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의자 타고 4900m 상공으로 날아 간 트럭 운전사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풍선을 가득 타고 하늘을 나는 상상을 한다. 대부분은 어른이 되면서 이를 철없는 공상으로 묻어두지만, 1982년 미국에서 이 허황된 꿈을 진짜 현실로 옮긴 사내의 이야기가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로스앤젤레스의 평범한 트럭 운전사였던 서른세 살의 청년 래리 월터스(Larry Walters)가 그 주인공이다. 그의 비행은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 인간의 열망과 무모함이 결합했을 때 어떤 기상천외한 결과가 벌어지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
꿈을 빼앗긴 청년, 마당 의자에서 길을 찾다
래리 월터스는 원래 비행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시력이 너무 나빠 공군 조종사가 될 수 없었고, 트럭을 몰며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늘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집 앞마당에 흔히 놓아두는 알루미늄 재질의 안락의자를 보며 기발한 계획을 세운다. 커다란 풍선에 헬륨가스를 채워 의자에 매달면 하늘을 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군용 가구점에서 산 3만 원짜리 안락의자에 지름 2.4미터(m)짜리 대형 기상 관측용 풍선 45개를 단단히 묶었다. 비행을 제어할 장치로는 고작 모래주머니 몇 개와 공기총, 무전기, 그리고 갈증을 달랠 맥주와 샌드위치가 전부였다.
그의 계산으로는 지상에서 약 9미터(m) 정도만 부드럽게 떠올라, 이웃집 지붕을 구경하며 맥주를 마신 뒤 공기총으로 풍선을 하나씩 터뜨려 내려올 예정이었다. 1982년 7월2일, 친구들이 의자를 붙잡고 있던 밧줄을 잘라내면서 이 기묘한 비행은 시작된다.

그러나 과학적 계산이 빠진 열정은 곧바로 위기로 이어졌다. 밧줄이 끊어지자마자 안락의자는 래리의 예상과 달리 로켓처럼 수직으로 솟구쳤다. 풍선 45개의 상승력은 상상을 초월했고, 의자는 순식간에 고도 4900미터(m)까지 치솟았다. 이 높이는 여객기가 지나다니는 상공으로,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산소가 부족해지는 위험한 구역이었다.
얇은 옷을 입고 있던 래리는 온몸이 얼어붙는 추위와 공포에 휩싸였다. 너무 높이 올라간 탓에 혹시라도 풍선을 터뜨렸다가 의자째 추락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이 황당한 광경을 먼저 목격한 것은 근처를 지나던 여객기 조종사들이었다. TWA 항공과 웨스턴 항공의 조종사들은 “안락의자에 앉아 총을 든 남자가 비행기 옆을 떠다니고 있다”며 믿기 힘든 내용을 관제탑에 다급히 타전했다. 관제탑 역시 처음에는 장난으로 여겼으나, 레이더에 정체불명의 물체가 포착되면서 공항 일대는 발칵 뒤집혔다.
고압 전선에 걸린 비행, 그리고 세상과의 조우
약 45분 동안 공포 속에서 표류하던 래리는 이대로 두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에 겨우 평정을 되찾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공기총을 들어 머리 위의 풍선들을 하나씩 쏘아 터뜨리기 시작했다.
서서히 고도가 낮아지던 중, 실수로 공기총을 아래로 떨어뜨리는 아찔한 사고가 일어났다. 더 이상 풍선을 터뜨릴 수 없게 된 의자는 바람을 타고 흐르다 롱비치 인근 주택가의 고압 전선에 걸리며 멈춰 섰다.

이 사고로 주택가 일대의 전기가 약 20분간 끊기는 소동이 일어났지만, 래리는 다행히 다친 곳 없이 지상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대기하고 있던 경찰은 그가 땅에 발을 디디자마자 항공법 위반 혐의로 수갑을 채웠다.
미 연방항공청은 통제 공역을 허가 없이 비행한 죄 등을 물어 그에게 우리 돈으로 약 500만 원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체포되는 순간에도 그는 후회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현장에 몰려든 기자가 왜 이런 위험한 행동을 했냐고 묻자, 래리는 담담하게 답했다.
“사람이 마냥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이 사건은 전 세계 언론을 통해 ‘론체어 래리'(Lawnchair Larry)라는 이름으로 대대적으로 보도되며 90년대 내내 황당한 일화로 회자되었다. 많은 이들이 그의 무모함을 비웃었지만, 동시에 꿈을 실천한 기괴한 영웅으로 대접하기도 했다.
여기에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가 존재한다. 비행이 끝난 후, 래리가 사용했던 삼만 원짜리 알루미늄 안락의자는 뜻밖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그는 자신을 붙잡아 준 이 의자를 동네 아이에게 기념으로 선물했는데, 훗날 이 의자의 역사적 가치를 알아본 국립항공우주박물관이 이를 기증받아 보존하게 된 것이다.
또한 그는 이 사건으로 유명세를 타며 텔레비전 토크쇼에 출연하고 광고 모델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매년 황당하고 어리석은 행동으로 사망하거나 불임이 된 사람에게 주는 ‘다윈상’의 1982년도 수상자로 선정되는 묘한 명예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의 뜨거운 관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트럭 운전사를 그만두고 강연가로 활동하며 새로운 삶을 꿈꿨던 래리는, 대중의 기억에서 점차 잊히면서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환경 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하거나 산림청에서 일하며 마음의 평온을 찾으려 애썼지만, 평생을 따라다닌 ‘풍선 조종사’라는 꼬리표와 현실의 무게를 이겨내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그는 비행을 마친 지 11년이 지난 1993년, 마흔네 살의 나이로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멈추지 않는 풍선, 영원이 된 비행
래리 월터스의 삶은 짧고 굴곡졌지만, 그가 남긴 안락의자 비행은 수많은 창작자에게 영감을 주었다. 풍선을 매달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집을 그린 애니메이션 영화 ‘업'(Up)의 모티브가 되었으며, 수많은 이들이 그의 방식을 모방해 새로운 비행 기록에 도전하기도 했다.
그의 행동은 분명 위험했고 법을 어긴 무모한 짓이었다. 그러나 눈이 나쁘다는 이유로 하늘을 포기해야 했던 한 청년이, 마당의 의자에 풍선을 묶어 기어코 구름 위로 올라갔던 그 140분은 단순한 소동 이상의 울림을 준다.
어쩌면 그는 차가운 높은 하늘에서 바람을 맞이하던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그 어떤 조종사보다 자유롭고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가 세상에 던진 말은 지금도 마음속에 머물러 있다. 사람이 마냥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는 없다는 그 당연하고도 무거운 고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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