사건의 진짜 원인은 두 존재가 오랜 시간 나누었던 ‘시선’에 있었다.
피해 여성은 일주일에 네 번 이상 동물원을 찾을 정도로 보키토를 아끼던 열성 팬이었다. 그녀는 평소 보키토의 우리 앞을 찾아가 유리창 너머로 눈을 맞추고 환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인간의 세상에서 눈을 맞추며 웃는 얼굴은 호감과 친근함의 표시 공식이다. 여성을 알고 있던 동물원 직원들은 그녀가 보키토와 ‘특별한 교감’을 나누고 있다고 믿기까지 했다.
하지만 고릴라의 세상에서 정면으로 눈을 똑바로 마주치는 행위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우두머리의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싸움을 걸겠다는 강한 도발의 신호다. 보키토에게 여성의 지속적인 시선과 미소는 친절이 아니라, 매일 자신을 찾아와 경고를 날리는 공격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사건 당일 아침에도 일부 관람객이 보키토를 향해 돌을 던져 보키토는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가뜩이나 예민해진 상황에서 늘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던 여성이 눈에 들어오자, 보키토는 억눌렀던 야성을 폭발시키며 담장을 뛰어넘었다. 인간의 언어와 동물의 언어가 정반대로 엇갈린 결과가 빚은 비극이었다.

사건 이후 네덜란드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동물원 측은 우리 주변의 담장을 훨씬 높이고 안전시설을 대폭 강화했다. 한 건강보험회사는 동물원을 찾는 관람객들을 위해 이색적인 종이 안경을 나누어 주기도 했다. 안경의 표면에는 고릴라의 시선을 피할 수 있도록 눈동자가 옆을 향해 돌아가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른바 ‘보키토 안경’이었다. 인간이 고릴라를 바라보더라도, 고릴라 입장에서는 자신을 쳐다보지 않는 것처럼 느끼게 하려는 고육지책이었다.
병원에서 큰 수술을 받고 회복한 피해 여성은 시간이 흐른 뒤 언론을 통해 한 가지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여전히 보키토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자신이 고릴라의 본성을 깊이 이해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며, 보키토가 인간의 세상에서 겪었을 스트레스를 먼저 걱정했다.
보키토는 그 뒤로도 오랜 시간 로테르담 동물원의 대장 고릴라로 살아가다, 2023년 4월에 2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 탈출 사건은 인간에게 묻고 있다. 우리는 동물원이라는 인공적인 공간 안에서 그들을 있는 그대로의 생명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아니면 인간의 시선으로만 재단하고 있는가.
좁은 콘크리트 세상에 갇힌 채 인간의 미소를 오해해야 했던 고릴라와, 그 고릴라를 진심으로 사랑했으나 상처를 입어야 했던 인간의 이야기는, 인간과 자연이 맺어야 할 올바른 거리가 얼마만큼인지 오늘날까지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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