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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 타자 ‘이호성’ 네 모녀 살인사건


유니폼을 입었을 때 그는 늘 ‘야구 엘리트’의 길을 걸었다.

명문 광주일고를 나와 연세대를 졸업했고, 아마추어 시절부터 호타준족으로 이름을 날렸다. 연세대 재학시절 4번 타자로 활약하면서, 2차례나 타격상을 받을 만큼 재능이 뛰어났다. 4학년 때는 제15회 아시아 야구선수권대회에 국가대표로 선발돼 태극기를 달았다.

1990년 해태에 입단한 뒤에도 그의 앞길은 탄탄대로였다. 프로 데뷔 첫해부터 주전을 꿰찼고 2년 연속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에 뽑혔다. 해태가 1990년대에 차지한 4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에서 모두 주전으로 활약했다.

타이거즈 구단이 2001년 KIA로 바뀌어 그를 해태의 마지막 4번 타자로 부를 정도였다. 그는 김봉연, 김성한, 김종모, 김일권, 장채근 등 강타자가 즐비했던 해태에서도 가장 힘이 셌던 선수로 통한다. 신인 때 라커룸 벤치에 튀어 나온 못을 엄지손가락으로 눌러서 박았다는 일화가 있다. ‘차력사’라는 별명이 여기서 나왔다.

프로야구선수협의회의 주력 선수들이 퇴출을 당하자 이호성은 협의회 재건에 발 벗고 나서 2001년 1월 송진우에 이어 제3기 선수협회 회장으로 선출됐다.

하지만 구단과 마찰을 빚으면서 그해 시즌이 끝나자마자 방출됐다. 선수협 회장 경력으로 구단과 사사건건 부딪치며 은퇴식 없이 은퇴를 하게 됐다. 프로선수 시절 통산전적(1990~2001)은 타율 0.272, 홈런 102, 도루 167, 타점 526을 기록했다.


이호성은 광주를 거점으로 한 웨딩 사업가로 변신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호성 웨딩홀’을 차렸는데 처음 2년 간은 돈을 긁어 담는다고 할 정도로 잘 나갔다. 직원 70여명을 거느리고 연간 매출액이 약 80억 원에 달했다. 광주뿐만 아니라 순천과 목포에까지 분점을 낼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이호성의 꽃 피는 시절도 여기까지였다. 2003년 사업 영역을 넓힌다며 ‘실내 화상 경마장’에 뛰어든 것이 돌이킬 수 없는 화를 불렀다. 투자자를 모아 40억 원을 마련한 뒤 화상 경마장을 차리려고 전남 순천시 덕암동에 오피스텔을 지었다. 그해 10월 한국마사회로부터 화상경마장 허가를 따냈지만 시민단체의 반발로 농림부 허가가 늦어졌다.

결국 2005년 6월31일 100억 원대의 초대형 부도를 맞았다. 이후 조직폭력배들한테서 고이율의 사채를 쓰면서 파멸의 구덩이로 점점 빠져 들어갔다.

2005년 11월 이씨는 부동산 투자 사기사건(사기와 사문서 위조)에 연루되면서 구속됐다. 공인중개사 박아무개씨(47) 등이 그를 끌어들여 “충남 연기군 등 신행정수도 건설지역에 투자하면 시세 차익을 챙겨 주겠다”며 투자자로부터 37억 원을 받아 챙긴 것이 문제였다.

이씨는 당시 경찰에서 기자들과 만나 “운동선수만 하다 사회 물정을 너무 몰라 벌어진 일이다. 사회 경험이 없어 아무나 쉽게 믿었던 것이 큰 화근이었다”며 고개를 숙였다. 2개월쯤 복역하다 보석으로 풀려난 그는 조폭인 조아무개씨(41) 등과 어울리며 스크린 경마장 사업을 다시 추진하다가 2006년 11월 농림부의 승인 취소로 끝내 물거품이 됐다.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던 이씨는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자 서울로 달아나 잠수를 탔다. 아슬아슬하게 이어가던 가정도 깨졌다. 그가 부도를 맞고 교도소에 들어갔다 나오는 사이 가정불화가 끊이지 않으면서 협의 이혼했다. 그에게는 당시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있었다.

