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건물과 지도 속 다리 ‘모벌리-주르댕 타임슬립’ 사건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은 늘 앞을 향해 일정하게 흘러간다. 어제는 지나간 과거가 되고 오늘은 눈앞의 현실이 되며 내일은 다가올 미래가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하지만 간혹 세상에는 시계바늘이 멈추거나 먼 옛날의 순간으로 통째로 되돌아간 듯한 기이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1901년 8월10일 여름,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조용한 정원. 영국의 지성인이라 불리던 두 여성이 길을 걷고 있었다. 옥스퍼드 세인트 휴스 칼리지의 대학원장이었던 샬럿 앤 모벌리(Charlotte Anne Moberly)와 그녀의 동료 엘리너 주르댕(Eleanor Jourdain)이었다.
이들은 여름 휴가를 맞아 프랑스 파리를 방문 중이었다. 역사적인 장소를 둘러보던 두 사람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머물렀던 작은 별궁, ‘쁘띠 트리아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이 걸음은 향후 100년 넘게 세계 미스터리 역사에서 가장 뜨겁게 논쟁이 될 ‘모벌리-주르댕 사건'(베르사유의 유령)의 시작이었다.
멈춰버린 바람과 18세기의 인물들
쁘띠 트리아농으로 들어서는 순간, 두 사람은 공기의 흐름이 이상하게 변했음을 느꼈다. 바람이 갑자기 멈췄고 주변의 나무와 풀잎은 마치 그림처럼 딱딱하게 고정되었다. 새소리조차 사라진 불길할 정도의 고요함이 정원을 채웠다. 분위기는 눌리듯 답답했고 깊은 침묵이 이어졌다.
길을 잃은 두 사람 앞에 특이한 옷차림의 남성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긴 코트에 삼각 모자를 쓰고 있었다. 두 여성은 그들을 단순한 정원사나 역사 재현 행사의 연기자로 생각했다. 그들에게 길을 물었을 때, 남성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직진하라는 말만 남겼다.
조금 더 길을 따라 들어가자 작고 동그란 모양의 그늘막 건물(키오스크)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얼굴에 곰보 자국이 있는 남성이 찌푸린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순간 한 남성이 달려와 다른 방향으로 가라고 소리쳤다. 그 남성 역시 어깨에 망토를 두른 옛날식 복장이었다.
이어서 펼쳐진 풍경은 더욱 이상했다. 정원 잔디밭 위에서 한 여성이 문구류를 들고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여름용 흰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는 넓은 챙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다. 여성은 두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훗날 모벌리는 초상화를 확인한 뒤, 이 여성이 프랑스 혁명 때 목숨을 잃은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였다고 확신했다.

몇 걸음을 더 옮기자 어디선가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현대 의복을 입은 관광객 무리가 보였고, 바람 소리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다시 들려왔다. 불과 40분 남짓한 시간 동안 두 사람이 겪은 기묘한 경험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영국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자신들이 겪은 일이 단순한 착각이 아니라고 느꼈다. 방문 당시에는 서로에게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으나, 사건 발생 3~4개월 뒤인 11월부터 각자 기억을 토대로 세부적인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당시에 보았던 정원의 나무 배치, 작은 다리의 모양, 길모퉁이에 있던 신전 모양의 작은 건물을 토대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작성했다.
그리고 베르사유 궁전의 옛 문서와 지도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몇 년 뒤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다. 베르사유 궁전의 비공개 고문서 보관소에서 18세기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의 전속 건축가가 그렸던 옛 정원 설계도가 발견된 것이다.
두 사람이 걸었던 정원의 동선과 눈으로 본 건물 배치는 1901년 당시의 모습이 아니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직전의 모습과 일치했다. 1901년에는 이미 사라지고 없던 작은 다리와 건물의 위치가 정확하게 그려져 있었다. 동그란 모양의 키오스크 건물 역시 18세기 후반에 실제로 존재했다가 이후 철거된 상태였다.

흥미롭게도 두 사람이 베르사유를 방문한 8월10일은, 1792년 파리 민중들이 튈르리 궁전을 공격하고 왕권을 정지시키며 왕가에 비극이 시작된 바로 그 날짜였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가장 그리워했던 쁘띠 트리아농에서의 행복했던 시절(1789년 이전)과 비극의 날짜가 시공간을 넘어 교차했다는 해석이 더해지며 이 사건은 더욱 드라마틱해졌다.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비판과 반론
1911년, 두 사람은 자신들의 본명 대신 ‘엘리자베스 모리슨’과 ‘프랜시스 라몽’이라는 가명으로 <어드벤처>(An Adventure)라는 책을 출판했다. 옥스퍼드 출신의 저명한 여성 지성인들이 쓴 이 책은 즉시 엄청난 화제를 모았고, 현존하는 ‘타임슬립'(Time-slip) 미스터리의 시초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수많은 학자와 검증가들이 진위 파악에 나서면서 날카로운 비판도 이어졌다.
심리학자들은 두 여성이 무의식속 지식과 환상을 섞어 기억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했다. 한 사람이 먼저 본 환각을 말하자 다른 사람도 이에 동조하는 집단 착각 현상이 일어났다는 설명이다.
가장 유력하게 제기된 현실적인 해명은 ‘착각과 연극의 결합’이었다. 당시 베르사유 궁전 정원사들이 입던 제복 역시 긴 코트에 삼각 모자 형태여서 18세기 의상으로 오인하기 쉬웠다.
또 하나는 당시 프랑스의 유명한 예술가이자 귀족이었던 로베르 드 몽테스키우 남작의 존재다. 그는 베르사유 궁전 근처에 살며, 주말마다 지인들과 함께 18세기 의상을 입고 연극을 하거나 시대극 모임을 즐겼다.
실제로 그날 남작과 그의 친구들이 정원에서 18세기 옷을 입고 모임을 진행 중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두 영국 여성은 남작 일행의 비밀스러운 연극 현장을 우연히 지나치면서, 이를 시공간이 이동한 것으로 착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두 사람 중 엘리너 주르댕은 프랑스 역사에 능통한 인물이었다. 1901년 관람 후 1911년 책을 펴내기까지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나중에 본 옛 지도와 문서의 기억이 당시 겪은 체험으로 덧씌워졌을(후광 편향) 가능성도 강력하게 제기되었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두 저자의 실제 정체도 드러났다. 이 여파로 학계 내에서 거센 논란이 일었고, 주르댕은 훗날 세인트 휴스 칼리지 내의 갈등 속에서 교장직을 사퇴하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의문이 완벽하게 풀린 것은 아니다. 연극 배우들이나 정원사가 정원에 있었다 하더라도, 100년 전에 이미 파괴되어 사라졌던 다리나 건물의 세부적 위치를 두 사람이 방문 직후 기술한 초안에서 어떻게 맞출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는다. 당시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두 여성이 거짓말을 해 명예를 실추시킬 이유도 없었다.
지금도 8월의 베르사유 쁘띠 트리아농 정원에는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 바람이 멈추고 순간의 고요가 정원을 감쌀 때, 사람들은 문득 100여 년 전 두 여성이 걸었던 그 18세기의 길목을 떠올린다. 그날 그 정원에서 진짜로 일어난 일은, 오직 멈춰버린 베르사유의 옛 나무들만이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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