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화학적 거세’ 특수강간범 김선용 탈주사건
충남 공주에는 우리나라 유일의 ‘치료 감호소’가 있다.
범죄자나 법을 어긴 정신질환자 등을 격리 수용해서 치료하는 곳이다. 특수강간범 김선용도 치료 감호소 수용자 중 한 명이었다.
2005년 8월 6일부터 김선용(33)은 이명(귀울림) 증상으로 대전 둔산동의 한 대학병원 7층 병동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수용자가 치료감호 시설에서 치료하기 어려운 질병에 걸렸을 때는 외부 의료기관에서 치료받게 할 수 있다.
입원 기간 동안에는 양쪽 발에는 도주하지 못하게 수갑형태의 형구를 채운다. 또 감호소 직원이 밀착 감시하도록 돼 있다.
김씨는 8월10일 퇴원을 앞두고 있었다.
전날인 9일 오후 2시17분쯤 김씨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며 감호소 직원에게 발에 착용한 형구를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직원들은 아무 의심없이 김씨의 발목에 채워진 형구를 풀어줬다. 김씨가 병실 내부의 화장실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긴장의 끈을 풀었다. 직원들은 화장실에서 약 2m 정도 떨어진 침대에 걸터앉아 얘기를 나눴다.
1분 뒤 화장실에 들어갔던 김선용이 고개를 내밀고 바깥의 동태를 살폈다. 감호소 직원들의 감시가 느슨해졌다고 판단하자 화장실 문을 열고 곧장 계단으로 뛰어 내려갔다. 회색 티셔츠에 환자복 바지를 입고 슬리퍼를 신은 상태였다.
김씨는 엄청난 속도로 뛰었다. 슬리퍼를 신고도 13분 만에 1km 정도를 달렸다. 근처 아파트 단지로 잠입한 그는 의류수거함에서 옷을 꺼냈다.
아파트 계단으로 올라가 2층과 3층 사이 복도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약 2분 뒤 ‘UST’라는 로고가 새겨진 흰색 반팔 티셔츠와 푸른색 계열의 바지를 입고 아파트를 나왔다.
이때까지 병원에 있던 감호소 직원들은 김선용의 탈주사실을 알지 못했다.
김씨가 화장실에서 한참동안 나오지 않자 그때서야 이상한 낌새를 챘다. 김씨가 들어간 병실 화장실에 들어가 봤으나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때서야 부랴부랴 정문 경비실에 연락했지만 이미 병원을 빠져나간 뒤였다.
공주 치료감호소는 김선용이 탈주한 후 바로 신고하지 않았다. 대신 감호소 직원들을 동원해 자체 검거에 나섰다. 외부로 알려지면 문책이 뒤따를 것이 뻔했기에 이를 피하려는 속셈이었다.
문제는 김씨를 잡기는커녕 오히려 탈주 시간만 벌어줬다. 감호소 측이 허둥대는 사이 김씨는 시내 깊숙이 들어갔다. “나 잡아봐라~” 하고 도주했지만 아무도 잡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치료감호소 측은 사건 발생 1시간30분 뒤인 오후 3시47분쯤에서야 112로 신고했다. 김씨가 옷을 갈아입은 아파트의 주민은 탈주 당일 계단에서 옷가지를 발견했으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다 뒤늦게 관련 뉴스를 보고 나서야 경찰에 신고했다. 그는 경찰에서 “저녁 먹고 들어오는데 옷이 있었다. 처음에는 누가 옷을 벗었구나 생각하고 갔는데 탈주범 뉴스를 보니까 그 옷이랑 같아서 신고했다”고 말했다.
경찰이 현장으로 출동해 아파트 폐쇄회로(CC)TV를 보고 김선용인 것을 확인했다. 그가 병원 내 동선을 미리 파악하고 있었던 정황도 속속 드러났다.

김선용이 우발적이 아닌 치밀한 계획아래 도주했을 가능성이 컸던 것이다. 도주 몇 시간 전에는 그의 아버지와 병원에서 면회한 사실도 확인됐다. 경찰은 김씨 아버지를 불러 당시 상황을 캐물었으나 탈주를 공모한 정황은 없었다.