신용불량자가 된 이씨는 야구계 선후배와도 연락을 끊은 채 외톨이가 된다. 이후 그는 주로 서울에 머물렀다. 2007년 2월쯤부터 은평구 갈현동의 횟집을 드나들다가 주인인 김아무개씨(여·46)를 알게 된다. 김씨는 3월에는 신용불량자인 이씨에게 자신의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해 줄 정도로 가까워졌다.

같은 해 7월 김씨의 남편이 용산의 한 모텔에서 돌연 유서를 남기고 목을 매 숨졌다. 남편이 사별한 직후부터 이호성과 김씨 사이에 결혼 얘기도 오갔다. 김씨 주변에서는 두 사람이 곧 재혼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김씨가 운영하는 식당의 종업원은 “김씨가 친구에게 ‘남편이 자살했다. 남편에게 우울증과 의처증, 성도착증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호성은 김씨와 부부행세를 했다.

김씨는 10월에 자신이 살고 있던 홍제동 집을 팔았다. 이후 이씨와 함께 마포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를 찾아가 아파트를 전세 2억 원에 계약했다. 이들은 계약 직후 이 집이 가처분 신청된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자 중개업소에 강하게 항의했고 부동산 업자는 “우선 전세금 중 3천만 원만 집주인에게 건네고 1억7천만 원은 가처분이 풀리면 보내기로 하자”며 계약을 마무리지었다.

김씨는 이렇게 전셋집을 얻으며 재혼할 꿈에 부풀어 있었다. 김씨의 딸도 주변 친구들에게 이씨를 “어머니와 재혼할 아저씨”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이씨의 생각은 달랐다. 그에게는 또 다른 여성이 더 있었다. 2007년 8월 술집에서 만난 차아무개씨(40)였다.

차씨는 남편과 별거 중에 이호성을 만났고 같은 해 12월부터는 동거에 들어갔다. 김씨와 부부 행세를 하던 이씨는 차씨와 동거를 하며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김씨와 차씨는 서로의 존재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이호성과 김씨의 파국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2008년 1월 말 가처분이 풀리자 중개업자는 남은 전세금을 집주인에게 보내줄 것을 요청했고 김씨는 2월20일에 주기로 했다. 2월15일 김씨는 정기예금을 해지하고 1억7천만원을 현금으로 인출해 5개 은행에 나눠 예치했다. 이 돈으로 아파트 전세금의 잔금을 치를 예정이었다.

2월18일 김씨는 퇴근하면서 횟집 종업원들에게 “며칠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연락이 두절됐다. 김씨의 첫째 딸(20), 둘째 딸(19)과 셋째 딸(13)도 연락이 끊겼다. 2월20일 김씨의 오빠는 동생에게 연락을 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2월24일에는 동생과 조카들에게 재차 연락을 시도했으나 모두 불통이었다. 3월3일, 김씨의 딸들이 학교 개학 날짜가 됐는데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김씨의 오빠는 식당에도 찾아갔지만 종업원들에게 “사장님이 출근하지 않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오빠는 동생 가족들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고 판단하고 경찰에 실종 신고를 접수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김씨 집으로 출동했고, 집에서는 혈흔이 발견됐다. 아파트 폐쇄회로(CCTV)를 확인한 결과 2월18일 오후 9시~10시30분 사이 검은 옷에 모자를 눌러 쓴 한 남자가 짐 가방을 나르는 모습이 포착됐다.

의문의 남자는 손수레를 끌고 김씨 집에 들어갔다가 수차례 큰 가방을 가져다 날랐다. 경찰은 이 남자가 흰색 SM5 차량에 가방을 싣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이웃의 진술도 확보했다.

