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들도 도망쳐 나온 ‘발레카스 유령 사건’ 전말
인간은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에 매력을 느낀다. 과학과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오늘날에도, 우리가 발을 딛고 가꾸어 온 이성적인 세상의 틈새에는 여전히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이 가득하다. 한밤중 아무도 없는 방에서 들려오는 정체 모를 발소리, 벽에 걸린 시계나 액자가 스스로 바닥으로 떨어지는 현상 앞에 서면 누구나 서늘한 공포를 마주하게 된다.
현대 과학은 이러한 현상을 대개 착시나 뇌의 착각, 혹은 집안의 미세한 진동이나 공기의 흐름으로 설명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논리적인 법칙과 수식만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순간들이 분명 존재한다. 특히 수많은 목격자의 눈앞에서 물리적인 법칙을 무시한 채 벌어지는 일들은, 우리가 아는 현실 너머에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오랜 의구심을 자극한다.
고등학교 지하실에서 시작된 불길한 호기심
1992년 11월 27일 새벽 2시 40분, 스페인 마드리드의 남부 노동자 계층이 모여 사는 발레카스 지역의 한 아파트에서 걸려온 다급한 신고 전화 역시 바로 그 미지의 문이 열렸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공포에 질려 떨리고 있었다. 집 안의 물건들이 스스로 움직이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가족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출동한 경찰들은 처음에 단순한 가정 소란이나 집단 정신 이상 사건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선 그들이 마주한 것은 스페인 경찰 역사상 단 한 번도 공식 문서에 기록된 적 없는 기이한 정황이었다.
이 사건의 서막은 2년 전인 1990년 봄, 한 여고생의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18세였던 평범한 소녀 에스테파니아 구티에레스 라사로(Estefanía Gutiérrez Lázaro)는 친구 한 명이 오토바이 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깊은 슬픔에 빠졌다. 에스테파니아와 친구들은 죽은 친구의 영혼과 다시 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에 위험한 결정을 내린다. 학교 지하실에서 서양식 강령술 도구인 ‘위자보드’로 비밀스러운 의식을 치른 것이다.

종이 위에 글자와 숫자를 적고 컵을 올려놓은 채 시작된 의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교사에게 발각된다. 교사는 아이들을 꾸짖으며 위자보드를 거칠게 빼앗아 부쉈다. 그 순간 현장에 있던 학생들은 기이한 장면을 목격한다. 보드 위에 있던 컵이 스스로 깨지면서 그 안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뿌연 연기가 피어올랐고, 이 연기가 에스테파니아의 코와 입을 통해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그날 이후, 에스테파니아의 삶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는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가족들에게 밤마다 방 안에 키가 큰 검은 형체들이 찾아와 자신을 부른다고 속삭였다. 환청과 환각 증세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온순했던 성격은 거칠게 변했고, 동생들을 향해 맹수처럼 으르렁거리며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부모는 딸을 구하기 위해 마드리드의 병원들을 찾아갔다. 신경과, 정신과 등 유명하다는 의사들을 모두 만나 정밀 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의료진의 답변은 늘 같았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무런 이상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의학적으로는 완벽하게 건강한 상태였다.
의문의 죽음, 그리고 시작된 진짜 공포
증상이 시작된 지 약 1년이 지난 1991년 8월, 에스테파니아는 자신의 방 침대에서 혼수 상태로 발견된다. 급히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결국 숨을 거두었다. 병원에서 내린 공식 사인은 심폐 부전과 질식사였지만, 왜 갑자기 숨이 멈췄는지에 대한 명확한 의학적 설명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진짜 공포는 에스테파니아가 세상을 떠난 뒤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가족들의 아파트는 더 이상 안전한 안식처가 아니었다. 물리학적 법칙을 무시하는 듯한 폴터가이스트 현상들이 매일 밤마다 반복되었다.
문이 저절로 쾅쾅 닫히는 소리에 가족들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거실 탁자 위에 놓아둔 컵과 장식품들이 벽을 향해 스스로 날아가 산산조각이 났다. 벽에 걸어두던 십자가상은 밤마다 거꾸로 뒤집혀 있었고, 가족들이 똑바로 돌려놓아도 몇 시간 뒤면 다시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어느 날 밤에는 가족들이 거실에 모여 있을 때, 벽에 걸려 있던 에스테파니아의 사진 액자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깜짝 놀란 어머니가 액자를 주워 들었을 때, 온 가족은 얼어붙고 말았다. 액자의 유리와 나무 틀은 깨지거나 부서진 곳이 한 군데도 없이 멀쩡했다. 하지만 유독 사진 속 에스테파니아의 얼굴 부분만 불에 탄 것처럼 까맣게 그을려 사라진 상태였다. 공포에 질린 가족들은 결국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호세 네그리 경감과 4명의 경찰관은 아파트 건물 뒤편에 다다랐을 때부터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늦가을의 날씨였는데도 불구하고, 아파트 내부로 진입하자 비정상적인 한기가 몸을 감쌌다. 거실에서 떨고 있는 가족들을 진정시킨 후 조사를 시작하려는 순간, 방 안의 온도가 급격히 내려가며 경찰관들의 입에서 하얀 김이 나오기 시작했다.
곧이어 방 안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경찰관들이 소리가 난 방으로 이동했을 때, 대형 옷장의 문이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격렬하게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했다. 네그리 경감과 대원들이 이를 제지하려 다가가는 순간, 벽에 걸려 있던 예수상 뒤편의 벽지에서 붉은색 액체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액체는 마치 피처럼 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또한 콘크리트 벽면에서는 누군가 날카로운 손톱으로 긁는 듯한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경찰관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비현실적인 상황에 압도당했다. 일부 대원들은 가슴 통증과 극심한 공포를 호소했고, 베테랑 경찰관들조차 밀려드는 압도적인 공포감에 서둘러 철수를 결정했다. 경찰은 가족들을 즉시 대피시키는 것으로 현장 조치를 마무리했다.
호세 네그리 경감은 훗날 작성한 공식 사법 보고서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본관과 동행한 대원들은 주택 내부에서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상황을 직접 목격했다. 가구가 스스로 열리고 소음이 발생했으며, 벽십자가가 뒤집히는 등의 현상은 인간의 물리적인 개입으로 조작될 수 없는 형태였다. 이는 대단히 이례적이고 미스터리한 상황이다.”
이 문서는 스페인 사법 역사상 최초로 경찰이 초자연적 정황을 공식 사법 기록으로 남긴 전무후무한 사례가 되었다.

