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 생존설 실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아돌프 히틀러. 그는 전쟁으로 5천만 명 이상의 인명을 앗아가고, 국가의 주도하에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인류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다.
1933년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독일의 총리로 집권한 그는 스스로를 절대 권력자인 ‘총통’이라 칭하며 전체주의 나치 정권을 수립했다. 이후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유럽 전역을 침공하며 광기 어린 팽창주의를 이어갔으나, 연합국과 소련군의 반격에 밀려 결국 몰락의 길을 걸었다.
벙커 안의 총성과 스탈린의 거대한 연극
1945년 4월30일 오후 3시30분, 소련군 장갑차의 굉음으로 요란하던 베를린의 총통관저 지하 벙커. 연합군의 포위망이 좁혀오자 히틀러는 문을 굳게 잠갔다. 곧이어 한 발의 총성이 관저에 울려퍼졌다.
부하들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히틀러는 머리에 총상을 입고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곁에는 청산가리를 마신 아내 에바 브라운이 함께였다. 현장에는 피 묻은 소파와 권총 탄피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히틀러는 죽기 전 자신의 시신을 적들에게 빼앗겨 모욕당하지 않게 흔적도 없이 태우라는 지시를 내렸다. 당시 독일군 수뇌부는 히틀러의 유언에 따라 이들의 시신을 벙커 밖 정원으로 옮긴 후 휘발유를 부어 불을 붙였다.
얼마 후 소련군이 벙커에 진입했을 때, 그들이 마주한 것은 형체를 앞아보기 힘들 정도로 타버린 유해였다. 뼈 몇 조각과 치아 일부만 남은 상태였다. 이렇게 히틀러의 죽음으로 전쟁은 끝나는 듯 했다.

그런데 이때부터 히틀러의 죽음을 둘러싼 음모론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가 베를린의 불타는 폐허 속에서 살아남아 남미의 밀림이나 남극의 지하 세계로 도망쳤다는 이른바 ‘히틀러 생존설’이다. 눈으로 직접 시신을 확인한 사람이 적다 보니, 베를린 시민들 사이에서 “그가 살아 지하 통로로 도망쳤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 생존설의 진원지는 당시 소련의 최고 권력자 이오시프 스탈린이었다. 그해 5월, 베를린을 가장 먼저 점령한 소련군 비밀정보기관 ‘스메르시'(SMERSH)는 총통관저 정원의 포탄 구덩이에서 불에 탄 남녀의 시신을 발굴했다. 이들은 히틀러의 주치의와 치과 조무사를 불러 시신의 치아 구조를 대조했고, 그것이 히틀러의 유해임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 결정적인 사실은 크렘린궁의 철저한 보안 장벽 뒤로 사라졌다. 스탈린은 이 사실을 연합국 측에 숨기기로 결심했다. 그해 7월 열린 포츠담 회담에서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히틀러의 죽음을 확인했느냐고 묻자, 스탈린은 시치미를 떼며 “그는 죽지 않았다. 스페인이나 아르헨티나로 도망쳤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소련이 이러한 정보를 유포한 배경에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스탈린은 서방 동맹국들에게 나치의 위협이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긴장감을 심어주고 싶어 했다. 히틀러라는 인물이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가능성은 서방 세계 내부의 혼란을 유도하는 동시에, 소련이 동유럽에 군대를 계속 주둔시키고 강력한 통제력을 유지할 수 있는 명분이 되었다.
잠수함 U-977의 비밀 항해와 남미 탈출로
스탈린의 선전 선동이 뿌린 씨앗은 실제 역사적 사건과 결합하면서 폭발적인 생명력을 얻었다. 당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수많은 나치 고위 전범들이 가톨릭 성직자나 국제적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아 위조 여권을 들고 남미로 탈출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 탈출 경로를 이른바 ‘랫라인'(Ratlines, 쥐구멍 항로)이라고 불렀다.
전후 수년에 걸쳐 홀로코스트의 실무 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 아우슈비츠의 의사 요제프 멩겔레 등이 실제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등지에 정착해 이름을 바꾸고 살아갔다. 아르헨티나나 브라질 같은 국가들은 당시 나치 자금을 유치하거나 기술자를 확보하기 위해 이들의 밀입국을 묵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음모론자들은 부하들도 도망친 루트인데, 최고 권력자인 히틀러가 도망치지 못했을 리 없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가장한 논리를 내세웠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구체적인 도주 경로도 제시했다.
히틀러가 벙커에서 탈출해 위장용 비행기를 타고 스페인으로 간 뒤, 그곳에서 독일의 유보트(U-boat) 잠수함을 타고 아르헨티나 해안에 내렸다는 시나리오다.

