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심령·공포

두 마법사의 전쟁 ‘하이게이트 흡혈귀’ 사건


인간은 누구나 미지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품고 살아간다. 과학의 발전이 인간의 이성을 증명하는 시대에도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오컬트 의식에 대한 갈망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문제는 이 은밀한 호기심이 미디어의 상업성과 만날 때 발생한다.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야 하는 언론에 오컬트는 훌륭한 자극제다. 사실 확인이 불가능한 괴담에 살을 붙이고, 자극적인 단어로 포장해 내보내면 대중은 순식간에 열광한다.

미디어가 만들어낸 선정적인 분위기는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키고, 평범한 대중을 맹목적인 집단행동으로 이끄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1970년 영국 런던 한복판에서 벌어진 기이한 소동은 바로 이러한 오컬트 의식에 대한 맹신과 미디어의 무책임한 선동이 결합했을 때 사회가 얼마나 쉽게 광기에 휩싸일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다.

13일의 금요일, 런던 한복판을 뒤흔든 유령 사냥

1970년 3월13일 금요일 밤, 영국 런던 북부에 위치한 하이게이트 공동묘지 주변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십자가와 나무 말뚝, 마늘을 손에 든 채 모여들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이들의 목표는 단 하나, 묘지 안에 숨어 있다는 흡혈귀를 찾아내 처단하는 일이었다. 첨단 과학과 이성이 지배하던 20세기 후반, 세계적인 대도시 런던 한복판에서 벌어진 이 소동은 현대 사회가 낳은 가장 기괴한 집단 히스테리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이게이트 공동묘지는 본래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만들어진 유서 깊은 곳이다. 사상가 칼 마르크스를 비롯한 유명 인사들이 묻힌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 관리 회사가 파산하면서 묘지는 급격히 황폐해졌다. 잡초와 덩굴이 우거지고 묘비가 부서지면서 묘지 안은 대낮에도 음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자연스럽게 오컬트나 흑마술에 관심이 많은 젊은이들이 밤마다 몰래 드나드는 아지트가 되었다.

사건의 불씨는 1969년 말, 지역 신문인 ‘하스테드 앤 하이게이트 익스프레스’에 실린 독자 편지였다. 묘지 근처를 지나던 주민들이 밤마다 기이한 존재를 보았다는 제보가 잇달았다.

당시 신문 기사.

목격자들은 키가 2m에 달하는 검은 옷의 남성이 허공을 떠돌았으며, 그 눈빛과 마주치는 순간 몸이 굳어버리는 공포를 느꼈다고 증언했다. 묘지 주변에서 목에 상처를 입고 피가 완전히 빠져나간 여우 사체들이 잇따라 발견되면서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두 오컬트 전문가의 위험한 라이벌전

단순한 괴담으로 끝날 수 있었던 이 이야기는 두 명의 자칭 오컬트 전문가가 등장하면서 거대한 사회적 소동으로 번졌다. 주인공은 데이비드 파란트와 숀 맨체스터였다.

데이비드 파란트는 자신이 묘지에서 직접 유령을 보았다고 주장하며 초자연적 현상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반면, 스스로를 심령술사이자 주교라고 소개한 숀 맨체스터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묘지에 나타난 존재가 단순한 유령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18세기 루마니아에서 영국으로 건너온 흡혈귀, 즉 ‘뱀파이어 왕’이 묘지 지하 무덤에 잠들어 있다가 깨어났다는 자극적인 주장을 펼쳤다.


두 사람은 지역 언론을 통해 서로를 사기꾼이라 비난하며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누가 먼저 흡혈귀를 찾아내 없애는지를 두고 자존심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미디어는 이들의 갈등을 흥미진진한 볼거리로 다루었고, 대중의 호기심은 극에 달했다.

1970년 3월 초, 숀 맨체스터는 다가오는 13일의 금요일 밤에 대대적인 흡혈귀 퇴치 의식을 거행하겠다고 공언했다. 당일 저녁에는 한 방송사가 이들의 인터뷰를 전국으로 송출했다.

방송이 나간 직후인 밤 11시쯤, 하이게이트 공동묘지 앞은 흡혈귀 사냥꾼을 자처하는 수백 명의 군중과 구경꾼으로 마비되었다. 경찰이 출동해 진입을 막았으나 흥분한 사람들은 담장을 넘고 철문을 부수며 묘지 안으로 난입했다.

묘지 안으로 난입하는 군중들(실사를 근거로 한 AI 생성 이미지).

그날 밤 진짜 흡혈귀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성을 잃은 군중은 무덤을 파헤치고 오래된 납관을 열어젖혔다. 며칠 뒤에는 지하 무덤에서 수십 년 된 시신이 꺼내져 가슴에 말뚝이 박히고 머리가 잘린 채 불타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흡혈귀라는 공포의 대상이 평범한 시민들을 잔혹한 파괴 행위자로 바꾼 순간이었다.

소동이 가라앉은 1970년 8월, 데이비드 파란트가 밤중에 묘지 근처에서 나체 상태의 여성과 오컬트 의식을 진행하다가 경찰에 체포된다. 그는 공동묘지에 무단 침입해 무덤을 훼손하고 시신을 모독한 혐의, 그리고 불법 종교 의식을 거행한 혐의 등으로 정식 기소되어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숀 맨체스터는 자신이 기어코 묘지 깊은 곳의 납골당을 찾아내 흡혈귀의 심장에 말뚝을 박고 불태워 소멸시켰다고 주장하는 책을 발간하며 논란을 이어갔다. 두 사람은 노년이 되어서도 서로를 비난하는 법정 공방을 이어갔다.

두 마법사의 대결, 상자는 실제 데이비드 파란트(왼쪽)와 숀 맨체스터(오른쪽).

대중문화의 잔영과 현대 사회의 교훈

하이게이트 흡혈귀 소동은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 당시 영국의 대중문화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당대 호러 영화계의 명가였던 해머 필름은 이 사건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받아, 현대 런던을 배경으로 드라큘라가 부활하는 내용의 영화 <드라큘라>(1972)를 제작하기도 했다.

사회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이 사건을 20세기 후반에 발생한 전형적인 ‘집단 히스테리’이자 ‘도시 전설의 시각화’로 분석한다. 당시 영국 사회는 경제적 불황과 급격한 사회적 변화를 겪고 있었으며, 방치된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의 고딕적 분위기는 대중이 현실의 불안감을 초자연적인 대상에 투사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미디어의 상업적 보도 태도와 개인의 명예욕이 결합하면서, 이성적인 시민들이 밤거리에 나와 무덤을 파헤치는 기이한 결과로 이어졌다.

군중들이 난입해 훼손한 묘지(실사를 근거로 한 AI 생성 이미지).

오늘날 하이게이트 공동묘지는 런던 자치구와 보존 재단의 엄격한 관리하에 놓여 있다. 무단 침입을 막기 위해 높은 울타리가 세워졌고, 가이드가 동행하는 제한된 투어를 통해서만 내부를 관람할 수 있다. 한때 광기와 소란으로 가득했던 그 현장은 이제 수풀과 이끼에 둘러싸인 채, 고요한 역사 속의 한 페이지로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짙은 안개가 내리는 늦은 밤이 되면, 사람들은 50여 년 전 이 아름다운 묘지를 가득 채웠던 인간들의 광기와 기이한 외침을 떠올리게 된다. 흡혈귀보다 더 두려운 것은 어쩌면 인간 마음속에 숨어 있는 실체 없는 공포와, 이를 끊임없이 자극해 이익을 얻으려는 미디어의 시선일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정락인의 사건추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