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감시자가 보낸 편지 ‘볼리바드 657번지’의 악몽
가장 안전해야 할 보금자리가 나를 겨누는 감시탑으로 변해버리는 것만큼 끔찍한 일은 없다. 평생을 성실하게 일해 마침내 이뤄낸 꿈의 집, 그곳에서 세 자녀와 함께 보낼 행복한 미래를 그리던 한 가족의 소박한 소망은 단 몇 줄의 글자 앞에서 무참히 깨져버렸다.
축복으로 가득해야 할 이삿날이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공포의 서막이 될 줄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평화롭던 한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린 잔혹한 현실은, 우체통에 담긴 하얗고 두꺼운 편지 봉투 한 통으로부터 시작됐다.
“너희 집을 지켜보고 있다”
2014년 6월, 미국 뉴저지주의 대표적인 부촌 웨스트필드. 세 자녀를 둔 데릭 브로드스(Derek Broaddus)와 마리아 브로드스(Maria Broaddus) 부부는 오랫동안 꿈꾸던 대저택을 마련했다. 볼리바드 657번지에 위치한 이 집은 1905년에 지어진 유서 깊은 건물이었다. 침실이 6개에 달하는 아름다운 집을 사기 위해 부부는 130만 달러(약 14억원)가 넘는 거금을 아낌없이 투자했다.
새 집으로 이사하기 전, 부부는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했다.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벽지를 고르고 페인트를 칠하던 어느 날, 우체통에서 정체불명의 편지가 발견된다. 수신인은 ‘새로운 주인에게’, 발신인 란에는 오직 ‘더 와처'(The Watcher, 감시자)라는 이름만 적혀 있었다.

컴퓨터 타이핑으로 인쇄된 편지 내용은 첫 문장부터 기괴했다. 범인은 자신이 이 집을 수십 년간 지켜봐 온 감시자라고 소개했다.
“이 집에 새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저택은 수십 년 동안 우리 가족의 감시 대상이었습니다. 나의 할아버지가 1920년대에 이 집을 지켜보았고, 나의 아버지가 1960년대에 지켜보았습니다. 이제는 내가 감시할 차례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짓궂은 이웃의 장난이나 질투 섞인 악성 편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편지를 읽어 내려갈수록 부부의 등은 서늘해졌다. 범인은 브로드스 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을 소름 끼치도록 정확하게 파악했다.
그는 부부가 집을 수리하는 것과 리모델링을 위해 부른 인부들의 숫자까지 알고 있었다. 편지에는 편지에는 “당신들이 집을 고치느라 숲을 망치고 있다. 이는 좋지 못한 행동이다”라는 경고가 담겨 있었다.
더욱 무서운 것은 부부의 사생활을 샅샅이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편지에는 부부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의 종류와 색상까지 적어놓았다. 특히 세 자녀를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당신들이 탄 차에 아이들이 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직 아이들의 이름을 다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곧 알게 될 것이다. 저택에 신선한 피를 채워주어서 고맙다.”

