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간 망치 소리가 멈추지 않은 ‘윈체스터 저택’의 비극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의 조용한 주택가에는 세계에서 가장 기괴한 건축물 중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외관은 아름다운 19세기 퀸 앤(Queen Anne) 양식의 저택처럼 보이지만, 내부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이성적인 건축 상식은 모두 무너진다.
문을 열면 3층 허공이나 단단한 벽돌 벽이 나타나고,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천장에 머리를 부딪치며 길 끝이 막힌다. 이 저택은 1886년부터 1922년까지, 무려 38년 동안 단 하루도 멈추지 않고 공사가 진행된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다. 집의 주인이자 유일한 설계자였던 사라 윈체스터는 왜 일생을 바쳐 이 복잡한 미로를 쌓아 올렸던 것일까.
비극이 불러온 막대한 유산과 영매의 예언
사건의 시작은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널리 쓰인 무기 중 하나인 ‘윈체스터 소총’에서 출발한다. 사라 윈체스터(Sarah Winchester)는 윈체스터 반복소총 회사의 후계자이자 사장인 윌리엄 윈체스터의 아내였다.
남북전쟁과 서부 개척 시대를 거치며 윈체스터 소총은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고, 가문은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하지만 부작용처럼 개인적인 불행이 잇따랐다. 사라는 딸이 태어난 지 6주 만에 희귀병으로 잃었고, 몇 년 지나지 않아 남편마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의 사망으로 사라는 가엑의 유산을 상속받았다. 당시 돈으로 2050만 달러(현재 가치로 수천억 원)와 회사의 지분 절반 가량을 물려받은 것이다. 당시 기준 하루 수입만 약 1000달러로,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매일 수만 달러가 가만히 있어도 들어오는 막대한 부였다. 그러나 홀로 남겨진 그녀는 깊은 절망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가문의 연속된 사망을 이해할 수 없었던 사라는 당시 상류층 사이에서 유행하던 영매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영매는 그녀에게 윈체스터 소총에 의해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과 미시시피강 건너편의 아메리칸 원주민, 군인들의 영혼이 가문에 저주를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영매가 제시한 해결책은 단 하나였다. 서부로 이동해 그 영혼들을 위한 집을 짓고, 망치 소리가 멈추지 않도록 평생 공사를 이어가라는 것이었다.
1886년, 사라는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 위치한 8개의 방을 갖춘 작은 농가를 매입하고 즉시 공사를 시작했다. 그녀는 전문 건축가를 고용하지 않고, 매일 아침 스케치북이나 식탁보 위에 직접 청사진을 그려 인부들에게 전달했다. 공사는 24시간 3교대로 진행되었으며, 주말과 휴일에도 망치 소리와 톱질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저택은 정형화된 형태 없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방이 늘어나면서 복도가 연결되고, 그 위에 다시 새로운 층이 올라갔다. 한때 7층 높이까지 치솟았던 저택은 160개가 넘는 방과 2000개가 넘는 문, 1만개가 넘는 창문을 갖춘 거대한 복합 구조물로 변모했다.

그녀가 설계한 구조에는 귀신을 교란하기 위한 요소들이 곳곳에 배치되었다. 귀신은 직선으로 이동하거나 계단을 바르게 오르는 성향이 있다는 당시의 민간신앙을 바탕으로, 계단 단의 높이를 겨우 몇 센티미터 수준으로 낮추었다. 지그재그 형태로 44개의 계단을 돌아 올라가야 겨우 한 층을 오를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영혼을 집속하거나 쫓아낸다는 의미를 담아 숫자 ’13’에 집착했다. 배수구 구멍, 창문 유리의 개수, 드레스룸의 옷걸이 수, 심지어 천장 패널의 조명 개수까지 모두 13으로 맞추었다. 저택 곳곳에는 거미줄 패턴의 고급 스테인드글라스를 배치했다.
문을 열면 허공, 미로가 된 괴기한 공간들
현재 저택 내부를 조사해 보면 건축학적 상식을 벗어난 구조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대표적인 공간이 바로 ‘Door to Nowhere'(어디로도 통하지 않는 문)이다. 2층이나 3층 높이에서 이 문을 열면 복도나 방이 아닌, 저택 외부의 공중과 바닥이 그대로 보인다. 문을 연 사람이 한 발만 잘못 디디면 그대로 추락하도록 되어 있는 구조다.