김씨 소유의 이 차량은 2월19일 오후 3시쯤 전남 장성 구간 고속도로 톨게이트 CCTV에 포착됐고, 20일 오후 8시쯤 김씨의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한 남자가 이 차를 세워두고 황급히 자리를 뜨는 장면이 CCTV에 찍혔다. 경찰은 또 실종 다음날인 19일 김씨 큰딸의 휴대전화가 전남 화순 일대에서 켜졌던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네 모녀가 살해된 것으로 판단하고 3월7일 이호성을 용의자로 특정해 출국금지 조치했다. 경찰은 이호성을 추적하면서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3월8일 SBS가 ‘네 모녀 실종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이호성’이라고 보도하면서 차질이 생겼다.

경찰은 3월10일 오전 공개수사로 전환하고 이호성에 대한 수배령을 내렸다. 같은 날 오후 3시8분, 한남대교와 반포대교 구간에서 한 남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지문감식 결과 이호성으로 밝혀졌다. 사망원인은 ‘익사’로 확인됐다. 그의 나이 41세였다.

이호성의 시신을 순천향병원으로 이송한 중앙응급환자이송단의 한 요원은 언론을 통해 “그렇게 무서운 시신은 처음 봤다”며 “이씨의 시신은 뭔가 한이 맺힌 듯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얼굴 표정도 보기에 무서울 정도였다”며 끔찍했던 상황을 전했다. 이 요원은 “보통 익사한 경우와는 달리 이처럼 경직된 시신은 지금껏 보지 못한 모습”이라며 “뛰어내릴 순간 아주 강하게 마음을 먹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10일 저녁 11시쯤,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새로운 제보가 들어왔다. 이호성으로 보이는 사람의 부탁으로 전남 화순군 동면 청궁리 공동묘지 근처에 비석을 세울 구덩이를 파 줬다는 내용이었다. 이곳은 이씨 부친의 묘가 있는 선산이다.

경찰이 즉시 현장으로 가서 그 구덩이를 파서 확인한 결과, 네 모녀의 시신이 발견됐다. 시신은 각각 1개의 가방 안에 두꺼운 비닐로 싸여 있었다.

엄마 김씨와 둘째, 셋째딸은 평상복 차림, 큰딸은 외출복 차림이었다. 김씨는 뒷머리 쪽에 4㎝정도 둔기에 맞은 상처가 있었고, 큰딸은 앞뒤와 왼쪽 머리가 함몰된 상태였다. 또 왼쪽 광대뼈와 눈, 다리 등에 상처가 많았다. 둘째딸은 얼굴에서 멍 자국이 발견됐다. 셋째딸은 오른쪽 광대뼈가 부어올라 있었다. 시신 상태로 미뤄 둔기 등에 의해 살해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경찰은 이호성이 집 안에서 김씨와 두 딸을 살해한 후 외부에 있던 큰딸에게 김씨의 휴대전화로 불러낸 뒤 둔기로 살해한 후 함께 유기한 것으로 판단했다. 휴대전화 통화기록과 기지국에 잡힌 신호를 통해 알 수 있다.

이호성의 시신이 발견된 후 경찰은 이씨의 동선과 1억7천만원의 행방을 찾는데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실종 당일 김씨가 현금을 인출한 후 은행 앞에 서 있던 흰색 차량 조수석에 올라타는 모습이 CCTV를 통해 확인됐다. 경찰은 이호성이 자동차를 운전했던 것으로 추측했다.


경찰 수사를 통해 이씨의 행적도 드러났다. 그는 김씨 모녀를 살해한 다음날인 2월19일 곧바로 고향인 광주로 내려가 1천 만 원을 빚 진 이아무개씨(여·47)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친형 명의의 통장에 입금해달라며 현금 5천만 원을 건넸다.

