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사건

헬기 추락으로 사망한 현역 장군들


국군 창군이래 헬기 추락으로 순직한 현역 장군은 세 명이다.

1984년 7월 김홍한 육군 제2군사령관(대장)은 헬기를 타고 대간첩작전준비태세 점검에 나섰다가 갑작스런 기상악화로 상공에서 추락했다.

이 사고로 탑승자 7명 중 김 대장을 비롯해 5명이 사망하고 2명만이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1992년 2월 육군 제7군단장이던 이현부 중장은 경기도 장호원에서 헬기에 탑승해 포항으로 가다가 뒷날개가 떨어져 나가면서 추락했다. 탑승자 10명 중 이 중장과 참모진 등 8명이 사망하고, 2명만이 살아남았다.

위기의 순간에도 이 중장은 “부락을 피하라”고 지시했고, 조종사는 끝까지 조종간을 놓치 않았다.

군 참모총장이 헬기사고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1993년 5월 공군 제22대 참모총장에 조근해 대장이 부임했다. 조 총장은 이듬해 3월3일 오전 청주 공군사관학교 연병장에서 있을 공사 42기 졸업식 및 임관식 예행연습에 참석하기 위해 헬기에 탑승했다.

조 총장의 부인도 함께 동행했다.


10분 뒤 헬기는 경기도 용인의 한 야산 상공에서 공중폭발했고, 탑승자 6명 전원이 사망했다. 순직자들은 모두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김홍한 육군 제2야전군사령관(대장)

부산 출신인 김홍한 대장은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12월 육군종합학교 9기로 임관했다.

수도사단 대대장, 3사단 연대장, 5군단 참모장, 15사단장 등을 거쳤다. 1979년 12.12 직후 육본 인사참모부장에 임명됐고, 6군단장, 육군인사참모차장을 거쳐 1983년 8월29일 대장 진급과 함께 제2야전군사령관으로 부임했다.

김 대장은 각종 연수과정 등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을 정도로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군단장 시절에는 공세적 작전개념을 발전시키기 위한 <응용전술지휘론>이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또한 모든 간부들의 전투 지휘 전문요원화에 주력해 기여했다. 을지무공훈장, 보국훈장 국선장 등 8개의 훈장을 비롯, 각종 포상을 받았다.

1984년 7월12일 오전 김 대장은 육군 UHIH 헬기를 타고 대간첩작전준비태세 점검에 나섰다. 임무를 마친 후에는 대구에서 이륙해 사령부로 향했다. 그러나 오전 10시55분쯤 충북 영동군 매곡면 장척리 부근을 지나던 헬기가 갑작스런 기상악화로 상공에서 추락했다.

당시 영동지방에는 헬기추락을 전후해 11.6mm의 비가 내리고 있었으며, 초속 2m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사고 현장인 추풍령 인근은 평소에도 기상이변이 잦은 지역이다.

헬기에 탑승한 7명 중 김홍한 대장(54), 육군 1항공여단 소속 조종사 차창섭 준위와 안종수 소령, 정준용 대위가 즉사했다. 다음날 병원에서 치료받던 성윤영 준장(갑종 153기)이 숨지면서 사망자는 5명으로 늘었다. 사병 2명만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사고원인은 기상악화 속 무리한 이륙으로 밝혀졌다.


고인들의 유해는 영결식을 거쳐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이현부 육군 제7군단장(중장)

서울 출신으로 서울고를 거쳐 1964년 육사 20기로 임관했다. 졸업 때 최고 영예인 20기 대표 화랑상을 받았고, 이후 진급심사에서 늘 선두자리를 유지했다.

맹호부대(현 수도기계화보병사단)에서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을 거쳐 육본 작전참모부장을 역임했다. 그는 기동작전에 뛰어난 장군이었다. 1991년 12월 동기생 중 안병호 수방사령관과 함께 처음으로 중장으로 진급, 기동군단인 제7군단장으로 부임했다.

1992년 2월14일, 오전 9시 이 중장 일행은 경기도 장호원에서 육군 204항공대 소속 UH1H 헬기에 탑승했다. 해병1사단과 작전인수권을 협의하기 위해 경북 포항으로 가던 길이었다.

