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 명의 꿈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남자 ‘디스 맨’
매일 밤 찾아오는 꿈의 세계는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이 사적인 공간을 누군가 공유하고 있다는 기묘한 소문이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국적도, 나이도, 성별도 다른 수천 명의 사람이 꿈속에서 똑같이 생긴 한 남자를 만났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짙은 눈썹과 벗겨진 이마, 묘한 미소를 지은 이 남자는 ‘디스 맨'(This Man)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인터넷 역사상 가장 큰 소동의 주인공이 되었다.
의사의 책상 위에서 시작된 기이한 소문
이야기의 발단은 2006년 1월, 미국 뉴욕의 한 유명 정신과 병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여성 환자가 의사를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았다. 현실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자가 자꾸만 꿈에 나타나 인생에 대한 조언을 건넨다는 내용이었다. 환자는 자신이 기억하는 남자의 얼굴을 종이 위에 몽타주로 그렸다.
얼마 후, 병원을 방문한 또 다른 환자가 의사의 책상 위에 놓인 그 그림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신 역시 꿈에서 이 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는 이유였다. 의사는 호기심과 의구심을 품고 동료 의사들에게 이 몽타주를 공유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불과 몇 달 사이에 4명의 또 다른 환자가 같은 남자를 꿈에서 보았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남자를 ‘그 남자'(This Man)라고 불렀다. 2009년에는 이 남자를 추적하고 피해 사례를 수집하는 전문 인터넷 홈페이지까지 개설되었다. 여기에는 “이 남자를 꿈에서 본 적이 있습니까?”라는 문구와 함께 몽타주가 전면에 걸렸다.
소문은 겉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미국 뉴욕을 시작으로 독일 베를린, 브라질 상파울루, 그리고 대한민국 서울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의 대도시 길거리에 이 남자를 찾는 전단지가 붙었다.
제보된 꿈의 내용은 다양했다. 남자는 꿈속에서 연인이 되어 주기도 했고, 무서운 상황에서 목숨을 구해주는 영웅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심지어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거나, 하늘을 나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전 세계에서 접수된 제보만 2000건이 넘었다. 사람들은 이 남자가 인간의 무의식을 넘나드는 초능력자이거나, 특정 기업이 진행하는 비밀 정신 실험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전 세계가 공포와 호기심으로 들끓던 2010년, 이 엄청난 미스터리의 실체가 밝혀졌다. 한 인터넷 보안 전문가와 누리꾼들이 디스 맨 홈페이지의 도메인 등록 정보를 추적한 결과, 뜻밖의 이름이 드러났다. 사이트의 소유주는 이탈리아의 사회학자이자 게릴라 마케팅 전문가인 안드레아 나텔라(Andrea Natella)였다.
결국 나텔라는 이 모든 일이 자신이 기획한 예술 프로젝트이자 마케팅 실험이었다고 시인했다. 정신과 의사의 일화부터 수천 건의 제보에 이르기까지 모든 스토리는 정교하게 짜인 가짜 뉴스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전 세계를 현혹한 디스 맨의 얼굴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나텔라는 훗날 비하인드 스토리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젊었을 때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인물을 구상했다고 밝혔다.
그는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을 이용해 아버지의 이목구비를 흐릿하게 뭉개고 변형했다. 여기에 인류가 무의식적으로 가장 흔하게 받아들이는 평균적인 남성의 얼굴 특징을 조합했다. 그렇게 해서 세상 어디에나 있을 법하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없는 가상의 이방인이 탄생했다.
나텔라의 목표는 명확했다.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현대 사회에서 얼마나 쉽게 집단적인 환상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도시 전설을 전파할 수 있는지 그 파급력을 직접 검증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실험은 그의 예상보다 훨씬 성공적이었다.
뇌가 부린 마술, 왜 사람들은 진짜라고 믿었나
디스 맨이 마케팅이 낳은 허구라는 사실이 밝혀진 후에도 기이한 현상은 멈추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거짓말 마라, 나는 진짜로 저 남자를 꿈에서 봤다”며 자신의 경험담을 굽히지 않았다. 심리학자들과 뇌 과학자들은 이 현상을 인간 기억의 취약성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잠에서 깨어난 직후 꿈의 세부적인 내용을 완벽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꿈속 인물의 얼굴은 대개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하다. 이때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디스 맨의 선명한 몽타주를 보게 되면, 인간의 뇌는 착각을 일으킨다. 흐릿했던 꿈속 기억의 빈칸에 디스 맨의 얼굴을 강제로 끼워 맞추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사후 과잉 확신 편향’이라고 부른다.
또 다른 원인은 디스 맨 얼굴 자체가 가진 대중성이다. 굵은 눈썹과 얇은 입술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길거리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인상이다. 뇌가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있던 평범한 이웃의 이미지가 몽타주를 보는 순간 깨어나는 편이다. 게다가 미디어를 통해 디스 맨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접하다 보면, 그 잔상이 뇌에 남아 실제로 디스 맨이 등장하는 꿈을 꾸게 되는 ‘암시 효과’도 크게 작용했다.
디스 맨 소동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이후 수많은 영화와 소설, 게임의 모티브가 되었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유명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에서 에피소드로 다루어지기도 했으며, 만화와 공포 영화의 소재로 변주되어 대중문화에 깊은 발자국을 남겼다.

과거의 신화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수백 년에 걸쳐 만들어졌다면, 디스 맨은 광랜과 모니터 화면을 통해 단 몇 달 만에 전 세계인의 무의식을 지배한 최초의 ‘디지털 신화’였다.
우리가 매일 밤 마주하는 꿈은 정말로 온전한 우리만의 공간일까. 아니면 오늘도 수많은 정보와 시각적 자극에 노출된 현대인의 뇌가 만들어낸 또 다른 가상 현실일까. 디스 맨의 미스터리는 풀렸지만, 오늘 밤 잠자리에 드는 이들의 마음속에는 묘한 의문이 남는다.
어쩌면 오늘 밤 당신의 꿈속을 걸어 다닐 누군가의 얼굴 역시, 당신이 낮 동안 무심코 바라본 스마트폰 화면 속 누군가의 조작된 잔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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