이호성은 또 이씨 명의로 빈 통장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는 일주일 뒤 전주 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이씨를 다시 만나 5천만 원이 입금된 이 여인 명의의 통장을 건네며 4천만 원은 내연녀인 차씨에게 보내고 천만 원은 빚을 갚겠다고 했다.

경찰 수사가 시작된 뒤인 3월7일 경기도 일산에서 30대 여성 차모씨를 만났으며 다음날은 차씨와 함께 호텔에 투숙했다. 이어 9일 오후 11시쯤 차씨와 함께 택시를 타고 성수대교로 이동해 술을 마시면서 대화를 나눈 후 차씨만 귀가시켰고, 1시간 뒤에 차씨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씨는 마지막 31시간을 내연녀인 차씨와 함께 보냈던 것이다.

이호성이 범행이후 자신의 형에게 편지를 보낸 사실도 확인됐다. 여기에는 과거의 돈거래 문제와 가족에 대한 미안함, 특히 아들을 잘 챙겨주라는 부탁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이어 광주시 야구협회장에게 보낸 편지에는 “야구 협회장을 축하하고 옛 시절이 행복했다”며 “하늘나라에 먼저 가 있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경찰은 이 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자살하면서 ‘공소장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범행 동기에 에 대해서는 “1억7천만 원을 가로채기 위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하지만 의문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호성에게는 200억 이상의 빚이 있었던 상태. 1억7천 만원 때문에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이씨 주변 인물들은 이씨가 2억 원도 안 되는 돈 때문에 4명을 살해했다는 것에 고개를 흔들고 있다. 특히 이씨가 빚을 갚느라 쓴 1억 원 외에 남은 7천만 원의 행방은 지금까지 오리무중이다.

한때 화려한 프로야구 선수 시절을 보낸 왕년의 스타 이호성.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은 씁쓸했다. 광주 모 장례식장에 차려진 빈소에는 조문객이 거의 없었으며 영정 사진도 흰 수건에 덮였다. 유족들은 장례식장 입구의 빈소 명단에도 이호성의 이름을 올려놓지 않았고, 빈소의 대기실 방문을 닫은 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유족들은 이호성의 시신을 아버지 묘가 있는 화순의 교회 공동묘지에 매장하려 했으나 교회 측에서 난색을 표해 무산됐다. 결국 이호성의 시신은 화장터로 옮겨져 화장돼 한 줌의 재로 허무하게 사라졌다.

풀리지 않은 의문

조폭 동업자의 실종과 김씨 남편의 자살

이호성 사건은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다. 유력 용의자인 이씨가 자살하면서 의문은 꼬리를 물고 있다. 특히 피해자인 김씨 남편의 사망과 이호성 동업자인 광주지역 모 조직폭력배 행동대원의 실종은 석연치 않다.
김씨의 남편은 그녀와 이씨가 교제하는 과정에서 사망했다. 그가 사망한 후 김씨와 이씨는 부쩍 가까워졌고 재혼 이야기가 오고 갔다. 몰론 자살로 처리되기는 했으나 이 죽음에 이호성이 관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호성과와 함께 순천 실내경마장 사업을 추진해왔던 조아무개씨는 2005년 8월3일 오후 6시쯤 광주시 서구 상무지구 모 호텔 앞길에서 이씨를 만났다. 조씨는 사업주체인 이씨에게 사업비 명목으로 돈을 받아 투자자 모집에 나섰으나 큰 성과를 올리지 못하면서 갈등이 빚어졌다.
조씨는 이날 이씨를 만난 뒤 친구·아내와 통화를 한 뒤 연락이 끊겼다. 조씨가 이씨를 만나러 나간 지 사흘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그의 아내는 경찰에 실종신고를 접수했다. 경찰은 조씨가 채무 문제를 고민했다는 첩보를 접하고 스스로 잠적한 것으로 판단, 사건을 종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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