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때문에’ 가수 유재하 사망사건
1962년 6월6일 경북 안동 하회마을에서 3남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탄광을 운영했던 아버지 덕분에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어릴적 그의 꿈은 가수가 아닌 음악 프로듀서였다.
1969년 서울은석초등학교에 입학한 유재하는 이때 아코디언과 첼로를 연주했고, 5학년 때부터 기타를 붙잡고 노래를 했다. 집안에 음악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일제강점기에 전국 노래자랑에 나가 2등을 했던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다.
1975년 삼선중학교에 다닐 때 그의 친형은 기타 솜씨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잘 치더라”고 감탄했다. 유재하는 음대를 가기로 진로를 정하고 대일고 재학시절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1981년 한양대 음악대학 작곡과에 입학한다. 유재하는 클래식 보다는 대중음악에 더 흥미를 갖고 젊은 뮤지션과 활발하게 교류했다. 그는 작곡뿐만 아니라 작사, 편곡 그리고 바이올린, 피아노, 기타, 키보드 등 여러 악기에 능통했다.
유재하는 클래식과 재즈를 대중가요에 접목하는 새로운 음악 장르를 지향했다.
대학 4학년 때인 1984년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키보드 주자로 발탁되면서 본격적인 대중음악 활동을 시작한다. 당시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다.
이때 조용필은 나중에 유재하의 대표곡이 되는 ‘사랑하기 때문에’를 자신의 7집 앨범에 먼저 취입한다. 같은해 11월 일본에서 발매된 조용필의 <아시아의 불꽃> 앨범에 한국어와 일본어 두 가지 버전으로 먼저 실렸다.
유재하의 그룹 활동은 뜻하지 않게 발목이 잡힌다. 대중음악 분야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학교 규정 때문에 2개월 만에 그룹을 탈퇴한다.
대학 졸업 후 군복무를 마친 그는 1986년 김현식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의 객원 멤버로 들어갔다. 여기에는 당시 촉망받는 젊은 연주자들인 김종진, 전태관, 장기호, 박성식이 멤버로 참여하고 있었다.
김현식은 건반, 기타 등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유재하를 팀에 꼭 필요한 존재라며 아꼈다. 알아주는 주당이었던 둘은 술친구이기도 했다. 멤버들이 다 같이 술을 마실 때 다른 이들이 다 나가떨어져도 둘은 밤새 마셨다고 한다.
당시 3집을 준비하던 김현식은 멤버들에게 곡을 써오라고 했고, 유재하는 그때까지 자신이 썼던 자작곡 10여곡을 모두 가져다 줬다. 김현식은 형평성을 위해 멤버 당 한 곡씩만 넣는다고 했다. 유재하는 자신의 음악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서운함에 6개월 만에 밴드 활동을 접었다. 이때 김현식이 받은 곡이 유재하 1집 수록곡인 <가리워진 길>이다.

유재하가 떠난 뒤 그룹에는 박성식이 영입되는데 그가 작사‧작곡한 것이 바로 명곡 <비처럼 음악처럼>이다.
유재하는 솔로로 독립해 데뷔 앨범을 내고 독자적인 음악의 길을 모색한다. 1987년 8월 자신의 데뷔 앨범이자 유작 앨범이 된 <사랑하기 때문에>를 서울음반을 통해 발표한다. 앨범에 실린 9곡 전곡은 유재하가 직접 작사, 작곡, 편곡까지 했다.
그러나 반응은 시원찮았다. 음악평론가들은 “음정이 불안정하다” “음악이 어렵다”며 혹평을 쏟아냈다. 당시의 평론가들은 클래식과 가요를 접목한 유재하의 앨범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던 것이다.
유재하는 MBC 방송 심의를 위해 PD들 앞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며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퇴짜를 맞았다. 거의 모든 노래가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정박자가 아닌 엇박자로 시작되는데 PD들은 이를 듣고 그를 박자도 못 맞추는 가수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KBS ‘젊음의 행진’에 나와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부른 게 유재하의 유일한 TV출연이었다. 이 영상은 유재하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방송에 출연한 모습이다.


그러다 라디오를 통해 청취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신청곡도 쇄도했다. 당시 이문세가 진행하는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한 주간 집계한 ‘별밤 차트’에서는 유재하의 ‘지난날’이 장기간 1위에 오를 정도였다.
한창 인기가 올라가던 시점에 운명이 엇갈린다.
1987년 10월31일 저녁 유재하는 동창회에 참석한다. 다음날 새벽 그는 술에 취해 운전대를 잡은 친구의 차에 올랐다. 11월1일 새벽 3시27분쯤, 유재하가 탄 승용차는 용산구 한남동 강변 북로 부근에서 중앙선을 침범해 마주오던 콜텍시와 정면 충돌한다.
유재하와 운전석에 있던 친구는 그 자리에서 사망한다. 향년 25세. 그의 주검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 있는 천주교 용인 공원묘지에 묻혔다. 무덤 앞에는 ‘사랑하기 때문에’의 악보 조각상이 설치됐다.
유재하의 아버지는 술 마시고 승용차를 운전했던 친구 부모와 콜텍시 업체를 상대로 4억1천6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다. 법원은 “승용차를 모는 친구가 술에 취한 것을 알고도 같이 타고 가다 사고가 났으면 피해자도 50%의 과실이 있다”며 “피고는 원고에게 4천460여 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유재하의 아버지는 아들의 음악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음반 수익과 성금으로 ‘유재하 음악장학회’를 설립했다. 장학회 주관으로 1989년부터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재정적 문제로 열리지 못했던 2005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대회 개최를 통해 걸출한 가수들을 발굴했다. 1회 대회 금상을 수상한 조규찬을 비롯해 유희열, 김연우, 정지찬, 방시혁, 스윗소로우 등이 그들이다.
유재하 사후 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더 높아졌다. 그의 음악에 대한 재평가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음악평론가 임진모는 “대한민국의 발라드는 이영훈에 와서 문이 열리고 싱어송라이터의 세계, 즉 창작과 작곡 편곡의 세계로 발라드의 지평으로 올린 사람이 유재하다”라고 평가했다.
1997년에는 후배 음악가들이 헌정 앨범인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를 발표했다. 앨범 발표 당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우울한 편지〉는 2003년 영화 <살인의 추억>에 삽입되면서 인기를 얻었다.
2018년 ‘한겨레’가 음원사이트 멜론, 출판사 태림스코어와 공동으로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 선정작업을 진행한 결과 1위에 유작 앨범인 ‘사랑하기 때문에가 최고 명반으로 꼽혔다.

2017년 1월에는 유재하의 앨범 제목을 빌린 영화 <사랑하기 때문에>(감독 주지홍)가 개봉됐다. 내용 전개 중 곳곳에서 이 노래가 흐른다. 2020년에는 유재하와 김현식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너와 나의 계절> 촬영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차질이 생겼다.
김현식은 생전 라디오에 출연해 “유재하라고 음악 잘하는 후배가 있었는데, 제 술친구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렇게 됐네요”라며 죽음을 애도했다. 하지만 3년 뒤 그도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 이후 11월1일만 되면 세상은 어김없이 둘의 기일을 기리며 이들을 추억한다.
비록 짧은 생애와 단 한 개의 앨범만을 남긴 유재하. 그는 한국 대중음악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의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한 여인과의 사랑과 이별, 재회 등 자전적인 이야기를 섬세한 감성으로 노래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미발표곡은 남아 있지 않지만 유재하는 가요계의 음유시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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