이륙 후 1시간이 지난 9시50분쯤, 헬기가 경북 선산군 장천면 상림리 마을 뒤편에 있는 삼정산 7부 능선 상공을 지날 무렵이었다. 순간 헬기가 요동을 치더니 뒷날개가 떨어져 나갔다.

당혹과 공포에 휩싸이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군단장은 “부락(마을)을 피하라”고 지시했고, 이 소리를 들은 정조종사 이지성 대위는 침착하게 부조종사 이수호 대위에게 각 관제소에 긴급 상황을 알리도록 했다. 이지성 대위는 좌측으로 쏠리며 급강하하는 헬기가 부락을 피하도록 조종간을 잡고 안간힘을 썼다.

부조종사 이수호 대위는 헬기 폭발을 막기 위해 추락 순간까지 배터리의 전원을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는 추락과 함께 우측 문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이 대위는 “누구없느냐”고 외치다 주민들이 나타나자 “빨리 배터리를 제거하라. 그렇지 않으면 기체가 폭발한다. 군단장님을 살려야 한다”고 절규한 뒤 실신했다.


추락 전 참모들은 군단장을 보호하기 위해 이 중장의 몸을 겹겹이 껴안았다. 그러나 탑승자 10명 중 이 중장을 비롯해 8명이 사망했다. 이 중장 뒷자리에 있던 전속부관 서상권 중위는 이 중장의 오른팔을 꼭 잡은 채 순직했다.

사망자는 작전참모 허정봉 대령(49), 군수참모 이원일 대령(50), 감찰참모 노용건 대령(40), 비서실장 한황진 소령(32), 조종사 이지성 대위(35), 전속부관 서상권 중위(25), 당번병 조규성 상병이다. 이중 이지성 대위는 현장에서는 살았지만 사고 후유증으로 한 달 후 사망했다.

부상자는 부조종사 이수호 대위(27)와 당번병 문기남 상병(22)이다. 군은 사고 원인을 기상 불량이라고 발표했다. 순직 장병들은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조근해 공군참모총장(대장)

1993년 5월 당시 이양호 공군참모총장이 합참의장으로 영전된다. 김영삼 정부는 후임에 국방정보본부장이던 조근해 중장을 대장으로 승진시켜 후임으로 임명했다.

제22대 공군참모총장에 취임한 그는 공사9기로 공군 내 요직인 제15전투비행단장, 한미연합참모부장, 작전참모부장, 작전사령관 등을 역임한 작전정보통으로 꼽혔다.

그는 업무처리가 정확하고 공사 구분이 분명하면서도 부하들과 대화에서는 계급이나 격식에 구애받지 않았다. 부하장교들의 직언을 잘 받아들여 공군뿐만 아니라 타군 장교들에게도 존경을 받았다.

1994년 3월3일, 조 총장에게는 운명의 날이다. 이날 오후 3시에 청주 공군사관학교 연병장에서는 공사 42기 졸업식 및 임관식 예행연습이 예정돼 있었다.

조 총장은 부인을 동반해 오후 2시25분 용산 미 8군 헬기장에서 공군 15전투비행단 소속 UH60(블랙 호크) 헬기에 탑승했다. 10분 뒤 조 총장이 탄 헬기는 경기도 용인군 외사면 근삼리 백암종합고등학교 앞 야산 상공에서 갑자기 공중 폭발했고, 그대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조 총장(57)을 포함한 부인 조인화씨(48), 조종사 강성윤 소령(35‧공사31기), 부조종사 유영재 대위(28‧공사38기), 수행부관 이상훈 대위(31‧공사35기), 정비사 전해술 원사(35) 등 6명 전원이 사망했다.

조 총장이 탄 헬기는 오후 2시50분 공사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며 예행연습이 끝난 뒤에는 졸업 축하연이 계획돼 있어 부인과 함께 가던 길이었다.


공군사고조사위원회는 4월2일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사고헬기가 추락지점 4km 전방에서 급강하했다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도중 주 회전 날개가 뒷부분을 때리면서 뒤꼬리 날개 부분이 떨어져 나가 추락했다”고 밝혔다.

순직자들은 영결식을 거친 뒤 조 총장 부부는 국립서울현충원 장군묘역에 합장되고, 나머지 탑승 사망자들은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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