실제로 전후 정체불명의 나치 잠수함인 U-530과 U-977이 아르헨티나 해군 기지에 항복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음모론자들은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이 베를린 지하 터널을 통해 임시 비행장으로 이동한 뒤, 덴마크를 거쳐 이 잠수함들에 탑승했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도착한 목적지는 나치 동조자였던 후안 페론 대통령이 통치하던 아르헨티나의 외딴 안데스산맥 자락이나 파타고니아의 대목장이었다. 그곳에서 히틀러가 수염을 깎고 머리를 기른 채 노년을 보냈다는 묘사는 수많은 가짜 대중 역사서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히틀러가 안데스산맥 자락의 외딴 저택에서 에바 브라운과 함께 이름을 바꾸고 노년을 보냈다는 소문은 책과 다큐멘터리로 제작되기도 했다.
생존설은 1950년대와 60년대 냉전이 심화되면서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국(CIA)의 문서고까지 침투했다. 2010년대 들어 미국 정부가 과거 기밀문서들을 대거 해제하면서 이 음모론은 다시 한번 언론의 조명을 받게 된다.
공개된 문서 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1955년 10월, CIA 카라카스(베네수엘라) 지부장이 본국에 보낸 비밀 보고서였다. 이 문서에는 ‘CIMELODY-3’라는 암호명의 정보원이 제보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과거 나치 친위대(SS) 대원이었던 필립 시트로엔이라는 인물이 콜롬비아에서 히틀러를 만났다는 주장이었다. 보고서에는 1954년 중반 콜롬비아 퉁하에서 촬영되었다는 사진 한 장이 첨부되어 있었는데, 사진 속에는 ‘아돌프 슈텔마허’라는 가명을 쓰는, 히틀러를 닮은 남성이 앉아 있었다.

FBI 역시 전쟁 직후부터 수년 동안 아르헨티나의 은신처, 콜롬비아의 시골 마을, 심지어 미국의 한 농가에서 히틀러를 보았다는 수천 건의 제보를 접수하고 이를 문서로 남겼다. 그러나 이 문서들의 실체는 정보기관이 직접 확인한 사실이 아니라, 민간인이나 신뢰도가 낮은 정보원들이 가져온 ‘단순 첩보’를 행정적으로 기록해 둔 것에 불과했다.
냉전 초기 정보기관들은 혹시 모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모든 소문을 수집해야 했고, 이것이 훗날 문서로 공개되면서 마치 정부가 히틀러의 생존을 진지하게 추적했던 것 같은 착시효과를 낳았다.
역사의 안개 속으로 사라진 독재자
사실 히틀러 생존설이 끈질기게 살아남았던 데는 과학적 논란도 한몫했다. 지난 2009년, 미국 연구진이 러시아가 보관해 온 ‘총탄 구멍이 뚫린 두개골 파편’의 DNA를 분석한 결과, 히틀러가 아닌 40대 미만 여성의 것으로 밝혀지며 음모론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기도 했다. 유해의 진위 여부를 두고 미궁에 빠졌던 이 거대한 유령극에 마침내 과학의 이름으로 종지부가 찍힌 것은 2018년의 일이었다.
프랑스의 법의학 및 병리학자 필리프 샬리에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러시아 연방보안국(FSB)과 국가문서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던 히틀러의 유해 조각을 직접 조사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아냈다. 러시아가 외국 학자에게 이 유해를 공개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종료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연구팀은 논란이 많았던 두개골 대신, 1945년 발굴 당시부터 가장 확실한 신원 확인 수단이었던 ‘치아와 턱뼈 조각’을 집중 분석했다. 분석 결과는 명확했다.

치아 조각에 남아 있는 치석을 전자현미경으로 검사한 결과, 육류 섬유질의 흔적이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생전 극단적인 채식주의자로 살았던 히틀러의 생물학적 특성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턱뼈에 남아 있는 정교한 보철물과 의치 상태는 1945년 당시 나치의 수석 치과의사였던 후고 블라슈케가 작성한 히틀러의 치과 진료 기록 및 엑스레이 사진과 형태학적으로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함께 보관된 두개골 파편의 경우 과거 논란이 있었으나, 턱뼈 조각에 남아 있는 치명적인 손상 흔적과 잔여 성분은 권총 격발 및 극약 복용이 동시에 이루어졌던 벙커 안의 최후를 그대로 증명하고 있었다.
연구팀은 국제 학술지 ‘유럽 내부의학 저널’에 해당 논문을 발표하며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치아는 완벽하게 일치한다. 히틀러가 1945년에 사망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남미로 도망치지 않았고, 남극의 비밀 기지에 있지도 않다. 히틀러의 생존설은 이제 과학적으로 완전히 종식되었다.”
결국 아돌프 히틀러 생존설은 패망한 독재자의 종말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 했던 대중의 호기심, 전범들의 실제 도피가 준 착시, 그리고 냉전 초기 독소 간의 정치적 선전전이 결합해 만들어낸 20세기 최고의 가짜 뉴스였던 것이다.
과학과 역사의 정밀한 퍼즐이 완성되면서, 오랜 시간 세계를 떠돌던 독재자의 유령은 마침내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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