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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SG워너비’ 출신 가수 채동하 사망사건

1981년 6월23일 서울 강서구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최도식이다.

명덕고등학교와 서울예술대 방송연예과를 졸업했다. 유년시절 부모가 이혼해 줄곧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어머니는 재봉일을 하며 생계를 책임졌고 아들을 뒷바라지 했다.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심장질환(심실중격결손증)이 있어 6살 때 수술을 받았다. 심실 판막에 구멍이 있어서 피가 역류해 숨을 못 쉬는 병이다.

채동하의 어머니는 아들이 자다가 숨을 멈추면 토닥여서 숨을 틔워주려고 매일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그는 이 병으로 군 면제를 받았다. 한때 가슴 수술 자국을 콤플렉스로 여겨 흉터 축소 수술을 받기도 했다.

2002년 1집 ‘네이쳐(Nature)’를 발표하며 타이틀곡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라는 곡으로 데뷔했다. 당시 잘생긴 외모와 가수 조성모와 박효신을 섞은 듯한 가창력으로 찬사를 받았다.

그 후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소속사가 부도나면서 잠시 침체기를 맞았다. 2년 뒤 새로운 기획사를 통해 김진호‧김용준과 함께 3인조 보컬 그룹 ‘SG워너비’로 활동을 재개한다.

SG워너비는 2004년 1월 얼굴 없는 가수로 데뷔, 앨범과 뮤직비디오만으로 정규앨범 한 장에 동시에 여러 곡을 히트시키는 최초의 가수였다.

대표곡인 <살다가>와 <아리랑>을 포함해 <죽을 만큼 사랑했어요> <타임리스> <내 사람>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내며 인기그룹으로 올라섰다. 앨범 판매량 1위, 골든디스크 대상 2회, MKMF 대상 수상 등 고공행진하며 인기 절정에 올랐다.

채동하는 팀의 리더이자 서브보컬로서 특유의 섬세한 감성표현과 고음처리로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개인적으로 어려운 생활에 보탬이 된 것은 2집부터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SG워너비 2집이 크게 히트한 후부터 수익이 들어왔고, 1집 때는 돈을 못 벌었다”며 “우리 노래가 곳곳에서 흘러나왔지만 연습실 갈 차비가 없어 엄마 몰래 새벽에 신문을 돌렸다. 1천원이 아쉬웠던 때”라고 말했다.

그러나 채동하는 4집을 끝으로 2008년 5월 SG워너비를 떠나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탈퇴 당시 그는 연기자와 뮤지컬 배우 등 여러 영역에서 활동하길 원했으나 소속사는 멤버들이 음악 활동에만 전념하기를 원하면서 마찰을 빚었다고 알려졌다.

1년6개월의 공백기를 가진 채동하는 2009년 9월 솔로 2집 <에세이>를 발표한다. 데뷔초기부터 팀 탈퇴 공백기 등 아픈 시간들을 담담히 고백하는 일기형식의 글과 40쪽이 넘는 화보형식의 앨범이다.

하지만 앨범 발표 연습 중 찾아온 목디스크 증세가 심해지면서 활동을 중단한다. 많은 공을 들인 2집 앨범 활동은 목디스크에 발목이 잡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음반 판매량 자체는 나쁘지는 않았으나 기대에는 크게 못 미쳤다.

2010년에 접어들며 채동하는 새 미니앨범 출시를 준비했다.

해외를 다니며 음악적 영감을 얻어 새 미니앨범 작업에 쏟아 부었다. 그해 9월 <바닐라 스카이>를 타이틀로 한 미니앨범을 발표하며 절치부심 끝에 복귀했다.

전체 앨범의 프로듀서를 맡고 자작곡도 5곡을 수록했을 만큼 열정을 쏟아 부었다.

