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여배우 강남 산부인과 ‘프로포폴’ 사망사건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는 H산부인과가 있었다.
지난 2011년 6월쯤, 신인배우 A씨(여‧30)가 병원에 찾아왔다.
그녀는 의사 B씨(남‧45)에게 진료를 받았다. 이후 A씨는 “피곤하다”며 병원을 찾았고 B씨는 그때마다 영양제를 놔줬다.
차츰 두 사람은 자주 식사를 할 정도로 친해졌다. 급기야 B씨는 A씨 집에 드나들기 시작했고 성관계를 맺으며 내연관계로 발전했다. B씨는 성관계를 맺을 때마다 A씨에게 수면유도제인 프로포폴을 투여했다.
2012년 7월30일 오후 8시54분 B씨는 “언제 우유 주사 맞을까요”라는 문자를 보냈고, A씨는 “오늘요”라고 답했다. A씨는 오후 11시쯤 B씨의 진료실에 도착했다.
우유주사는 흰색인 수면마취제 ‘프로포폴’을 지칭하는 은어다. 잠을 푹 자게 해 피로를 풀어준다고 해서 의사나 유흥업소 종업원 사이에서 ‘힘주사’라고도 불린다.
오후 11시15분쯤 B씨는 제왕절개수술을 마친 수술실에서 다른 의사와 간호사 몰래 약물을 가져왔다. A씨가 보는 앞에서 링거 한 병에는 생리식염수와 수면유도제 미다졸람을 섞었다.
그리고 포도당 영양제 1L가 담긴 나머지 링거에 수술용 마취제의 일종인 나로핀, 베카론, 리도카인 및 비타민제 비콤, 진통제 케로민, 항생제 박타신 등 13종류의 약품을 섞었다.
‘나로핀’은 환자 수술시 쓰이는 국소마취제로 심장세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독성이 있어 혈관투약은 금지돼 있다. ‘베카론’ 역시 전신마취를 위해서만 사용하는 근육이완제로 약물을 투여할 경우 자발호흡이 정지돼 외부적인 호흡이 가능하도록 호흡대체기를 놓아둬야 하는 위험 약물이다.
나로핀과 베카론은 투약방법이 달라 동시에 투여할 경우 환자가 사망에 이를 수 있다.
A씨는 낯선 약들이 불안했던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베카론, 리도카인, 박타신의 용도를 검색했다. 자정 직전 두 사람은 진료실에서 나와 산모가 입원하는 병실로 이동했다.

B씨는 링거를 통해 A씨의 왼쪽 팔 정맥에 준비된 약물을 주사했다. 이어 둘은 성관계를 가졌다.
오전 1시50분쯤 B씨는 황급히 병실에서 나와 청진기와 펜라이트를 찾아 들고 병실에 다시 들어갔다. A씨가 갑자기 호흡정지를 일으키자 B씨는 간호사를 부르지 않고 혼자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오전 2시40분쯤 A씨가 숨지자 B씨는 병실 밖으로 나왔다. 약 2시간 후인 오전 4시27분 B씨는 A씨의 시신을 휠체어에 태웠다. 살아있는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얼굴에는 마스크를 씌웠다. 병원 밖으로 나온 B씨는 경비원이 “옮기는 걸 도와드릴까요”라고 말하자 “아내가 몸이 안 좋아서 휠체어를 쓰고 있다. 내가 직접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B씨는 시신을 자신의 차에 싣고 자신의 집으로 가서 아내에게 다른 차를 몰고 따라오라고 한 뒤 다시 병원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이어 시신을 숨진 A씨의 아우디 승용차에 옮겨 싣고 한강공원 잠원지구로 이동해 수영장 옆 주차장에 차량을 버렸다.
그는 뒤따라 온 아내 C씨의 차량을 타고 도주했다. 이날 오후 A씨의 시신이 주차된 차량 조수석에서 발견됐고, 경찰이 감식에 나섰다. 이때 B씨가 변호사와 함께 서초경찰서를 찾아가 자수했다.
이 과정에서 언론 보도 등을 통해 피해자 A씨의 자세한 신원이 드러났다. 그녀는 서울 유명 대학의 연기관련 학과를 졸업했으며, 대학 2학년 때부터 각종 지상파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정도로 촉망받았다. 유명 연예인이 소속된 기획사에서 전속 계약까지 맺고 있었다.
A씨와 대학을 함께 다녔던 한 배우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신입생 때부터 A씨 주위에는 이미 데뷔한 모델, 연기자 친구들이 많았다. 자신감도 넘쳤고 성격도 밝고 활달해서 친구들이 많았다”면서 “TV에 종종 출연하기도 해서 잘 적응하는 줄 알았다. 졸업 후에 연락이 끊겼고 이후에 왕래가 없었는데 부고 소식을 듣고 너무나 놀랐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의 정확한 사망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유족 입회하에 시신을 부검했다. 외관상 외상은 없었으나 A씨의 몸에서 B씨의 DNA(정액)가 검출됐다.
경찰은 B씨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는지를 집중적으로 추궁했으나 그는 “점적주사(수액에 링거줄을 통해 방울로 투약되는 방법)로 투약하면 생명에 지장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고 살인의 고의는 없었다”고 완강하게 부인했다. 거짓말탐지기 조사에서는 ‘판단불능’으로 나왔다.

B씨는 시체 유기, 업무상 과실치사, 마약류 관리법 위반, 의료법 위반 혐의, 아내 C씨는 남편의 사체 유기를 도운 혐의(사체 유기 방조)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B씨에게 징역 1년6월과 벌금 300만원을, 부인 C씨에게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망사고는 일반적 의료사고와 본질을 달리한다”며 “업무상 과실의 구성 요건에 해당하더라도 죄질이 불량해 엄격히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양형이유를 밝혔다.
이어 “B씨는 약물의 사용법과 부작용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은 채 이를 업무 외 목적으로 사용했다”면서 “환자의 사망 확인 당시 원인이 불명확했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자신과 근무하는 병원의 명예를 위해 사체를 유기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피해자 유족들이 엄한 처벌을 원한다”면서도 “B씨가 범행 사실을 반성하며 사고 이전에는 의사로서 성실히 산 점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C씨에 대해서는 “B씨가 사망한 환자를 차량에 싣고 나온 것을 인식한 상황이었다”며 “B씨를 따라가서 기다리다 돌아온 이상 사체 유기 방조가 넉넉히 유죄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주부로 살아온 C씨가 믿고 따르던 남편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B씨를 따르다 범행에 이르게 된 점과 B씨에 대한 배신감을 알게 된 C씨도 또 다른 피해자인 점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1심 선고 후 B씨는 항소하고, 부인은 항소하지 않았다. 항소심도 원심을 인용해 판결하면서 이 사건의 법적 처분이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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