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사건실종사건

사라진 약혼자 김명철 실종사건


2010년 6월12일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 대 그리스전을 앞두고 있을 때 였다.

이날 오후 결혼을 넉 달 앞둔 김명철씨(32)는 약혼녀 A씨의 친구인 사채업자 이아무개씨(남‧32)의 전화를 받았다.

기업연수회의 이벤트 진행자였던 김씨에게 “일감을 알선해 주겠다”며 알선업자인 ‘최실장’이라는 사람을 소개시켜주겠다고 했다. 오후 5시30분쯤 김씨는 이들을 만나러 간다며 집을 나섰다. 이때 김씨는 A씨의 신용카드를 가져갔다. 일을 하는 도중 술 접대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자신보다 한도가 높은 약혼녀의 카드를 빌려갔던 것이다.

김씨는 A씨에게 “돌아와서 월드컵 응원을 하러가자”고 약속했다. 그의 집에서 약속장소까지는 도보로 7분쯤 걸리는 가까운 거리였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A씨는 김씨의 이름으로 보낸 이상한 문자를 받는다.

“너의 과거와 돈 문제 등으로 힘들었고, 다른 여자가 생겼다. 우린 따로 잠적할테니 연락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같이 월드컵 응원하자고 한 김씨가 느닷없이 문자 하나로 이별을 통보하자 A씨는 황당했다. A씨는 수십 차례 김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그러다 김씨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받아보니 어떤 여성이었다.

그 여성은 “명철씨가 너로 인해 힘들어 하니 더 이상 찾지 말라”며 전화를 끊었다. 김씨의 어머니에게도 “돈을 많이 빌려서 당분간 잠적하겠다. 죄송하다”는 내용의 휴대전화 문자가 왔다.


그 날 이후 김씨는 더 이상 연락이 없고, 그의 흔적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김씨의 가족들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는 평소 사생활이 복잡하지 않았고, 돈이나 여자 문제도 없었다. 이런 사람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잠적할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다. 김씨의 가족들은 실종 2일 뒤인 6월14일 성남수정경찰서에 실종신고를 접수한다.

그러나 경찰은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서지 않았다. 김씨가 약혼녀와 가족들에게 보낸 문자를 이유로 ‘단순 가출’로 판단했다. 김씨의 가족들이 다음 아고라 등에 적극적으로 의혹제기를 하자 그때서야 범죄관련성이 높다고 보고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실종 당일 김씨가 만난 사채업자 이씨를 불러 당시 상황을 추궁했다.

이씨는 “명철의 차에서 최실장과 함께 사업얘기를 나눴고, 그 후 명철이 최실장으로부터 계약금 3천만 원을 건네받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추가로 돈을 빌려달라고 해 명철의 차를 담보로 차용증을 작성한 뒤 2천500만 원을 대출해줬다고 했다.

돈을 모두 받은 김씨는 평소 사용하던 휴대전화가 아닌 다른 휴대전화로 전화를 받고 “중동터널에서 다른 사람을 만난다”며 차를 두고 떠났고, 그렇게 김씨와 헤어졌다는 것이다. 이씨는 김씨에게 받아둔 차용증과 대출서류를 보여주면서 자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씨는 그런 거금을 빌릴 이유가 전혀 없는 인물이었다. 학자금 대출이 약간 남은 것 빼면 빚은 거의 없었다. 김씨의 가족들도 이씨의 말은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김씨의 자동차는 1천만 원을 주고 산 중고차로 이것을 담보로 2천만 원이 넘는 돈을 대출해 줬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했다.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김씨는 평소에 문자를 보낼 때 띄어쓰기를 잘 하는데, 약혼녀와 어머니에게 온 문자에는 띄어쓰기가 하나도 되어있지 않았다.


이를 수상히 여긴 약혼녀 A씨가 자신의 홈페이지를 확인해보니, 사채업자 이씨가 남긴 글들에 모두 띄어쓰기가 되어있지 않았다. 김씨가 보냈다는 문자가 실제로는 이씨가 보낸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이씨와 함께 김명철씨를 만났다는 최실장도 유력 용의자로 수사를 받았다. 최씨의 진술은 충격적이었다. 그는 경찰에서 실종 당일 김씨를 만나 술을 마셨고, 이씨의 사주로 미리 준비한 수면제를 이용해 그를 잠들게 했다.

