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와인 상자 ‘디북 박스’ 저주의 진실
21세기 인터넷 문화가 낳은 가장 기괴하고도 성공적인 초자연 현상 괴담을 꼽으라면 단연 ‘디북 박스'(The Dybbuk Box)가 중심에 선다. 유대교 민간 신앙에 등장하는 악령이 봉인되어 있다는 이 작은 나무 상자는, 온라인 경매 사이트 이베이(eBay)에서 시작되어 할리우드 공포 영화의 모티브가 되고 유명 팝스타의 삶을 뒤흔들기까지 전 세계를 공포에 빠뜨렸다.
손대는 이마다 알 수 없는 질병과 불운에 시달렸다는 이 상자의 저주는 과연 실재하는 초자연적 재앙이었을까, 아니면 치밀하게 기획된 현대판 잔혹 동화였을까.
103세 할머니의 유품과 기이한 현상들의 시작
사건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가구 복원과 중고품 매매업을 하던 케빈 매니스(Kevin Mannis)는 한 현지 주민의 유품 정리 세일에서 스페인식 와인 보관함으로 쓰이던 작은 나무 상자 하나를 구매했다. 가로 30cm, 세로 40cm 크기의 평범해 보이는 와인 저장용 나무 상자였다.
전 소유주의 유족에 따르면, 이 상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대량 학살(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할머니의 유품이었다. 폴란드 출신의 할머니는 스페인을 거쳐 미국으로 이주할 때 오직 이 상자 하나만을 챙겼으며, 평생을 밀봉해 보관했다고 한다. 살아생전 자식들에게는 “이 상자에는 악령인 ‘디북’이 들어있으니 절대로 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가족들은 할머니가 10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상자를 경매에 부쳤다.
단순한 미신으로 치부한 매니스는 상자를 가게로 가져와 열었다. 그 안에는 기묘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1920년대에 발행한 1센트 동전 두 개, 갈색과 금발의 머리카락 두 묶음, 히브리어로 ‘샬롬'(Shalom, 평화)이라고 새겨진 작은 석판, 황금빛 와인 잔, 황동으로 만든 촛대, 그리고 말린 장미 꽃봉오리가 그것이었다.

문제는 상자를 개봉한 직후부터 발생했다. 매니스가 상자를 연 채 잠시 외출한 사이, 가게를 지키던 직원은 지하실에서 누군가 유리를 깨고 욕설을 퍼붓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며 공황 상태에 빠진 채 일을 그만두었다.
매니스는 어머니의 생신 선물로 이 상자를 건넸으나, 어머니는 상자를 받은 지 몇 분 만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목소리를 잃었다. 또한 상자 근처에 머문 사람들은 모두 똑같이 늙은 마녀에게 쫓기는 악몽을 꿨다. 상자를 보관하는 방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매캐한 고양이 오줌 냄새나 자스민 꽃향기가 번갈아 풍겼다.
공포를 이기 못한 매니스는 결국 2003년 9월, 이 상자를 이베이 경매에 매물로 올렸다. 그는 상자에 얽힌 기이한 현상들을 상세히 기록했고, 이 글은 순식간에 인터넷 커뮤니티로 퍼져나갔다. 상자를 낙찰받은 이들은 저주가 실재한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로 이 상자를 낙찰받은 소유자는 미주리주 트루먼 주립대학교의 대학생이었던 이오시프 니츠케다. 그도 역시 상자를 집에 들인 후 기이한 일들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심각한 탈모와 원인 불명의 피부 두드러기, 그리고 온몸에 설명할 수 없는 멍자국이 생기는 증상을 겪었다.
그와 동거하던 룸메이트들도 원인 모를 불면증과 건강 악화에 시달렸고, 집안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결국 니츠케는 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8개월 만인 2004년 2월, 이베이에 다시 매물로 내놓았다.
미주리주의 국립 골의학 박물관 관장이자 큐레이터였던 제이슨 헥스턴은 이 기묘한 상자를 하나의 역사적 유물로 연구해보고 싶다는 호기심에 구매를 결정했다. 세번째 소유자가 된 그도 상자의 기운을 피해 가지 못했다. 집으로 가져온 뒤 피부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발진이 생겼고, 잦은 기침과 끔찍한 편두통, 탈모 증세까지 겪었다. 헥스턴은 혹시 과거 유물에 묻은 독성 화학물질 때문인가 싶어 정밀 성분 검사까지 의뢰했으나, 상자 표면에서는 약간의 설탕물 성분 외에 아무것도 검출되지 않았다.

