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추락 참사 막은 고래 꼬리 조각상
현실은 때로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정교하게 짜인 시나리오조차 흉내 내지 못할 기적 같은 우연이 일상의 공간에서 실현되기도 한다. 만약 누군가 “공중에 매달린 열차를 고래가 꼬리로 받아내 사람을 구했다”고 말한다면, 대부분의 이들은 이를 허황된 동화나 영화 속 한 장면으로 치부할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이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차가운 철로와 단단한 콘크리트 위에서 실재하는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2020년 11월2일 새벽 0시30분, 네덜란드 로테르담 인근의 작은 도시 스파이크니세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마지막 운행을 마친 메트로(지하철) 열차가 종착역인 ‘드 애커스역’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승객들은 모두 내렸고, 열차 안에는 기관사 한 명만 남아 있었다. 열차는 선로 끝에 있는 회차 구간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고요했던 역에 날카로운 굉음이 울려 퍼졌다.
멈추지 못한 열차, 선로를 뚫고 날아가다
당시 현장에는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철로 위는 기름때와 빗물이 섞여 무척 미끄러운 상태였다. 제동 장치를 조작했지만, 수십 톤(t)의 무게를 가진 열차는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미끄러졌다. 철로 끝에 설치된 완충 벽(버퍼)을 들이받은 열차는 멈추지 않았다. 콘크리트 장벽을 깨부순 열차 앞부분은 그대로 선로 밖 허공으로 튀어나갔다.

당시 사고가 난 선로는 지상에서 약 10미터(m) 높이에 위치한 고가 구조물이었다. 선로 바로 아래는 자전거 도로와 보행자 산책로, 그리고 작은 수로가 흐르는 곳이었다. 만약 열차가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했다면, 무게 중심이 쏠린 앞 칸이 수직으로 떨어지면서 기관사는 목숨을 잃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열차 파편이 주변 주택가나 도로를 덮쳤다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콘크리트 벽을 뚫고 나온 열차는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짙은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기차 앞부분을 받쳐 들었다. 그것은 철로 끝자락, 수로 한가운데에 설치되어 있던 거대한 고래 지느러미 모양의 조각상이었다. 두 마리의 고래가 물속에서 꼬리를 치며 하늘로 솟구치는 형상을 한 이 조각상 중 하나의 꼬리 끝부분에 열차 바닥이 정확히 걸려 멈췄다.
날이 밝으면서 드러난 현장의 모습은 기묘했다. 마치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은색 지하철 한 칸이 파란색 고래 꼬리 위에 사뿐히 얹혀 있었다.
현지 구조대와 경찰이 가장 먼저 놀란 것은 기관사의 상태였다. 지상 10미터(m) 높이에 대롱대롱 매달린 전동차 안에서 기관사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상태로 구조됐다. 그는 스스로 조종실 문을 열고 나와 고래 꼬리와 맞닿은 열차 틈새를 통해 안전한 곳으로 걸어 나왔다.

이 사건이 전 세계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 조각상은 건축가이자 시각 예술가인 마르텐 스트루이스가 2002년에 세운 플라스틱(강화섬유 플라스틱) 재질의 작품이었다.
놀랍게도 이 조각상의 공식 작품 명칭은 ‘고래 꼬리에 의해 구해지다'(Saved by the Whale’s Tail)였다. 작가가 18년 전에 붙인 이름이 2020년 가을날 새벽, 문자 그대로 실현된 것이다.
어떻게 플라스틱 조각상이 수십 톤(t)에 달하는 지하철의 무게를 버텨낼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몇 가지 기술적 배경과 비하인드 스토리가 숨어 있다.
작가는 조각상을 만들 때, 이 지역이 바닷가와 가까워 강한 바람이 자주 분다는 점을 고려했다. 그는 강풍에 조각상이 쓰러지거나 부러지지 않도록 내부에 두꺼운 철골 구조를 넣고, 겉면을 단단한 강화 플라스틱으로 감싸 무게 중심을 아래로 두었다. 이 설계가 결과적으로 열차의 하중을 견뎌내는 기둥 역할을 했다.
사고 당일 아침,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작가는 기쁨과 놀라움을 동시에 표현했다. 그는 “처음 사진을 보았을 때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합성 사진인 줄 알았다”며 “내가 만든 플라스틱 작품이 기차 무게를 견뎠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지만, 내 작품이 한 인간의 목숨을 구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조각상은 제 역할을 다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네덜란드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확산을 막기 위해 엄격한 이동 제한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하지만 이 기적 같은 풍경을 직접 보기 위해 수백 명의 인근 주민들이 산책로로 쏟아져 나왔다. 현지 경찰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예술과 안전, 그리고 삶의 경계선에서
사고 이튿날인 11월3일, 현장에서는 대대적인 인양 작업이 벌어졌다. 자칫 잘못 건드리면 열차가 조각상에서 미끄러져 추락할 위험이 있었기에, 당국은 대형 크레인 2대를 동원해 매우 조심스럽게 작업을 진행했다. 먼저 열차를 와이어로 고정한 뒤, 조각상에 가해지는 무게를 분산시키며 천천히 들어 올렸다. 조각상은 열차가 완전히 떠날 때까지 묵묵히 그 무게를 짊어졌다.
도시의 미관을 위해 세워진 예술품이 도시의 시스템 오류를 온몸으로 막아낸 이 사건은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기술은 완벽하지 않으며, 언제든 예상치 못한 틈새를 보일 수 있다. 그리고 그 틈새를 메운 것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비기능적이라고 여겨졌던 조각상이었다.
인양 작업이 끝난 후, 고래 꼬리 조각상 표면에는 열차와 부딪히며 생긴 검은 긁힘 자국과 약간의 균열이 흉터처럼 남았다. 하지만 시 당국과 주민들은 이 상처를 지우지 않고 그대로 두기로 했다.
매일 아침 전철을 타고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은 창밖으로 보이는 저 푸른 꼬리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의 풍경 속에, 어쩌면 보이지 않는 수많은 수호신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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