이 사건이 언론을 통해 스페인 전역에 알려지자, 대중은 뜨겁게 반응했다. 집안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유명한 심령 연구가들과 조사관들이 이 아파트를 방문했다. 그중 일부는 에스테파니아의 방에서 자기장의 수치가 일반적인 가정집의 10배 이상 치솟는 현상을 발견했다. 주파수 측정기에는 인간의 목소리가 아닌, 주파수가 심하게 왜곡된 비명과 같은 소리가 녹음되기도 했다.

남겨진 가족들은 극심한 생활고와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이웃들은 이 가족을 ‘저주받은 집안’이라 부르며 기피했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결국 이들은 공포와 사회적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아파트를 헐값에 매각한 뒤 마드리드 외곽으로 거처를 옮겼다.
신기하게도 가족들이 이사를 가자마자 그들을 괴롭히던 모든 기이한 현상은 거짓말처럼 완전히 멈추었다. 이후 그 아파트에 새로 들어온 세입자들은 어떤 기이한 현상도 겪지 않은 채 아무런 문제 없이 평온하게 살아갔다.
드러난 균열과 남겨진 진실
오랫동안 스페인 최고의 미스터리로 남았던 이 사건은, 시간이 흐른 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진실의 민낯을 드러냈다. 2018년, 에스테파니아의 남동생들이 스페인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놀라운 사실을 고백한 것이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에스테파니아가 사망한 이후 집안에서 일어난 현상의 일부분은 자작극이었다. 딸을 갑작스럽게 잃은 슬픔과 상실감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정해진 어머니가 주변의 관심과 동정을 얻기 위해 벌인 일이라는 주장이었다.
어머니는 밤마다 아이들에게 “방금 검은 형체를 보지 못했냐”며 공포심을 주입했고, 남동생들은 어머니의 강요와 강박적인 집안 분위기에 휩쓸려 밤중에 바닥을 두드리거나 물건을 던져 초자연 현상을 연출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이 고백조차도 출동했던 경찰관들이 동시에 목격하고 서명한 공식 보고서의 내용까지 완벽하게 설명하지는 못한다. 한겨울처럼 급격히 떨어지던 방 안의 온도, 옷장의 거친 움직임과 벽면의 긁는 소리 등은 여전히 단순한 착시나 심리적 조작으로만 치부하기에는 기묘한 구석이 많다.
이 사건은 2017년 스페인에서 영화 <베로니카>로 제작되었으며, 2018년 초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스트리밍되면서 “너무 무서워서 끝까지 보기 힘든 영화”로 입소문을 타며 큰 화제를 모았다.
1992년 그해 겨울, 발레카스의 작은 아파트 방 한구석을 채웠던 그 어두운 그림자는 정말로 인간의 이성 너머에 존재하는 초자연적인 무언가였을까. 아니면 소중한 이를 잃은 가족들의 지독한 슬픔과 왜곡된 집착이 만들어낸 마음의 병이었을까. 진실은 여전히 그 시절 마드리드의 차가운 밤공기 속에 미스터리라는 이름으로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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