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을 타고 왔다는 시간 여행자의 정체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흐르는 시간을 거스르는 상상을 해왔다. 지나간 과거를 바꾸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엿보고 싶다는 열망은 인간의 가장 깊은 호기심 중 하나다. 타임머신을 타고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시간 여행의 이야기가 소설과 영화의 단골 소재로 사랑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지금 이 순간, 실제로 미래에서 온 사람이 내 눈앞에 나타나 말을 건넨다면 세상은 어떻게 뒤집힐까. 이 허무맹랑해 보이는 상상이 현실의 스크린 위로 완벽하게 구현되었던 사건이 있었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한 기쁨이 채 가시지 않았던 2000년 11월2일, 시간 여행을 다루는 미국의 한 인터넷 포럼 게시판에 기묘한 글이 올라왔다. 자신을 2036년에서 온 미국 군인이라고 소개한 이 남자의 이름은 존 티토(John Titor)였다.
그는 군대의 명령을 받고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왔다고 주장했다. 처음에는 흔한 장난으로 여겨졌던 그의 글은 시간이 갈수록 전 세계 누리꾼들의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그가 남긴 설명이 단순한 상상을 넘어 지나치게 구체적이었기 때문이다.
빗나간 예언과 맞아떨어진 현실의 경계
존 티토가 밝힌 자신의 원래 목적지는 1975년이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미래인 2036년의 세계는 컴퓨터 시스템의 치명적인 오류로 인해 사회적 기반이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는 우리가 흔히 아는 2038년 문제(컴퓨터가 시간을 계산할 때 일어나는 연도 인식 오류)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 IBM 사가 만든 초기형 컴퓨터인 ‘IBM 5100’ 모델이 꼭 필요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이 기종에는 후대의 컴퓨터 언어를 해독할 수 있는 비밀 기능이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존 티토는 1975년에서 임무를 완수한 뒤, 사적인 이유로 잠시 2000년에 들렀다고 말했다. 자신이 태어난 해의 부모님을 만나고,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직접 보기 위해서였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타임머신의 조종 장치 사진과 설계 도면, 그리고 60쪽이 넘는 상세한 설명서를 인터넷에 전격 공개했다.
사진 속 장치는 일반적인 공상과학 영화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군용 가방과 복잡한 배선, 검은색 상자로 이루어진 다소 투박한 형태였다. 그는 이 장치가 약 220킬로그램(kg)의 무게를 가졌으며, 자동차 뒷좌석에 싣고 다닐 수 있는 크기라고 설명했다.

존 티토가 인터넷 공간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단순히 타임머신 사진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살던 미래의 역사라며 몇 가지 큰 사건들을 예언했다.
미국이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로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다. 또한 광우병이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그의 경고 역시 현실로 나타나면서 사람들은 전율했다.
하지만 그의 모든 말이 맞았던 것은 아니다. 2004년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을 끝으로 세계적인 갈등 때문에 더 이상 올림픽이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2005년부터 미국 내부에서 선거와 자유를 둘러싼 심각한 내전이 일어나 나라가 5개로 갈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급기야 2015년에는 러시아가 미국의 주요 도시를 핵무기로 공격하면서 제3차 세계대전이 터져 전 세계에서 30억 명에 달하는 이들이 목숨을 잃을 것이라는 충격적인 내용을 전했다.
하지만 그가 예언한 해가 찾아왔을 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올림픽은 계속 열렸고 미국 내전이나 핵전쟁도 발발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비판을 쏟아냈지만, 존 티토는 이미 교묘한 방어막을 쳐 두었다.
그는 양자역학의 다세계 해석, 즉 ‘평행우주’ 이론을 들었다. 시간여행자가 과거로 돌아와 어떤 행동을 하거나 미래를 말하는 순간, 그 세계는 원래의 미래와 조금씩 어긋나며 새로운 갈래의 시간선으로 갈라진다는 주장이었다. 자신이 온 미래와 우리가 사는 현재는 약 2.5퍼센트(%)의 오차를 가진 다른 우주이므로, 미래가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였다.
베일 뒤에 숨겨진 이야기, 변호사와 공학자의 그림자
2001년 3월21일, 존 티토는 “가족들이 있는 나의 시간대로 돌아간다”라는 마지막 글을 남기고 인터넷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가 떠난 뒤 전 세계의 수많은 과학자와 수사관들이 그의 진짜 정체를 밝히기 위해 추적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세상에 드러났다.
조사 결과, 존 티토가 사용했던 인터넷 주소(IP)의 발신지가 미국의 플로리다주 지역으로 좁혀졌다. 그리고 그곳에는 존 티토의 글과 저작권을 관리하는 ‘존 티토 재단’이 설립되어 있었다. 재단의 대표는 ‘래리 하버’라는 이름의 법률 변호사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의 형제인 ‘리처드 하버’가 컴퓨터 정보 공학 전문가라는 점이었다. 존 티토가 언급했던 ‘IBM 5100’ 컴퓨터의 숨겨진 기능은 당시 일반인들은 전혀 알 수 없었고, 오직 해당 기계를 직접 개발한 엔지니어들만 아는 비밀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컴퓨터 전문가와 변호사 형제가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정교한 인터넷 자작극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타임머신 사진 속에 등장했던 부품들 역시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전자 장치와 가공된 플라스틱 통에 불과했다는 분석이 잇따랐다.
존 티토 사건은 과학과 이성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새로운 전설(?)을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비록 그의 예언은 틀렸고 정체는 사기극에 가까운 것으로 밝혀졌지만, 그가 남긴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가 제시한 촘촘한 세계관과 평행우주 설정은 훗날 수많은 소설과 만화,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되며 대중문화에 깊은 영감을 주었다.
그가 사라진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은 문득 큰 사회적 혼란이나 기이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의 이름을 떠올린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가 진짜 미래에서 온 군인이기를 바랐던 것이 아니라,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지루한 일상 속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우주와 미래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낭만을 믿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존 티토가 말한 2036년이 다가올 때, 우리는 과연 어떤 미래를 맞이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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