좁혀지지 않는 용의선상과 미궁에 빠진 수사
공포에 질린 부부는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편지를 보낸 사람을 찾기 전까지 이 사실을 이웃에게 비밀로 하라고 조언했다. 부부는 이사를 미루고 인근 친척 집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지만, 단서는 턱없이 부족했다. 편지 봉투에 붙은 우표는 뉴저지주 카니의 우편물 처리 시설에서 소인 처리된 것뿐이었다.
첫 편지가 도착하고 2주 뒤, 두 번째 편지가 배달되었다. 이번에는 부부도 몰랐던 소름 돋는 디테일이 적혀 있었다. 범인은 아이들의 이름을 나이순으로 정확히 나열했다. 심지어 아이들이 부르는 별명까지 알고 있었다.
“아이들이 벌써 집 안에서 노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아이가 그 애인가요? 이 집의 벽 속에는 무언가 숨겨져 있습니다. 아이들이 벽 속에서 무엇이 나올지 두려워하며 울부짖을 날이 올 것입니다. 내가 당신들이라면 이 집에서 잠을 자지 못할 것입니다.”
부부는 집 수리를 하는 인부들 중에 범인이 있을 것으로 의심했다. 하지만 인부들이 일하지 않는 밤 시간이나 주말의 움직임도 편지에 그대로 적혔다. 누군가 집 주변 으스스한 나무 뒤나 이웃집 창문에서 이들을 밤낮으로 망원경을 통해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결국 부부는 사설 탐정을 고용했다. 퇴직한 연방수사국(FBI) 요원까지 불러 조사를 진행했다. 집 주변에 감시 카메라를 수십 대 설치하고 야간 경비원까지 배치했다. 하지만 편지는 계속해서 교묘하게 우체통에 꽂혔다.
경찰과 사설탐정들은 볼리바드 657번지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이 집은 구조상 이웃집의 마당이나 창문에서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형태였다. 조사관들은 주변 이웃들을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했다.
가장 먼저 의심을 받은 사람은 바로 옆집에 살던 랭포드 가족이었다. 이 집의 아들인 마이클 랭포드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고, 이웃집 마당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특이한 행동을 자주 했다. 경찰은 마이클을 소환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지만 뚜렷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수사 과정에서 결정적인 단서가 하나 발견되기도 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 결과, 편지 봉투에 묻은 침에서 여성의 DNA가 검출된 것이다. 마이클은 남성이었기에 용의선상에서 멀어졌다. 경찰은 그의 누이나 어머니를 의심했으나, 이들의 DNA와는 일치하지 않았다. 봉투에 묻은 DNA는 오히려 수사를 더 미궁으로 빠뜨렸다.
브로드스 부부는 신변의 위협을 느껴 이사를 전면 중단했다. 130만 달러짜리 대저택을 사고도, 가족들은 단 하루도 그 집에서 잠을 자지 못했다. 부부는 사설경호원을 고용하고 집 주변에 폐쇄회로(CC)TV를 촘촘히 설치했다. 심지어 군대에서 사용하던 탐지견을 동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편지는 경비망을 비웃듯 계속해서 배달됐다.
지칠 대로 지친 부부는 사건 발생 6개월 만인 2014년 말, 집을 다시 매물로 내놓았다. 하지만 이미 온 동네와 언론에 ‘감시자가 있는 집’으로 소문이 난 상태였다. 매수 희망자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부부는 집을 허물고 대지를 두 개로 나누어 각각 새로운 집을 지어 판매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웨스트필드 시청에 토지 분할 허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뜻밖의 장벽에 부딪혔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마을 주민들이 강력하게 반대한 것이다. 이웃들은 토지 분할이 동네의 역사적 가치를 떨어뜨리고 집값을 하락시킨다는 이유로 시청 청문회에 몰려와 격렬하게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동네 주민들 사이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브로드스 부부가 집을 살 때 무리하게 대출을 받았고, 돈이 부족해지자 계약을 파기하거나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스스로 자작극을 벌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었다. 평화롭던 부촌의 이웃들은 하루아침에 서로를 불신하고 차가운 감시자의 시선으로 부부를 바라보았다. 부부는 이웃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고, 이웃들은 부부를 비난하며 마을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맞섰다. 결국 부부의 토지 분할 계획은 시청에서 최종 기각됐다.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베일에 가려져 있던 이전 거주자들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브로더스 부부에게 집을 판 전 주인인 존 우즈와 안드레아 우즈 부부는 이 집에서 23년 동안 아무 문제 없이 행복하게 살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 수사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우즈 부부 역시 이사 가기 직전에 ‘더 와처’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편지에는 “이제 집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우즈 부부는 이를 단순한 장난전화나 악성 우편물로 치부하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집을 매매할 때 브로드스 부부에게 이 사실을 전혀 말하지 않았다.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1971년 이 동네에서 발생한 ‘존 리스트 살인 사건’이 언급되기도 한다. 존 리스트라는 남성이 자신의 어머니와 아내, 세 자녀를 살해하고 도망친 사건이다. 비록 이 저택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비극이었다. 이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 지역에 흐르는 으스스한 기운에 민감한 편이었다.
브로드스 부부는 정체불명의 편지가 계속 배달되자 극심한 심리적 고통을 겪는다. 남편 데릭은 매일 밤 불이 꺼진 볼리바드 657번지 근처를 서성거리며 어둠 속에서 집을 쳐다보는 사람이 없는지 감시하는 집착 증세를 보였다. 아내 마리아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을 받고 장기간 심리 치료를 받아야 했다.
결국 부부는 2019년, 산 가격보다 무려 40만 달러(약 4억 2000만 원)나 손해를 본 96만 달러(USD)에 겨우 집을 처분했다. 새로운 구매자는 평범한 부부였으며, 그들은 감시자의 존재를 알고도 개의치 않는다며 집을 인수했다. 놀랍게도 새 주인이 이사 온 이후로는 더 이상 어떤 편지도 도착하지 않았다.

미제로 남은 감시자의 눈동자
지금까지 볼리바드 657번지를 감시하던 인물의 정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집값을 노린 부부의 자작극이라는 설부터, 부동산 개발업자의 음모, 혹은 마을의 전통을 지키려는 비뚤어진 애향심을 가진 이웃의 소행이라는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이 사건은 2022년 넷플릭스에서 동명의 드라마 시리즈로 제작되며 다시 한번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드라마는 다양한 가설을 섞어 극적인 결말을 맺었지만, 현실의 미스터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볼리바드 657번지의 낡은 벽 사이에 정말로 무언가 숨겨져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어둠 속에서 그 집의 창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100년이 넘은 붉은 벽돌 저택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오늘도 웨스트필드의 조용한 거리 한구석을 묵묵히 지키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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