벽으로 막힌 문이나 천장으로 통하는 계단 역시 부지기수다. 옷장 문을 열면 단지 옷을 걸어두는 공간이 아니라 또 다른 방으로 이어지는 비밀 통로가 나타나기도 한다. 저택 중심부에는 ‘seance room'(영매의 방)이라 불리는 작은 공간이 위치해 있는데, 이곳에는 들어가는 문이 하나지만 나오는 문은 세 개로 설계되어 있어 내부 구조를 모르는 이라면 길을 잃기 쉽다.

이러한 특이한 구조는 1906년 발생한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당시 더욱 도드라졌다. 대지진으로 인해 저택의 탑층 구조물과 일부 방들이 무너져 내렸다. 사라는 이를 복구하려 하지 않고 손상된 구역을 봉쇄한 채, 4층 높이로 축소된 남아있는 구조물 주위로 다시 새로운 방을 덧붙여 나가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저택은 외부에서는 내부의 동선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완벽한 미궁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1922년 9월5일, 사라 윈체스터가 83세의 나이로 잠을 자다 사망하면서 38년 동안 이어지던 망치 소리는 비로소 멈추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직후 인부들은 작업 중이던 벽통과 목재를 그대로 두고 공사장을 떠났다. 그녀는 막대한 재산을 남겼지만, 정작 유언장에는 저택 자체에 대한 구체적인 처분 지침을 남기지 않았다. 결국 저택 내부의 가구와 소품들은 경매로 넘겨졌고, 건물은 투자자 그룹에 매각되어 관광지로 개장되었다.

오늘날의 사학자들과 건축 연구가들은 윈체스터 저택을 단지 ‘저주받은 영혼을 달래기 위한 기괴한 집’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사라 윈체스터라는 인물의 개인적 역사를 입체적으로 조명하며, 보다 현실적이고 입증 가능한 다각도의 분석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사학자들은 이 거대한 공사를 사라의 지적인 몰입이자 정서적 치유의 과정으로 해석한다. 사라는 당대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최고 수준의 교양과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었다.
남편과 살아생전 함께 나눴던 건축 및 인테리어 디자인에 대한 높은 관심은, 가족을 모두 잃은 극심한 상실감 속에서 그녀가 삶을 이어나갈 유일한 창구이자 일종의 정신적 버팀목 역할을 했다. 완벽한 완성품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도면을 그리고 구조를 바꾸는 행위 그 자체를 평생의 과제로 삼아 슬픔을 잊으려 했다는 분석이다.
경제적·사회적 관점에서의 해석도 주목받는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는 극심한 경제적 변동성을 겪던 시기였는데, 사라는 자신의 막대한 자산을 활용해 일종의 지역 사회 구제 사업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녀는 산호세 지역의 목수, 석수, 잡부 등 수많은 인부들을 지속적으로 고용했고, 당시 평균 시세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했다. 공사를 끊임없이 이어간 행위는 단순히 자아실현을 넘어, 지역 노동자들에게 안정적인 생계 수단을 꾸준히 제공하기 위한 의도적인 고용 창출이었다는 견해다.
마지막으로, 저택의 기괴한 구조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설계 지식의 부재가 가져온 현실적인 오차라는 시각이 유력하다. 사라는 정식 건축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오직 독학과 직관에 의존해 매일 청사진을 수정했다.

검증 없이 대형 건물을 지어 올리다 보니 수많은 설계상의 실수가 발생했다. 또한, 계단 단의 높이가 극도로 낮았던 것은 귀신을 쫓기 위함이 아니라 심각한 관절염을 앓던 사라 본인이 편하게 계단을 오르내리기 위한 실용적 설계였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이러한 실용적 목적과 공학적 오류들이 사라의 사망 이후 상업화되는 과정에서 귀신 이야기와 결합하고 자극적으로 포장되며 오늘날의 미스터리로 와전되었다는 설명이다.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는 상처받은 한 인물이 자신의 불행을 다스리기 위해 구축한 거대한 공간적 기록이다. 그것이 초자연적인 공포에 의한 결과였든, 혹은 개인적인 슬픔을 잊기 위한 고독한 몰입이었든 간에, 끊임없이 새로 지어지고 부서졌던 저택의 벽들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방문객들에게 인간의 집착과 치유에 대한 복잡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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