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동아그룹 회장 부인’ 배우 김혜정 횡단보도 사망사건
1941년 3월3일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마산 성호초등학교와 마산제일여고를 나왔다.
여고 재학 중 이만흥 감독의 영화 <봄은 다시 오려나>에서 기자 역으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이후 <아까시아 꽃잎 필 때>(1962), <아내는 고백한다>(1964), <육체의 문>(1965), <환희>(1967), <천년호>(1969), <나도 인간이 되련다>(1969) 등 11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해 주‧ 조연을 맡았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가 한해에 10편이 넘게 개봉되기도 했다. 1965년 제8회 부일영화상 ‘여우 주연상’을 수상했다. ‘부일영화상’은 1958년에 부산일보가 제정한 것으로 지방 최초의 영화상이다.
김혜정은 서구적인 얼굴과 글래머러스한 몸매로 다른 배우들을 압도했다.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 영화계의 첫 ‘육체파 배우’로 등극했다. 이외에도 ‘100만 불 짜리 (몸매의)균형을 지닌 배우’, ‘한국의 소피아 로렌’으로 불리며 당대 최고 인기를 구가했다.
남성들에게는 로망의 대상이었고, 여성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녀를 섭외하기 위해 수많은 영화 감독들이 러브콜을 보냈다. 이런 김혜정이 1969년 <지옥에서 온 신사>를 끝으로 28살의 나이에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당시 그녀는 기자회견을 자청 “지난 11년 간의 영화계 생활이 너무 피로해서 영화계를 은퇴, 조용한 시간을 갖겠다”고 말했다. 갑작스런 은퇴 소식에 모두들 놀랐지만 얼마 후 김혜정이 간통죄로 피소당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다.
고소인은 동아그룹 창업주의 장남인 최원석의 부인이었다. 김씨는 이같은 내용을 부인했지만 이듬해 최원석의 아이를 낳고 그와 결혼하면서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김씨와 최원석은 ‘연예인-재벌 커플 1호’다.
최고 인기배우에서 재벌가 며느리가 된 김혜정. 하지만 결혼생활은 평탄치 않았다. 두 사람은 슬하에 1남1녀를 낳고 결혼 5년 만에 갈라선다. 이혼 배경은 베일에 가려졌다.
2010년 김혜정은 ‘여성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너무 오래전 얘기라 구구절절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상대에게 실례가 될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결혼생활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김혜정과 이혼 후 동아그룹 회장이 된 최원석은 펄시스터즈 멤버였던 배인순과 재혼해 3남을 낳고 22년만에 이혼했으며, 1년 후 27살 연하의 KBS 아나운서 출신 장은영과 결혼해 11년간 살다가 또다시 이혼했다.
네 번 결혼, 네 번 이혼. 최원석의 ‘여성 편력’은 두고두고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최원석과 이혼한 후 김혜정은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서 살았다. 동료 배우들과의 모임에도 나가지 않고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오직 아이들 키우는 데만 전념했다. 미용실·목욕탕도 늘 다니던 곳만 다녔다고 한다.

한창 나이에 혼자 된 그녀에게 재혼을 권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모두 사양했다. 2007년부터는 신앙을 갖고 교회에 열심히 나갔다. 새벽기도는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이런 그녀가 2015년 11월19일 갑자기 뉴스에 등장한다. 이날 새벽 4시20분쯤 교회에 가던 중 방배역 인근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다 택시에 치여 사망했다는 비보였다.
새벽기도를 위해 이동하다 참변을 당한 것이다. 향년 74세. 고인은 경기도 안성시 유토피아추모관에서 영면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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