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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로 사라진 죽음의 유령선 ‘우랑메단호’


바다는 인류에게 풍요를 주지만, 동시에 인간의 지식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기도 하다. 거대한 돛을 단 배가 선원도 없이 홀로 바다를 떠돌았다는 ‘메리 셀레스트호’의 이야기부터,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수많은 선박과 항공기까지, 바다는 언제나 설명하기 힘든 수수께끼를 품어왔다.

과학이 눈부시게 발달한 오늘날에도 해양 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깊은 바닷속에서 일어나는 이상 현상들을 완벽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수많은 해양 미스터리 중에서도 가장 기이하고 설명하기 힘든 사건을 꼽으라면 단연 이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한 편의 짜여진 연극처럼, 단 한 명의 생존자도 남기지 않은 채 모든 선원이 같은 표정으로 굳어버린 사건. 바로 ‘SS 우랑메단(Ourang Medan)호’의 이야기다.

굳어버린 시선, 움직이지 않는 선원들

말레이시아 반도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사이에 위치한 말라카 해협은 동남아시아의 주요 무역로다. 1947년 12월, 말라카 해협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무역선들로 분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변을 지나던 네덜란드 상선과 영국 선박들의 통신실에 정체불명의 조난 신호가 울려 퍼진다.

신호는 딱딱 끊어지는 모스 부호였다. 해독된 내용은 그야말로 기괴했다. 신호원은 선장을 포함한 모든 항해사가 조타실과 선교에 쓰러져 숨졌다고 전했다. 잠시 후 끊겼던 무전이 다시 이어졌고, 마지막으로 짧고 강렬한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나도 죽는다 (I die).”


이 으스스한 메시지를 끝으로 무전은 영원히 끊겼다. 가장 먼저 조난 신호를 포착한 것은 미국 국적의 상선 ‘실버 스타호’였다. 이 배의 선장은 방향을 바꿔 신호가 발신된 지점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잔잔한 바다 위에 덩그러니 떠 있는 거무스름한 선체가 눈에 들어왔다. 다급하게 조난 신호를 보냈던 네덜란드 화물선 ‘우랑메단호’였다. 외관상으로는 충돌이나 파손 등 아무런 훼손이 없는 멀쩡한 상태였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실버스타호의 수색 대원들이 로프를 타고 우랑메단호의 갑판을 밟았다. 그들을 맞이한 것은 숨이 막힐 듯한 이상한 기운이었다. 당시 날씨는 섭씨 30°C가 넘는 무더운 여름이었는데, 선체 내부에는 기이할 정도로 서늘한 냉기가 감돌았다.

갑판과 선교, 조타실 등 사방에는 선원들이 숨진 채 쓰러져 있었다. 이들 시신은 공포스러운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은 채,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상태로 굳어 있었다. 마치 무언가 보이지 않는 무서운 존재를 마주한 듯한 표정이었다.

대원들은 통신실에서 의자에 앉아 송신기에 손을 얹은 채 그대로 굳어 있는 조난신호를 보낸 신호원을 발견했다. 배에서 기르던 개 한 마리는 맹수를 만난 것처럼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자세 그대로 죽어 있었다. 선원들의 몸 어디에도 칼에 찔리거나 총에 맞은 상처는 없었다. 싸움이 일어난 흔적도 없었고, 배의 벽면이나 바닥에 핏자국 하나 남지 않았다. 모든 승무원이 물리적인 타격 없이 동시에 숨을 거둔 셈이다.


50m의 불길과 함께 사라진 증거

실버스타호의 선장은 우랑메단호를 가까운 항구로 예인하기로 결정하고 두 배를 굵은 밧줄로 연결하도록 지시했다. 수색대원들이 두 배를 연결하려던 바로 그 순간, 우랑메단호의 하부 4번 화물칸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연기는 순식간에 짙어졌고, 이내 불길이 치솟았다. 위험을 감지한 대원들은 예인줄을 끊고 급히 실버스타호로 복귀했다. 이들이 멀어지자마자 우랑메단호는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50m 이상의 불길을 뿜어내며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조난 신호를 받은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사건의 유일한 증거물이었던 선체와 시신들은 모두 수심 수천 미터의 심해로 사라진 것이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이 사건은 오랫동안 공식 기록이 확인되지 않아 단순한 해상 괴담으로 취급받았다. 사건을 입증할 배의 파편이나 시신이 단 한 구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이 사건이 단순한 유령선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는 결정적인 단서들이 세상에 나왔다.

1954년, 독일의 작가 오토 밀케는 우랑메단호의 실체를 추적한 기록물 <남태평양의 죽음의 배>(Das Totenschiff in der Südsee)를 발간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우랑메단호는 단순한 화물선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위험 물질을 비밀리에 나르던 밀수선이었다.

당시 배에 실려 있던 것은 일본군(특히 731부대)이 중국 대륙에 남겨두고 간 치명적인 신경가스와 다량의 나이트로글리세린, 그리고 사이안화칼륨(청산가리) 등 화학 무기 원료였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 유독 물질들을 담은 보관 용기가 부식되면서 바닷물이 유입되었고, 이것이 치명적인 유독가스를 발생시켰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사이안화칼륨이 수분과 반응해 발생한 가스는 흡입 즉시 온몸의 산소 공급을 차단하여 극심한 호흡 곤란과 질식을 유발한다.

선원들이 외상 없이 급사한 이유, 그리고 하늘을 향해 팔을 뻗고 눈을 부릅뜬 채 기괴하게 몸이 굳어 죽어 있던 현상 역시 이 무색무취의 독가스 중독으로 완벽히 설명된다. 가스가 기관실의 열기와 만나면서 대폭발을 일으켰다는 가설 역시 선체의 갑작스러운 침몰 원인과 일치한다.

또 다른 의문은 공식 기록의 부재다. 네덜란드와 인도네시아의 선박 관리소 어디에도 ‘SS 우랑메단’이라는 이름의 배는 등록되어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정부가 개입한 비밀 작전의 일환이었을 가능성이 강력히 제기된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놀랍게도 2003년 기밀 해제된 미국 CIA의 문서(1959년 C.H. 마크 주니어가 작성한 보고서)에는 우랑메단호 사건이 실제로 상세히 언급되어 있다. 보고서는 화물칸에 실린 미지의 무언가가 선원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을 가능성을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즉, 위험한 화학 물질을 불법으로 운송하다가 사고가 나자, 관련 국가들이 국제적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배의 모든 등록 기록을 의도적으로 삭제하고 은폐했다는 시각이다.

실제로 당시 말라카 해협 주변은 전쟁 직후의 혼란기로, 수많은 무적선(등록되지 않은 배)들이 정식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위험한 화물을 나르기도 했다. 우랑메단호 역시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화물을 싣고 가다 바다 위에서 증발해 버린 유령선 중 하나였던 셈이다. 바다는 말이 없고, 우랑메단호의 잔해는 여전히 말라카 해협의 어두운 바다 밑바닥에 누워 있다.


그날 말라카 해협을 지나던 선원들이 마지막으로 마주한 것은 치명적인 화학 가스였을까, 아니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비밀 무기였을까.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우랑메단호는 차가운 심해 속에 누워, 그날의 진실을 품은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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