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1046호의 비밀’ 어둠 속으로 사라진 남자의 정체
세상에는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사건들이 존재한다.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정황, 이해할 수 없는 피해자의 행동, 그리고 현장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단서들까지. 시간이 흐를수록 진상이 밝혀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은 수수께끼 속으로 빠져드는 사건은 사람들의 호기심과 공포를 동시에 자극한다.
불 꺼진 방과 의문의 방문객들
1935년 1월2일 오후,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의 프레지던트 호텔에 한 남성이 들어섰다. 그는 옷가방 하나 없이 몸만 온 상태였다. 주머니에 든 소지품은 빗 하나와 칫솔 하나가 전부였다. 그는 숙박업소 장부에 ‘롤랜드 T. 오언(Roland T. Owen)’이라고 적었다. 주소는 로스앤젤레스라고 썼다.
프런트 직원은 그를 10층의 1046호실로 배정했다. 이 정체불명의 남성이 들어선 방에서는 사흘 동안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연달아 일어난다.
1046호실에 들어선 오언은 시작부터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그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창문의 블라인드를 끝까지 내려 바깥빛을 완전히 막았다. 조명도 켜지 않았다. 방 안은 늘 어두컴컴한 상태를 유지했다.

투숙 첫날 룸메이드(객실 정비원)가 방을 치우러 들어갔을 때, 오언은 어둠 속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고, 메이드에게 “곧 친구가 올 테니 방 문을 잠그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다음 날 메이드가 청소하러 갔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때 오언은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메모지에는 ‘돈, 곧 돌아옴’이라는 짧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메이드가 청소를 하는 동안 오언은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했다. 그는 상대에게 “아니야, 돈. 나는 밥을 먹고 싶지 않아. 배가 고프지 않아”라고 말했다.
같은 날 저녁, 메이드가 타월을 전달하기 위해 1046호실을 다시 찾았다. 방 안에서는 서로 다른 두 남자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메이드가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 안의 남성은 타월은 필요 없으니 나가라고 소리쳤다. 메이드는 어두운 방 안에서 거친 목소리의 사내를 뒤로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오언이 말했던 ‘돈’이라는 남자가 방 안에 함께 있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다.
1월4일 밤부터 5일 새벽 사이, 1046호실 주변에서는 수상한 일들이 이어졌다. 호텔 전화 교환원에게 1046호실의 전화 수화기가 내려져 있다는 신호가 들어왔다. 수화기가 제자리에 놓이지 않아 전화선이 계속 통화 중 상태로 차단되어 있던 것이다.
호텔 직원이 수화기를 바로 놓으라고 알리기 위해 1046호실을 찾았다.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불을 켜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직원이 다시 문을 두드리며 문을 열어 달라고 하자, 안에서는 “불을 켜라”는 말만 되풀이될 뿐 문은 열리지 않았다. 직원은 문밖에서 수화기를 잘 놓아달라고 말한 뒤 내려왔다.
몇 시간 뒤인 새벽에도 전화선 신호는 꺼지지 않았다. 다른 직원이 열쇠로 직접 1046호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 안은 여전히 어두웠다. 오언은 침대에 엎드려 있었고, 직원은 그가 술에 취해 자고 있다고 생각해 수화기만 제자리에 올려놓고 나왔다.
그러나 1월5일 아침에도 전화선은 여전히 통화 중 상태로 차단되어 있었다. 오전 8시30분쯤, 직원이 다시 1046호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오언을 발견했다.
오언은 손목과 발목, 목이 밧줄로 묶여 있었다. 머리와 몸 곳곳에 심한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방 안 벽면과 침대, 욕실 곳곳에는 붉은 자국이 번져 있었다. 머리뼈에는 금이 가 있었고, 목 주변에는 누군가에게 강하게 짓눌린 자국이 선명했다.