경찰은 추가 범행을 우려해 전국에 공개수배령을 내리고 수배 전단지를 배포했다. 아울러 김씨의 동선 파악을 위해 병원과 아파트 인근지역 CCTV를 샅샅이 뒤졌다.
오후 6시19분쯤에는 대전시 중구 대흥동의 도로를 걷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됐다. 경찰은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기차역과 터미널 등에 수배 전단을 붙였다. 또 어머니와 여동생이 살고 있는 대전, 아버지의 주거지인 전남 무안, 여자 친구 연고지인 대구 등지를 중심으로 행방을 추적했다.
김씨는 도피 자금마련 등을 위해 강력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컸다. 무엇보다 성범죄 가능성이 높았다. 그는 2005년 특수강간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2010년 출소했다. 이후 한 달 도 안 돼 또 다시 성범죄를 저질렀다.
2010년 6월7일 경남 밀양에서 원룸을 보러 다닌다고 속인 뒤 혼자 있는 여성을 성폭행했다. 같은 달 9일과 10일에는 같은 방법으로 2명의 여성을 잇따라 성폭행 했다. 피해자들은 10대 소녀들이었다.
김씨는 범행 당시 예리한 흉기를 가지고 피해자를 위협하며 변태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특수강간 등의 혐의로 징역 15년 및 치료감호를 선고 받고 복역 중에 탈주했다. 특히 김씨는 ‘성 조절 장애’가 있어 성욕을 참지 못하는 상태였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김씨는 도주 첫 날 밤은 대덕구 중리동의 한 학교에서 노숙했다. 다음날 오전 9시30분쯤 도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A씨(여) 혼자 있던 가게에 들어갔다.
김씨는 길에서 주운 둔기로 위협해 가게 문을 닫게 한 다음 A씨의 휴대전화를 빼앗았다. 그런 다음 “내가 탈주범이다. 돈을 내 놓으라”고 협박했다.
성적인 충동을 느낀 김씨는 A씨를 성폭행해 욕구를 채웠다. 김씨는 범행 후에도 태연했다. 갑자기 자신의 신세한탄을 늘어놓기 시작했고 A씨는 “자수하라”고 설득했다. 성폭행 피해자인 A씨는 감금 상태에서 무려 9시간 동안 김씨와 함께 있었다. 제2·제3의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였다.

김씨는 결국 자수하기로 결심하고 A씨 전화를 이용해 둔산경찰서에 전화해 자수 의사를 밝혔다. 당직 경찰관이 “지금 어디냐”고 묻자 “한 시간 거리에 있다”고 답했다.
김씨는 한 시간 뒤에 자수하겠다고 말한 뒤 이날 오후 6시55분쯤 경찰서를 찾아 자수했다. 도주 28시간 만이다. A씨는 불안해하는 김선용과 함께 택시를 타고 경찰서까지 동행했다.
김씨는 탈주 동기에 대해 “수갑을 풀고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던 중 순간적으로 삶에 회의를 느껴서 도주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보면 ‘우발적’이라기 보다는 ‘계획적 탈주’에 무게가 실렸다.
김선용의 탈주와 추가 범행은 감시를 소홀히 한 공주 치료감호소 측의 책임이 크다. 느슨한 감시로 인해 김씨 탈출을 사실상 방조했다. 더욱이 탈주 후 신고를 늦게 함으로써 조기 검거에 실패했다.
이로 인해 추가 성폭행 피해를 막지 못했던 것이다. 공무원의 무사안일과 보신주의가 또 한 명의 성폭행 피해자를 만든 셈이다.
2016년 2월 대전지법 제12형사부(강문경 부장판사)는 ‘특수강도·강간’ 혐의로 기소된 김선용에게 징역 17년을 선고하고, 성충동 약물치료(일명 화학적 거세) 7년, 신상정보 공개 등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2015년 12월 헌법재판소의 ‘화학적 거세’ 합헌 결정이 나온 후 첫 적용사례가 됐다.
김씨는 60살이 되는 오는 2043년에 출소예정이며 두 달 전부터 7년 동안 약물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런 방법으로 그의 성충동이 억제될 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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