이후 채동하는 주로 일본에서 솔로 프로모션을 진행하며 국내 가수들과 합동으로 한류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2011년 1월에는 V.O.S 출신 박지헌과 함께 옴므 듀엣을 결성해 <어제 같은데>를 발매했지만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다 2011년 5월27일 오전 서울 은평구 불광동 자신의 아파트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된다. 옷방 행거에 넥타이로 목을 맨 상태였다.

그의 매니저는 전날 밤 채동하와 연락이 닿지 않자 이날 오전 11시쯤 집을 찾았으나 현관문이 닫혀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매니저는 119에 신고해서 베란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고, 옷방에서 채동하의 시신을 발견했다. 발견 당시 휴대전화에 연결된 이어폰을 귀에 꽂은 상태였고 옆에는 의자가 넘어져 있었다.

채동하는 이날 일본 공연이 예정돼 있어 전날 일본으로 출국할 예정이었으나 일정을 지키지 않았다.

경찰은 고인이 성공에 대한 부담감과 우울증 등을 이유로 자살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채동하가 오래전부터 우울증을 앓아 통원치료를 받고 있었다는 매니저의 진술, 식탁 위에서 약봉지가 발견된 점을 들었다. 숨지기 4일 전에는 불안감과 불면증 증세를 호소하며 인근 병원을 찾아 8일치 약을 처방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채동하의 우울증에는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있었다. 솔로 1집에 이어 7년 만에 발표한 2집 역시 인기를 끌지 못했고, 이로 인해 심적으로 무척 힘들어했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국내·일본 활동의 압박감도 상당했다.

채동하에게는 데뷔 전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다. 2005년 5월 KBS2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SG워너비 멤버들과 함께 출연한 채동하는 이상형을 묻는 질문에 “2년 전 내가 정말 사랑했던 친구”라며 “오늘이 그 친구(여자친구)의 기일”이라고 답해 주변을 숙연케 했다.

이어 “가끔 누군가 이상형을 물어볼 때면 꼭 그 친구 생각이 난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슬픈 노래를 부르면서 감정을 잡을 때 문득문득 그 친구 생각이 난다”고 밝혔고, ‘살다가’를 부르며 눈물을 삼키기도 했다. 2006년 채동하는 같은 소속사였던 씨야 멤버 이보람과 열애했지만 1년6개월 만에 결별했다.

채동하의 첫 매니저였던 장아무개씨는 2009년 7월 경남 통영의 한 모텔에서 연탄불을 피워놓고 자살했다. 당시 채동하는 장씨의 죽음에 가장 슬퍼했다. 그는 장씨의 빈소를 3일 밤낮으로 지켰을 뿐만 아니라 2009년 발표한 앨범을 통해 장씨에 대한 그리움을 전하기도 했다.

채동하는 앨범에 “나에겐 첫 키스보다 더 짜릿했던 순간이 있다. 내 생애 첫 매니저. 나의 위로였던, 나의 친구였던, 내 형이었던 한 사람. 그 사람을 만난 순간, 세상의 모든 것을 얻었다. 2009년 7월 9일 그는 더 이상 내 옆에 없다. 심장의 절반이 날아간 듯하다. 아직도. ‘형 행복해야해 알았지? 꼭 행복해야해…’“라고 남기기도 했다.

평소 우울증을 앓았던 채동하는 형처럼 믿고 따랐던 장씨의 자살 이후 힘든 시기를 지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것들이 채동하를 심리적으로 괴롭히고 압박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의 빈소는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 차려졌다. 사촌 형이 대신 상주로 이름을 올렸고, SG워너비로 함께 활동한 김용준, 김진호가 상주 역할을 하며 조문객들을 맞았다.

많은 동료 연예인들이 빈소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채동하의 부친도 외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장례식장을 찾았다.

대중들에게 감미로운 목소리로 음악을 선사했던 채동하. 그는 이렇게 한 줌의 재로 변해 장지인 분당 스카이캐슬 추모공원에 영면했다. 향년 30세였다.

SG워너비 멤버인 김진호가 2013년 2월13일에 발매한 정규앨범 수록곡인 <안개꽃>이 채동하를 추모하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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