얼마 후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다. 의식이 거의 사라져 가는 와중에도 오언은 찾아온 경찰에게 뜻밖의 말을 남겼다. 그는 “혼자 욕조에 넘어졌을 뿐이다”, “아무도 나를 때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 누구의 이름도 대지 않은 채, 그는 병원으로 옮겨진 지 몇 시간 만에 숨을 거두었다.
사라진 증거와 의문의 장미
경찰 조사가 시작되면서 사건은 더 깊은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1046호실 안에는 오언의 소지품이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가 입고 온 옷과 신발은 물론이고 오언이 가져왔던 빗과 칫솔, 그리고 호텔 측이 제공한 비누와 타월, 치약까지 사라진 상태였다. 범인이 자신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모든 물건을 거두어 간 것으로 보였다. 현장에는 라벨이 잘려 나간 넥타이와 사용하지 않은 안전핀, 담배꽁초, 그리고 코드 선이 끊어진 수화기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을 뿐 범인의 지문은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더욱이 ‘롤랜드 T. 오언’이라는 이름은 가짜였다. 네브래스카주 오마하 경찰에 확인한 결과, 그런 인물의 신원 기록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문 조사와 전국적인 신원 수색에도 불구하고 그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전단지와 신문에 그의 얼굴 사진이 실렸지만,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경찰은 오언의 시신을 연방 묘지에 무연고자로 매장하기로 했다. 그런데 장례식을 앞두고 화원에 의문의 전화가 걸려왔다. 익명의 남성이 화원에 돈을 송금하며 오언의 무덤에 붉은 장미 13송이를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장미와 함께 전달된 카드에는 “내 사랑을 담아 – J(Love, J)”라는 미스터리한 서명이 적혀 있었다.
또한 지역 장례식장에도 익명의 현금 봉투가 배달된다. 그 안에는 고급 관과 장례 비용을 충당하고도 남을 액수의 돈이 들어 있었다. 편지에는 “롤랜드 T. 오언의 영면을 위해”라는 짧은 글귀만 적혀 있었다. 덕분에 오언은 무연고자가 아닌 일반 묘지에 묻혔다. 매장식에는 형사들이 잠복해 동태를 살폈으나, 돈과 꽃을 보낸 인물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사건이 일어난 지 1년 10개월이 지난 1936년 11월, 범죄 전문 잡지(Master Detective)에 실린 오언의 사진과 기사를 본 한 여성의 제보로 비로소 그의 본명이 밝혀진다. 오언의 진짜 이름은 ‘알테무스 오글트리'(Artemus Ogletree)였다. 그의 어머니는 제보를 통해 신문과 잡지에 실린 사진을 확인하고 뒤늦게 자신의 아들임을 알아챘다.
오언(오글트리)의 머리(왼쪽 귀 위쪽)에는 어린 시절 뜨거운 기름에 데이는 사고로 생긴 큰 상처가 있었는데, 어머니는 잡지 기사에서 ‘머리에 화상 흉터가 있는 신원미상 남성’이라는 문구와 사진을 보고 아들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앨라배마주 출신의 오글트리는 1934년 가을에 집을 떠나 혼자 여행을 시작했다. 집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끊겼다. 놀랍게도 그가 숨진 1935년 1월 이후부터 봄 사이, 어머니에게는 “유럽 여행을 가기로 했다”는 내용의 타자기로 작성된 기묘한 가짜 편지들이 배달되기도 했다. 누군가 오글트리의 사망 사실을 숨기기 위해 그를 사칭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왜 가명을 쓰고 캔자스시티까지 왔는지, 호텔 방에서 그를 만난 ‘돈’과 거친 목소리의 남성들은 누구였는지, 그리고 꽃을 보낸 ‘J’는 누구였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호텔 1046호실에서 일어난 일은 완벽하게 은폐되었다. 그 어두운 방 안에서 그가 끝까지 입을 다물며 지키려 했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이 당한 끔찍한 폭력을 그저 사고라 우기며 숨을 거둔 남성은, 자신이 남긴 가짜 이름처럼 세상에 숱한 의문만을 남긴 채 조용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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