이후 김씨가 의식을 잃자 ‘00장식’이라는 사무실로 옮겼다는 것이다. 이씨와 최실장이 김씨를 업고 ‘00장식’ 사무실에 들어가는 것을 본 목격자도 있었다.

이곳은 이씨가 사건발생 3일 전부터 한 달간 임차해놓은 폐업한 인테리어 점포였다. 인근 부동산 직원의 말에 따르면 임대할 사무실을 찾던 이씨가 요구한 조건은 두 가지였다.

사무실에 물이 나와야 하고, 소음이 좀 나더라도 괜찮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씨는 사무실을 빌린 뒤 밖에서 안을 볼 수 없게 종이로 모두 발라놓았다. 해당 사무실의 아래층에는 댄스 교습소가 있어 사무실에서 나는 소리가 밖에서 제대로 들리지 않는 구조였다.

김씨가 실종된 지 5일 후 00장식에서 이씨가 물청소를 한 것이 목격되고, 사용된 물의 양이 전달에 비해 40톤이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월별 평균 물 사용량은 40~50톤이었는데, 사건이 발생한 6월에만 ‘물청소’ 명목으로 무려 89톤이 사용됐던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00장식 내부에서 김씨의 혈흔과 머리카락이 발견됐다.

경찰이 김명철씨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해보니 실종당일 이씨(아래 사진)와 만나기로 한 인근지역에서 신호가 끊긴 것을 확인했다. 김씨가 실종되던 날 이씨가 내과에서 일주일 치의 수면제 처방을 받아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경찰은 이런 정황을 대며 이씨를 추궁했지만 그는 끝까지 범행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쥐를 잡다 피가 튀었고, 그것을 청소하기 위해 많은 양의 물을 사용했다고 했다가 김씨와 몸싸움이 있었고, 다툼 후 김씨가 도망갔다며 끊임없이 진술을 번복했다.

이씨가 김씨의 약혼녀인 A씨를 오래전부터 짝사랑해왔다는 사실도 새롭게 드러났다. 공공연히 A씨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고, 결혼을 앞둔 시점에 “결혼은 식장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모르는 것”이라는 말을 하며 A씨의 홈페이지에는 다정스러운 글들을 남겼다는 것이다.


이렇게 김명철씨 실종과 관련된 모든 의문은 이씨를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다. 무엇보다 살인을 입증할 물적 증거가 부족했다. 또 시신이 발견되지 않는 이상 김씨가 살해됐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경찰은 김씨의 시신을 찾으려고 사건 후 이씨가 이동한 것으로 확인된 폐기물 처리장, 하수처리장, 탄천, 한강 둔치 등에 대해 대대적인 수색을 실시했으나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씨와 최실장은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됐고 1심에서 징역 15년형이 선고됐지만, 항소심에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집단, 흉기 및 감금)만 인정돼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유력 용의자 이씨.

이후 이씨는 이 사건과는 별도로 ‘17억 보험 집단 살인사건’에도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 추가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이씨 등은 2008년 3차례에 걸쳐 박아무개씨(28) 명의로 17억원의 생명보험을 가입한 후 수령자를 이씨로 변경했다. 그리고 매달 157만원의 보험료를 냈다. 범인들은 2009년 5월 경기 성남시 한 건축사무실 화장실에서 박씨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순간 가스온수기를 틀어 샤워 중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처럼 위장해 살해했다.

이후 보험금 17억원을 타내려고 했으나 보험사가 이들을 의심해 소송을 통해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사망한 박씨와 실종된 김명철씨 모두 수면제를 먹은 상태였다.


이씨의 또 다른 범죄경력도 드러났다. 그는 중학생이던 1993년에 쌍둥이 형제와 함께 살인을 했고, 동네 노인들을 대상으로 상습적인 자동차 사고를 일으켜서 보험금을 타낸 상습 보험 사기범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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