20년 만에 밝혀진 천재적 서사시의 내막
전 세계 초자연 현상 연구가들의 표적이 되었던 디북 박스의 비밀은 2021년, 최초 유포자였던 케빈 매니스의 고백으로 완전히 뒤집혔다. 매니스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상자에 얽힌 홀로코스트 생존자 이야기, 악령의 존재, 그리고 어머니의 발병을 비롯한 모든 괴현상이 자신이 만들어 낸 ‘허구’라고 털어놓았다.
창작 작가 지망생이기도 했던 매니스는 평범한 중고 와인 상자에 사람들의 흥미를 끌 만한 입체적인 서사를 덧입혔던 것이다. 상자 내부의 머리카락과 동전, 히브리어 석판 등은 그가 직접 준비하고 제작한 소품이었으며, 이베이의 경매 설명글은 사실상 실시간으로 독자와 소통하는 일종의 ‘인터랙티브 공포 소설’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유대교의 전통적인 영적 개념에서 ‘디북'(Dybbuk)은 억울하게 죽은 망령이 살아있는 인간의 육체에 빙의하는 현상을 뜻한다. 가구나 상자 같은 무생물에 악령을 봉인한다는 개념은 유대교 신앙에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할리우드식 오컬트 영화의 설정에 가깝다. 매니스는 대중이 영적 존재에 대해 가진 막연한 두려움과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비극이 주는 엄숙함을 정교하게 결합하여 세상에서 가장 그럴듯한 괴담을 완성해 냈다.
이상한 것은 매니스의 고백으로 모든 것이 가짜임이 드러났지만 상자를 둘러싼 기이한 현상은 계속해서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는 것이다.
디북 박스는 현재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유명 방송인이자 초자연현상 수집가인 작 바간스의 유령 박물관 내부, 특수 제작된 유리 케이스 안에 보관되어 있다. 바간스는 이 상자를 구입한 후, 세계적인 호러 거장들과 함께 상자를 개봉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영화 <포스트 말론>으로 유명한 가수 포스트 말론이 상자가 보관 중인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관장인 작 바간스가 상자의 뚜껑을 열자, 옆에 있던 말론이 두려움에 떨며 바간스의 어깨를 잡았다. 그 이후 말론은 비행기 비상 착륙 사고를 겪고, 자동차 교통사고를 당했으며, 자택에 무장강도가 침입했다. 여기에 개인 차량이 전파되는 대형사고를 당하는 등 연이어 불운을 겪었다.
그렇다면 상자를 거쳐 간 사람들이 겪은 병 증상과 이상 현상들, 가수 포스트 말론이 겪은 불운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심리학자들은 이를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로 분석한다. 어떤 물건에 무서운 저주가 걸려 있다는 강한 암시를 받으면, 인간의 뇌가 실제로 신체적인 통증이나 이상 증상을 만들어낸다는 원리다.
이에 따라 ‘디북 박스’는 이러한 인간의 심리가 외부 정보와 결합했을 때 얼마나 강력한 실체적 현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저주받은 물건’이라는 강렬한 선입견이 소유자들의 면역계를 약화시키고 스트레스를 극대화해 실제 신체 증상으로 발현되었다는 의미다.
실제로 마지막 소유자였던 제이슨 헥스턴의 일화는 이를 방증한다. 건강 악화에 시달리던 그는 유명한 주술사를 찾아가 상자를 달래는 의식을 치렀다. 놀랍게도 의식을 치른 직후 그의 몸을 괴롭히던 두드러기와 증상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상자의 저주가 풀린 것이 아니라, 의식을 통해 마음속에 심어졌던 공포와 스트레스가 해소되면서 신체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으로 풀이된다. 마음에 심어졌던 공포가 육체를 지배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처럼 ‘디북 박스’는 인간의 믿음이 어떻게 강력한 실체적 현상을 창조하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지표다.

마음에 심어진 그림자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지금도 작 바간스의 박물관에는 디북 박스를 보기 위한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매년 수많은 관람객이 혹시 모를 기운을 두려워하며 여전히 상자 앞을 서성인다. 거짓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상자 앞에는 ‘임산부나 노약자는 접근을 자제해 달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디북 박스는 2012년에 개봉한 미국의 초자연 스릴러 공포 영화 <더 포제션: 악령의 상자>(The Possession)의 모티브가 되었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감독으로 유명한 공포 영화의 거장 샘 레이미가 제작을 맡았으며, 제프리 딘 모건과 키라 세지윅이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디북 박스가 정말로 악한 영을 담고 있는지, 아니면 인간의 호기심과 두려움이 만들어낸 정교한 환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허구로 시작된 이야기가 인간의 믿음을 자양분 삼아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서늘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눈에 보이는 저주보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 마음속에서 스스로 자라나는 공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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